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災難) 방송은 정확해야 한다. 위험과 희망을 부풀리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사령탑(司令塔)이 우왕좌왕하면 세상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아수라장으로 변해 희생을 몇 십 배 키운다. 세월호 어린 희생자들 영전(靈前)에 ‘고맙다’는 글을 남기고 들어선 정권이라 이런 이치만은 단단히 깨쳤겠거니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코로나 발언록을 좇아가 보자. 지난 13일 ‘지금은 절체절명의 시간이자 엄중하고 비상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 나흘 전엔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는 말을 세 번 되풀이했다. 11월 21일 G20 화상(畫像) 정상회담에선 ‘한국은 신속한 진단 검사와 역학 조사로 확산을 막았다. 한국 경험이 세계 각국에 참고가 되기 바란다’고 했다. 그날 255명이던 확진자는 사흘 뒤 553명으로 뛰었다. 침몰 직전 세월호 선내(船內) 방송도 이 정도로 왔다 갔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백신 확보 여부에 따라 코로나 ‘불길에서 탈출하는 나라’와 ‘불길 속에 갇힌 나라’로 양분(兩分)됐다. 영국·미국·캐나다·유럽연합(EU) 회원국 27곳과 일본은 백신 접종을 시작했거나 곧 시작할 예정이다. 싱가포르·홍콩·말레이시아도 상당량의 백신을 확보했다. 구조 사다리 없는 한국은 제3 세계 국가들과 이 탈출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이 계약했다는 영국산(英國産) 백신은 임상(臨床) 시험이 끝나지 않았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약품 심사 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도 받지 않았다. 영국 의약품규제청조차 이 자국산(自國産) 백신 심사를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걸 국민에게 접종하겠다고 한다.
세계 최고 최첨단 반도체·자동차·석유 시추선을 생산·수출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한국의 ‘지도자 경쟁력’ ‘정부 경쟁력’ ‘정치 경쟁력’이 낙후(落後)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부 대기업과 K팝·영화 산업의 선전(善戰) 덕분에 세계에서 선진국 또는 선진국에 가까운 나라로 대접받는 데 익숙해졌다. 국가 지도자는 물론이고 상당수 국민도 이걸 당연스레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선진(先進) 부문과 후진(後進) 부문이 병존(竝存)하는 이중 구조 국가다. 일부 대기업·건강보험·공항·항만·도로 등의 사회간접자본은 선진 부문이다. 반면에 지도자의 현실 인식과 미래 비전, 법치(法治)의 안정성, 정부 역할과 정치 행태, 노사 관계, 복지 시스템의 효율성, 시민 단체의 도덕성과 공공 의식은 후진의 허물을 벗지 못했다. 대학도 중진국 수준이다.
문제는 후진 부문이 선진 부문을 지휘·감독·감찰하고 명령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런 역행(逆行)은 상향(上向) 평준화가 아니라 선진화된 부문의 토대까지 허물 위험이 크다. 이 정권 들어 건보(健保) 재정이 급속히 악화하고 노동 부문이 더욱 경직(硬直)되고 있는 것은 국가의 노화(老化)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코로나 불길에 갇힌 나라 모습은 ‘후진’에 짓눌린 ‘선진’이 내는 비명이다. 사이비(似而非)를 걷어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도 근본이 전혀 다른 걸 ‘사이비’라고 한다. ‘사이비 종교’만 해로운 게 아니다. 사이비 과학은 미신(迷信)만도 못하다.
기업 투자가 없어도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경제학은 ‘사이비’다.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Energy For Future Presidents)’의 저자 리처드 뮬러 버클리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방사선 누출로 인한 사망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의회 증언에서 지구온난화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 미국 의회의 생각을 바꿔 놓은 인물이다. 대통령은 고리 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현재 1368명이 사망했다’고 했다. ‘사이비 물리학’에 감염(感染)된 것이다. 검찰 개혁의 본질은 ‘없는 죄를 만들지 않고 있는 죄를 덮지 않는 것’이다. 검찰총장 징계 과정은 ‘없는 죄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생중계하듯 보여줬다. 대통령 혼자 속고 속이는 개혁이다.
사이비에 대한 해독제(解毒劑)로는 건전한 상식만 한 것이 없다. 대통령의 상식은 무고(無故)하실까. 대통령은 “공수처 신설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정(司正)의 칼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인데 독재 운운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의 상식과 판단력이 유고(有故)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