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남관(오론쪽) 대검찰청 차장검사. 조 차장이 대검 2인자로 들어왔을 때 언론은 '추미애 사단'이 윤 총장을 포위했다고 평가했다. 그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윤 총장 임기 보장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공개했다./국회사진기자단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이 조남관 검찰총장 권한 대행의 호소문을 ‘(윤석열과의) 작별 인사’라고 해석했다. 그런 독해력으로 어떻게 그 일을 하나 싶다. 조 대행은 ‘윤 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을 차별 없이 수사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공을 세웠고 불명예 퇴진할 이유가 없다’며 총장의 임기 보장을 요구했다. 이대로 가면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된다’고 했다. 가곡 ‘목련화’ 가사를 인용해 추미애 장관을 추켜세운 부분만 빼면 검찰에서 나온 성명 중 가장 강렬하고 명확했다.

조 대행은 침묵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요직을 거쳤고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추 법무장관을 보좌했다. 대학살로 평가되는 8월 인사 때 선배를 제치고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 주류를 형성한 호남 출신이다. 당연히 ‘추미애 사단’이란 소리를 들었다. 현 정권이 이어지면 총장, 그 이상도 바랄 수 있다. 그런 그가 가장 결정적 순간에 입을 열었다. 역시 검사다.

검찰을 준(準)사법기관이라고 한다. 검사의 지체가 높아 부르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수사권과 기소권이 너무나 막중하기 때문에 행정 권력 밖에 있는 것처럼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 대행이 쓴 대로 ‘정치적 중립은 산 권력, 죽은 권력을 차별하지 않는 수사’로 이루어진다. 역시 그가 쓴 대로 ‘추 장관의 재고를 요구하는 건의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도 총장 개인이 아닌 정치적 중립을 보위하기 위한 집단행동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런 검사들을 향해 “공무원이 겁 없이”라고 말했다. 권력에 취하면 이런 소리가 나온다. 검찰은 본질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외력에 겁을 먹지 않도록 설계된 조직이다. 특히 권력에 그렇다. 김 대표는 말을 듣지 않는 국토부 공무원에겐 “X자식”이라고 했다. 국민은 그럴 때 ‘X’란 말을 쓰지 않는다. 세금을 받아먹으면서 정권을 위해 공문서를 인멸하고 스스로 사법적 책임까지 떠안은 공무원, 즉 김 대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공무원을 국민은 “권력의 X”라고 부른다.

추 장관은 윤석열 총장 공격에 호남 출신 검사를 집중 배치했다. 나는 이 악행이 그동안 추 장관이 멧돼지처럼 치받으며 저지른 저돌(豬突)적 악행 중에서 가장 역겹고 저열하다고 생각한다. 검사는 역시 검사다. 추 장관 조치를 비판하는 이번 성명에 전국 59개 검찰청 평검사가 모두 참여했다. 전국 지검과 고검 검사장 20명 중 17명도 동참했다. 2100명 검사 중 검사라고 부를 만한 검사는 다 들고일어났다. 출신 지역, 출신 학교 등 어떤 구분도 찾을 수 없다. 이것은 검란(檢亂)이 아니다. 추미애에 의해 찢긴 조직을 추스르는 봉합과 치유의 움직임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움직임을 ‘집단이익’으로 몰아붙였다. 그들에게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요구했다. 대통령이 앞장서 세상을 거꾸로 읽는다. 산 권력을 차별 없이 수사하는 검찰이 공(公), 정권의 이익을 위해 권력 수사를 필사적으로 방해하는 세력이 사(私)다. 윤석열이 공, 추미애가 사다. 지금 검사들이 들고일어나 추 장관을 향해 요구하는 것이 선공후사다. 법원과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추 장관의 이번 조치 모두를 부적절하다고 결론 내린 것도 그가 공의 자리에 서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의미 있는 것은 권력에 기생하는 정치검사를 확실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렇게 권력을 휘둘렀는데도 자신을 따르는 검사가 정말 한 줌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추 장관은 놀랐을 것이다. 그중 한 명은 상갓집에서 후배에게 “당신이 검사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만뒀어야 했다. 선후배의 신망을 잃은 자가 출세해 보겠다고 추 장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요직을 돌았다. 그러다가 엉뚱한 내부 자료를 장관에게 바쳐 나라를 시궁창으로 만들었다. 엉터리 무딘 칼에 어설픈 칼질로 상대를 죽이겠다고 덤벼드니 유혈과 반격의 지옥도가 그려진다. 문 대통령은 과거 저서에서 “검찰의 정치적 편향은 만성화되어 이제 정치권력과 함께 통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했다. 지금 추 장관이 이들과 함께 벌이는 일이다.

검찰에 대한 법무장관의 권한은 권력 비리 수사를 방해하라고 준 게 아니다. 검찰총장이 지금 법무장관처럼 폭력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때 제어하라고 준 권한이다. 추 장관의 행위는 공사를 뒤집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다. 추 장관에게 호응한 정치검사의 권력 수사 방기는 명백한 직무 유기다. 이 정권이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이 수사 대상으로 규정한 공직자 범죄 1호에 해당한다. 2100여 검사가 살아있다. 권력의 단맛을 아무리 누려도 그들은 늘 두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