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권은 민주적이지 않다. 북한 원전 의혹에 저렇게 고압적일 수 있는 것도 이 정권의 골수에 박힌 ‘비(非)민주 DNA’ 때문이다. 남북 정상이 만난 며칠 뒤,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보고서가 작성됐다. 탈원전에 토를 달면 “너 죽을래” 소리를 듣던 때였다. 그 서슬 퍼런 분위기에서 산업부 말단 간부가 자기 판단으로 탈원전에 역행하는 보고서를 썼다니 누가 믿겠나. 윗선이 개입됐다는 추론이 합리적이고, 의혹을 품는 게 당연하다. 그런 당연한 의문 제기를 향해 “구시대적 유물”이라 몰아붙이고 “책임지라”며 법적 대응 운운한다. 의심 갈 짓을 해놓고 이렇게 큰소리치는 정권은 보다 보다 처음이다.
문재인 국정은 힘으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다. 소통과 타협의 민주적 절차 대신 완력과 세몰이로 권력 의지를 관철하고 있다. 말 안 듣는 공직자를 내쫓고 저항하는 관료 집단을 난타해 제압했다. 검찰이 정권 비리를 수사하자 수사팀을 해체하고 총장의 손발을 잘라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감사원장에겐 정치 프레임을 덮어 고립시켰다. 급기야 법관 탄핵이라는 폭압적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판사들을 향해 수틀리면 가만 안 놔둔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조폭식 협박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뻔하고도 당연한 질문에 대한 문정권의 ‘당연하지 않은’ 생각을 드러낸 것이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었다. 감사원이 탈원전의 절차적 위법성을 감사하자 임종석은 “집 지키라 했더니 안방 차지하려 한다”고 일갈했다. 감사원을 향해 “주인 행세를 한다”고 몰아세웠다. 이게 뭔 소리인가. 감사원은 국가 정책의 잘잘못을 따지라고 국민이 위임해준 헌법 기관이다. 정책 결함을 감사하지 않으면 그것이 국민에 대한 배임이다. 이 당연한 책무를 수행하려는 감사원에게 “주인 행세 말라”고 한다. 자기들이 주인이라는 소리다. 감사원은 권력의 개인데, 왜 주인을 무냐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민주적 통제론’이다. ‘선출된 권력’이 상위에 군림하면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한다. 그 꼭대기엔 물론 문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 한마디에 국가 노선이 뒤집히고 국정 방향이 뒤틀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반핵 영화에 눈물 흘렸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수십 년 쌓아 올린 원전 생태계가 무너졌다. 제대로 된 검토도, 토론도 없었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국가부채 비율 40%의 마지노선도 무너트렸다. 문 대통령이 “40%의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묻자 혼비백산한 기재부가 재정 건전성의 댐을 열어젖혔다. 대통령의 대일 강경 발언에 죽창가를 불러대던 사람들이, 대통령의 정반대 발언이 나오자 갑자기 일본과 화해하자고 돌변한다.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도,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도, 세금 퍼붓는 가짜 일자리 정책도 대통령 지시가 출발점이었다.
대통령이 원하면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이 “(소득 주도 성장) 정책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언급하자 경제 부처들은 이를 뒷받침하려 사실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앞 정권 탓, 인구구조 탓, 날씨 탓으로 물타기 하며 통계 수치를 입맛대로 짜깁기했다. 집값이 급등하는데 뜬금없게도 문 대통령이 “부동산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국토부는 서울 집값 상승률이 3년간 11%에 불과하다느니 엉뚱한 수치를 들이대며 집값이 “안정세”라고 우겼다. 선출된 권력의 서슬 퍼런 호통 앞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관료 집단의 ‘영혼’마저 탈탈 털려버렸다.
저항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경제부총리는 여당의 포퓰리즘에 8번 대들었지만 번번이 굴복했다. 여당이 “개혁 저항 세력”이라며 난타하자 매번 백기 들며 8전8패 했다. 고용 정책을 비판했던 경총 부회장은 청와대에서 “반성하라”는 질타를 받고 수사까지 받았다. 정권 비위를 거스르면 보복과 협박이 가해진다. 감사원의 탈원전 감사를 통해 이 정권이 대드는 공직자를 어떻게 군기 잡는지 약간의 실상이 드러났다. 산업부 원전 과장이 월성 1호기를 더 가동하겠다고 하자 청와대 지침을 받은 장관이 “너 죽을래”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조폭 집단에서나 나올 소리다. 그러면서도 ‘민주적 통제’라고 한다.
급기야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아부도 이쯤 되면 조선 왕조 수준이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이들에겐 선출된 권력이 나라의 주인이고, 그 정점은 문 대통령이니까.
국민으로선 선출 권력의 폭주에 공포심을 느낄 지경이 됐다. 곧 퇴임할 월급 사장이 마치 오너라도 되는 양 전횡하고 있다. 5년간 위임해준 시한부 대리인이 제 맘대로 국가 진로를 바꾸려 하고 있다. 지금도 국정 한구석 어딘가에선 주인 행세하는 선출 권력자들의 “죽을래” 협박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