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국민밖에 없다’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나라가 절망적 상황이라는 뜻이다. 검찰총장이 퇴임하는 모습을 보고 국민은 이런 생각을 더 굳혔을 것이다. 이 정권은 시도 때도 없이 검찰총장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그를 산송장으로 만들었다. 합법성을 잃은 권력은 폭력이다. 한때는 그를 ‘우리 총장’ 하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듯 대했던 대통령이다. 정권의 폭력이 상습화하면 국민의 분노는 절망과 무력감(無力感)으로 바뀐다. 우리가 지금 앓는 마음의 병(病)이다.
‘국민밖에 희망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나라의 핸들은 선장인 대통령과 그 부하들인 항해사·기관사가 쥐고 있는데 승객인 국민이 왜 그리고 어떻게 기우는 배를 바로 세울 수 있겠는가.
1958년 8월 잡지 ‘사상계’가 하루아침에 귀중품이 됐다. 종이 사정이 나빠 잡지도 많이 찍지 못하던 시절이다. 잡지를 살 수 없으니 돌려가며 읽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의 글 때문이었다. 그 무렵 우리는 ‘양식이 떨어진 집’을 말하는 절량농가(絶糧農家), ‘배 곯는 봄’이라는 춘궁기(春窮期) 단어를 끼고 살았다. 봄이면 신문에는 어디서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함석헌은 이런 세상에 ‘정치업자 놈들은 그저 국민을 짜먹으려 들고, 백성은 그런 정치업자들과 노골적으로 표(票)를 사고판다’고 울부짖었다. “목에 걸린 이 올가미를 벗으려면 턱이 부스러질 만큼 죽을 힘을 다써야 한다”며 ‘일어서라, 백성아’를 외쳤다. 절망이 깊어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기댄 것이다. 나라는 4·19를 거쳐 5·16으로 흘러갔다.
헌법 속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66조 1항). 대통령은 또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존,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하는 책무를 진다'(66조 2항). 헌법은 이것만으론 못 미더웠는지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무’에 ‘헌법을 준수할 의무'(69조)를 다시 얹어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대통령에게 ‘헌법을 수호할 책무’와 ‘헌법을 준수할 의무’를 이중(二重)으로 지운 것은 “대통령이 법치와 준법(遵法)의 상징이 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중국을 ‘큰 산봉우리’로 우러르고 대한민국을 ‘중국 주위의 작은 나라’라 낮추는 대통령 연설을 들으며 국민은 부끄러웠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외국에 대한민국을 정당하게 대표했는가.
2017년 북한의 핵무기 완성으로 남북은 ‘핵보유국’과 ‘핵무기 없는 나라’의 관계로 변했다. 북한은 ‘제 마음대로 하는 나라’로 올라서고, 대한민국은 ‘그런 강자의 횡포를 견뎌야 하는 나라’로 내려앉았다. 이 마당에 핵보유국을 핵우산 없이 맞서겠다는것과 마찬가지인 전시작전권 회수를 서두른다. 군대를 훈련 없는 군대로 만들면 전장에서 땀 대신 피를 흘린다. 이런 희한한 장면마다 국가를 보위해야 할 대통령이 앞장을 섰다.
대통령은 전임자로부터 재산과 빚을 물려받는다. 빚은 모르겠다며 뒤로 넘어질 수 없다. ‘국가의 계속성’이란 이런 뜻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불만족스러워도 ‘정부 간 합의’였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합의를 뒤집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4년을 흘려보냈다. 대통령은 올해 들어 느닷없이 한·일 합의가 ‘정부 간 합의인 것은 맞는다'며 또 뒤집었다. 한국을 보는 세계의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는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불신과 냉기(冷氣)가 동시에 느껴진다. 한국은 외톨이다.
‘법치와 준법의 상징으로서 대통령’이란 잣대는 꺼내기도 민망하다. 불법의 리스트가 너무 길어서다. 보궐선거에 이겨야 다음 정권 창출의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고 그래야 퇴임 대통령이 안전해진다는 것 말고는 가덕도 공항 건설의 논리는 없다. 자기 배로 낳은 후계자가 전임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을 그렇게 보고도 이런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가덕도 공항 건설에 의지를 가지라’고 훈시하는 대통령과 그 밑에 고개를 수그리는 국토부 장관은 대한민국 법치와 준법의 현 수준이다.
나라를 도둑질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우리는 투자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반발한다고 한다. ‘윗물이 맑은데도 아랫물만 썩었겠냐’고 반문(反問)하는 소리다. ’국민 밖에 희망이 없다’는 절망의 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아픈 매를 들어야 정권이 국민을 깔보지 못한다. 4월7일은 그런 날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