허희영(63) 항공대 항공우주정책연구소장을 만났을 때 그는 “내가 같은 교수라는 게 부끄럽다”며 입을 열었다.
“검증위원회에 참여한 교수들에게 말하고 싶다. 대학원생도 이런 수준의 논문을 내면 졸업 못 한다. 정치 상황이 바뀌면 이번 검증위원회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항공 산업 분야를 전공한 경영학과 교수다. 항공 수요 예측, 경제성 평가, 해외 동향 등이 전문 분야다. 그가 집필한 ‘항공경영학’ ‘항공운송산업론’은 교재로 쓰이고 있다.
“어떤 분들이 참여했기에 4년 전 세계적인 공항 설계 회사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의 용역 결과를 뒤집을까. 그만큼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분들인지 나름대로 알아봤다. 공항 개발이나 항공 산업 관련 교수들끼리는 웬만큼 아는데, 이번에 참여한 21명은 대부분 잘 모르는 분들이었다.”
왜 과학을 안 믿나
-검증 과정에서 내부 이견이 심해, 검증위원장과 각 분과장 등 5명이 모여 ‘김해 신공항 근본적 재검토’로 결론냈는데?
“검증위원회는 김해 신공항의 안전성 검증이 첫째 목적이었다. 하지만 320쪽이 넘는 검증 보고서를 다 읽어봐도,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체 11개월 동안 뭐했기에 이런 보고서를 내놓나.”
-얼마 전 검증위원장은 본지 기자에게 “김해 신공항의 백지화나 폐기를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 관문 공항으로 오히려 타당하다고 결론을 낸 것”이라고 했다. 발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말을 했는데?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놓고 잘못 말했다는 건가. 당시 발표를 ‘김해 신공항 백지화’로 받아들인 국민의 해독력이 문제라는 건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2002년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근처 돗대산과 충돌해 129명이 숨진 사고가 난 뒤로, 부산 사람들은 ‘김해 신공항은 안전하지 않다’고 믿고 있는데?
“중국 민항기 추락은 중국 조종사의 오류에 의한 사고였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이 공항을 개발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안전성’이다. 당시 김해 신공항은 후보지 중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왜 과학을 안 믿나.”
-김해공항 주변의 산들은 이착륙에 장애가 되는 게 사실 아닌가?
“김포공항에는 고층 아파트와 송전탑 등 인공 장애물이 3000개가 넘는다. 제주공항에는 200여 개가 있다. 이착륙 시 어떻게 접근하라는 비행 정보를 전(全) 항공사에 알려주고 비행기마다 입력해놓는다. 다 피할 수 있는 장애물들이다. 이번 검증위의 안전 분과위원 다섯 명 중 한 명만 빼고 나머지는 이런 개념조차 잘 모를 거다.”
-제한높이 이상의 장애물은 제거하는 게 원칙이라는데?
“ICAO(국제민간항공기구) 충돌실험 모델을 적용해 장애물을 제거할지 놔둘지 평가한다. 어떤 장애물은 그냥 둬도 피해갈 수 있다. 4년 전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이 V자 형태의 활주로를 제시해 김해 신공항의 장애물 문제가 해결됐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각도를 조정하는 비행 절차로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김해 신공항 건설에는 비행 안전을 위해 산을 안 깎아도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국토부에서 산 절개를 안 하고 비행 절차만 바꿔 이착륙 안전 시험을 해봤다. 그런 시뮬레이션 자료를 갖고 있다.”
-검증위는 바로 이 점을 문제 삼았다. 장애물을 그대로 두려면 해당 지자체장과 협의해야 하는데, 그 절차 없이 공항기본계획안을 수립했으니 법 취지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는데?
“공항설치기본계획이 고시(告示)도 안 된 상태다. 고시된 뒤 협의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궁색했으면 이런 걸 내세워 ‘김해 신공항 건설은 문제 있다’고 주장하나.”
-검증 보고서 결론 부분에 ‘김해 신공항은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한 대응이 어렵다’는 대목이 나온다.
“안전성 검증에서 할 말이 없으니 갑자기 ‘확장성’을 들고 나왔다.”
-부산 사람들도 ‘확장성’을 위해 가덕도에 신공항이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항공 수요가 더 늘어나면, 가덕도라야 바다를 더 매립해 활주로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인데?
“2016년 프랑스 용역 기관에 의하면 활주로 두 개를 기준으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 비용은 김해 신공항의 두 배가 넘는 10조2000억 원이었다. 그때는 가덕도 수심을 재볼 시간이 없어 최소 매립 비용을 잡았다. 실제로는 이보다 두 배가 될 수 있다.”
-인천공항도 영종도 갯벌을 매립했지 않나?
“영종도 수심은 5m로 갯벌이었다. 일본 간사이 공항은 수심 20m로 내해(內海)에 있다. 하지만 가덕도는 수심 80m로 앞에 막아주는 섬이 없다. 태풍과 해일이 닥치면 그대로 타격을 받는다. 공항 입지로는 최악이다.”
-건설 비용을 제쳐두고, 경제성 면에서 김해 신공항과 가덕도 신공항 어느 쪽이 유리한가?
“배후 도시나 인구, 접근성에서 김해 신공항이 훨씬 더 낫다. 부산 사람들이 왜 가덕도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가덕도는 부산의 서쪽 끝에 있다. 부산 동쪽에 사는 주민에게도 접근성이 떨어진다. 울산시에서는 완전히 남의 공항이다. ‘국책 사업’으로 동남권 신공항을 짓는 것인데, 가덕도에 지으면 말 그대로 부산만의 공항이 된다.”
-공항철도와 도로망을 건설하면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겠나?
“강원도 국제공항으로 양양공항을 짓자 기존의 속초와 강릉 공항은 문을 닫았다. 30분~1시간 떨어진 두 도시의 항공 수요가 양양공항으로 흡수될 줄 알았다. 결과는 달랐다. 속초·강릉 사람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광주에서 1시간쯤 떨어진 전남 무안에 통합 공항이 준공됐지만, 광주 사람들은 광주공항을 그대로 쓰겠다고 했다. 접근성이란 이렇게 중요하다.”
수도권 논리인가
-검증위의 주장대로 2056년 이후 항공 수요를 대비해야 한다면 가덕도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통상 항공 수요 예측은 30년 이후를 넘지 않는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ICAO의 항공시장 예측 수요는 2035년까지만 나와 있다.”
-프랑스 용역 기관에 의하면 김해 신공항은 3800만명을 소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작년 김해공항의 이용객 수는 1300만명이었다. 인구는 줄고, 항공과 경쟁하는 지상 교통수단이 늘고, 인공지능 활용과 비대면 근무 환경이 확산하는 추세다. 검증위가 어떤 근거 자료로 2056년 이후 계속 항공 수요가 더 늘어날 걸로 예측했는지 모르겠다.”
-대형 공항이 들어서면 새로운 항공 수요가 창출되지 않을까?
“항공 수요는 ‘파생 수요’다. 여행이나 업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어떤 공항이 잘 지어졌다고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몰려오지 않는다.”
-가덕도에 공항을 만들면 인접한 부산신항(新港)과 연계돼 항공 화물 운송이 늘어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나?
“화물 전용기들이 많이 들어올 거라는 기대인데, 항공 화물의 40%는 여객기로 운송된다. 기내 아래 공간의 ‘벨리 카고(belly cargo)’에 실린다. 항공 화물은 주로 반도체 등 고가 제품이다. 부산에서 갑자기 그런 항공 화물이 늘어날까.”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신공항이면 달라지지 않겠나?
“24시간 돌아간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인천공항도 사실상 24시간 운영을 안 한다. 밤 11시부터 새벽 너댓시 사이에는 화물기 이착륙도 거의 없다. 인센티브를 줘도 그렇다. 여객기는 그 시간에 도착해도 공항버스가 연결되지 않는다. 인천공항이 이러면 가덕도는 말해 뭐하겠나.”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독자적인 광역 경제권을 꿈꾸고 있는데?
“올림픽을 유치하면 선수단·기자단·손님이 들어온다. 하지만 공항은 올림픽을 유치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잘 지어놔도 항공사가 취항하지 않으면 빈집이 된다. 항공 노선은 여객과 화물 수요가 있어야 들어온다. 채산이 안 맞으면 노선을 안 깐다. 인천공항이 150개 이상 도시와 연결되는 것은 서울·수도권이어서 가능한 것이다.”
-부산에서는 이를 ‘수도권 논리’라고 반발하는데?
“현실이 그렇다. 공항의 성공은 배후에 얼마나 많은 도시 인구와 비즈니스, 관광거리가 있느냐에 달렸다. 인천공항의 작년 이용객은 7100만명이지만, 부산을 배후 도시로 두는 김해공항은 1300만명이었다. 공항 이용객에서 제주공항에도 못 미친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의 숙원 사업처럼 돼있다. 이런 인터뷰가 어떤 의도를 갖고 훼방 놓는 걸로 받아들여질까 걱정스럽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는 천문적인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 부산에서 자기 돈 들여 짓는 지역 사업이 아니다. 공항은 현실이고 경제 문제다. 부산 정치인이나 지역 언론에서는 이를 직시하지 않고 자꾸 환상을 부추기는 것 같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 상당수는 ‘가덕도 미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4년 전 지금 같은 사태가 터졌을 때 부산의 한 구청장이 내게 ‘가덕도에 짓겠다는 것은 미친 짓인데 공개적으로 말할 입장이 못 된다’고 했다.”
정치적 노림수
-김해 신공항 백지화가 발표됐을 때, 친여 성향 신문 매체도 이를 ‘정치적 노림수’라고 썼다. 부산 출신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표를 위해 찬성하지만, 지역 언론인들이라도 좀 더 차분하게 이 사안에 접근했으면 한다.
“영남권 광역단체장끼리 맺은 ‘신사협정’(김해 신공항)을 처음으로 깬 장본인이 오거돈 전 시장이다. 후보 시절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 뒤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를 방문해 힘을 실었다.”
-여당에서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급행 추진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는데?
“검증위 보고서에는 가덕도 신공항 언급은 전혀 없다. 꼴찌 점수를 받은 가덕도로 직행할 수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후보지를 선정해야 한다. 세계 최고 기관의 용역 결과를 뒤집었는데, 그럴 경우 과연 누가 연구를 수행하고 또 그 결과에 승복하겠나.”
동남권 신공항은 장기간 표류할 공산이 크다. 지역 주민들이 피해자다. 당장 재미를 많이 보는 쪽은 현 정권뿐이다.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