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측은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를 법원에 신청하면서 소송 성격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소송이 맞는다”고 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관료 사회의 권위주의적 구조가 극심한 우리나라에서 장관급이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저런 용기와 배짱이 어디서 나왔을까?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직 2개월 징계처분 집행정지 심문을 하루 앞둔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상가에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것은 단지 윤 총장의 용기와 무모함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원칙, 법치에 어긋난 것을 정치로 덮을 수 없다는 원리, 권력으로 불법을 호도하려는 권력 남용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정의감의 문제다. 여기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은 보통 용기로는 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윤석열이라는 사람의 지도자 자질을 본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정치 권력자들은 정치권 주변에서 술수 요령을 배우고 몇 차례 선거를 거처 국회에 진출하고 경쟁자와 이전투구를 벌인 끝에 지도자 반열에 오르곤 했다. 윤석열은 아니다.

문 정권은 지난 3년 반 치밀하게 좌파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아왔다. 정부 핵심 요직에 586 운동권을 수십 수백 명 앉히고, 적폐 청산을 내세워 사법부를 장악했다. 그러고 입법부의 절대다수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반문(反文) 선두에 섰던 일부 교회와 시민 단체를 차례로 무력화시켰다. 대학을 거세하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4·15 선거의 결과로 야당 무력화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그 결과 집권 세력은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만들고 운용하기 시작했다. 기업 규제, 대북 전단 금지, 국정원 대북 사찰 금지 등 헌법적 장치를 무차별적으로 처리했다. 그야말로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듯’ 각종 ‘금지법’을 토해냈다.

의기양양한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한 줌 안 되는 일부 언론, 좌파 진영을 이탈한 양심 논객 몇 명뿐이었다. 그런데 ‘윤석열’이라는 암초가 등장한 것이다. 더구나 이 ‘암초’는 자기들이 논공행상 조로 임명한 존재다. 그가 쉽게 타협하지 않을 기세로 나오자 집권 세력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전위부대들이 벌 떼처럼 일어나 ‘아니 감히 대통령에게···’라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윤 총장은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집권 측이 윤 총장을 배척하는 만큼 그를 주목해야 하는 쪽은 야권이다. 흔히 대선 전에 여론조사에서 앞섰다가 중도에 곤두박질하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가 허풍이었던 경험을 우리는 여러 차례 겪었다. 여론조사의 숫자가 결코 실제 표로 연결되지 않은 전례도 있다. 상대방의 폭로전에 걸려 넘어진 적도 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윤 총장을 평가절하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윤 총장은 무명에서 치고 올라온 인물이다. 그는 정치에 연루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정치권 언저리를 기웃거린 적도 없다. 그는 자기 이름을 여론조사에서 빼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그의 인기는 그의 용기·철학·신념·정의감에 감동받은 국민들의 자발적 평가인 셈이다. 그리고 문 정권의 좌파 독재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친박은 그가 박근혜 정부를 넘어뜨린 원인 제공자라며 거부반응을 보이는데, 윤 총장으로서는 그것이 박근혜·이명박 정권이건 문재인 정권이건 가리지 않고 같은 잣대를 들이댄 원칙론자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윤석열을 주목한다 해도 그를 어떻게 끌어내고 어떤 과정을 거쳐 대선에 나서도록 만들어갈지가 향후 관심사다. 지금 우리가 처한 엄혹한 국난 상황에서 어떻게 나라를 구하고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그의 책임감, 사명감을 자극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를 야당의 중진들이 이끄는 반문(反文) 연대라는 중간 지대를 통해 야권에 합류시키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야권의 단일화를 이끌어낼 의지와 결기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인과 정치에 대해 깊은 환멸과 거부감을 갖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 내에서 대권 주자가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다. 윤석열의 등장은 유권자들이 기성 정치인에게 갖는 거부감, 불신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권은 이런 국민의 기류를 수용해서 대선 주자를 그야말로 ‘공채’해야 한다. 안철수씨가 현명한 결정을 내려 서울시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결정이 대선의 야권 단일화에 어떤 물꼬를 틔워 주었다고 생각했는지, 야권 분열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민주당은 안씨를 때리는 데 혈안이다. 그럴수록 야권의 갈 길은 선명해 보인다. 그 길은 이 나라 사생결단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