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는 지난달 30일 2020년 국가별 연례 인권 보고서의 한국 편에서 대북 전단 금지법을 포함한 ‘표현의 자유 제약’이 ‘중요한 인권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적 가치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한·미가 인권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일이었다.
앞서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위원회를 만들어 지난달 22일 ‘한·미 동맹을 위한 제언’이란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한·미가 협력해야 할 영역으로 안전한 공급망, 굳건한 민주주의 등과 함께 ‘인권’ 문제를 꼽았다. 이 보고서의 프로젝트 디렉터였던 빅터 차(60) CSIS 수석 부소장 겸 한국 석좌와 지난 1일(현지 시각)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지난 1월 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 금지와 북한 인권 단체들에 대한 사무 감사 등 “적극적인 표현의 자유 탄압”을 하고 있다며 이를 “자멸 정책(Self-Defeating Policy)”이라고 표현했다.
文정부, 北 인권단체에 공격적
-인권 문제가 한·미 간의 갈등 요소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 평가에 동의하나?
“바이든 행정부는 인권 문제 제기를 피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혀 왔다. 인권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인권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지난 9~10년 동안 여러 이유로 세계의 민주주의가 약화되기 시작하는 경향도 뚜렷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점들을 외교 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그저 (북한 인권 문제를) 무시한 것만이 아니라 북한 인권 단체들에 공격적 태도를 취해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못 본 척하기 힘든 문제다. 미 행정부는 홍콩, 신장, 버마(미얀마) 등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버마(미얀마)에 대해서는 좀 목소리를 냈지만 홍콩이나 신장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다. 이런 지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이것이 동맹을 갈라 놓을 문제냐고 묻는다면 예측하기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북한 문제에 있어서 말이다.”
-지난 1월 본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미국이 대북 전단 금지법 등에 대해 공개적 우려를 표시하지 않은 것은 “동맹을 존중했기 때문”이라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침묵할지는 불투명하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어느 시점엔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할 수도 있나?
“공개적 문제 제기보다는 비공개 대화를 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무대 뒤에서도 많은 외교가 이뤄질 수 있다. 어떤 대화가 오갈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미 정부가 ‘북한 인권이 중요하다’고 하면 한국 정부는 ‘우리도 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북한의 형제 자매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핵 문제’라고 할 것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한국의) 진보 정부와 이런 대화를 해봤다. 또 대북 전단 금지법처럼 문재인 정부가 전례를 깨고 취한 조치들은 이미 다 벌어진 일이다. 예단하기 어렵지만 문재인 정부가 뭔가 극적인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 이상 공개적 분열은 없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러나 만약 갑자기 탈북자들이 왔는데 다 돌려보낸다든지 하면 그것은 미 행정부가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어민 2명을 ‘흉악범’이라며 북송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질까?
“그런 경우라면 물론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는 공개적이든 비공개로든 분명히 뭐라고 할 것이다. 공개적으로는 (동맹의) 단합을 보여주고 싶어하기 때문에 섬세한 균형을 맞추겠지만 그런 일을 그냥 넘기기는 어렵다.”
한국이 고립 자초하고 있어 우려
-지난 2월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을 축하한 것이 실망스럽다고 했다. 어떻게 보나.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들의 연합체가 조직되고 있다. 호주, 일본, 미국, 영국 등은 뭉치기 시작했다. 참여하지 않고 있는 하나의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이 유사한 생각을 가진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스스로 고립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 대목에서 차 부소장은 그래픽을 하나 보여줬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연합체인 쿼드(Quad) 4국과 한국이 서로 각각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 보여주는 그래픽이었다. 인프라 협력체인 ‘블루닷 네트워크’, 5G 협력체인 ‘클린 네트워크’ 등 여러 프로젝트에 가입한 국가끼리는 실선으로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참여 논의를 나타내는 점선만 조금 있을 뿐 확정 가입된 것은 없었다
-이 그래픽은 무엇을 의미하나?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은 실선과 점선 여러 개로 서로 연결돼 있다. 상호 관계가 얼마나 활발한지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연결된 실선이 하나도 없다. 점선만 있다. 아직 참여가 확정된 프로젝트가 없고, 기본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헤징(hedging)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한국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우려스러운 방향이다.”
-이런 우려가 미국에 많이 퍼져 있나?
“바이든 행정부 사람들에게 이 그래픽을 보여줄 때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갖고 싶어했다. 한국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우려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도 이와 연계돼 있다. 한국은 홍콩이나 신장에 대해서 별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미국의 동맹 중) 약한 고리라는 걱정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고리를 강화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미 동맹을 위한 제언을 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4년, 그리고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한·미 동맹이) 약해졌다. 그리고 인권은 그중의 한 요소이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결국은 항상 북한과 관련이 있다. 한국은 중국에 맞서려는 의지가 약하다. 북한 문제와 관련한 (한·중) 협력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드(보복)도 분명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런 논리는 좀 말이 안 된다. (중국의) 보복을 우려할수록 혼자 있기보다는 (대항) 그룹에 참여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사실이다. 쿼드가 좋은 예시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이 쿼드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한국이 쿼드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있기로 한국은 쿼드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고서 거절했다.”
중국 두려울수록 쿼드 가입해야
-그동안 한국 정부는 쿼드 회원국들의 가입 요청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이 가입하려 해도 일본이 반대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 사람들에게 직접 들었다.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고 싶어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어떤 참여국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쿼드가 하는 일 가운데 한국이 동의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동남아시아에) 백신을 배포하는 것이나 안전한 공급망 구축 같은 것 말이다. 설령 일본이 반대했다고 해도 미국이 수용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CSIS는 보고서에서 “한국이 미·중 간의 언쟁에 거리를 두고 싶더라도 지역에서 고립되는 대가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한국을 흡수할 수 있는 세력들 사이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과의 동맹은 한국에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중국과 척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헤징'은 한국의 장기 전략이 될 수 없다. 그런 전략을 쓸 수 없는 환경이다. 한국의 이익에도, 한·미 동맹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이 (쿼드) 참여국으로 중국을 상대할 때 훨씬 더 강한 입장에 설 수 있다. 쿼드의 일원으로서 중국을 상대하는 것도 한국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혼자 중국과 상대하려고 하면 훨씬 더 힘들 것이다. 지난 4년간 민주적 가치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미국 대통령과 중국·러시아의 공격을 받았다.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공세적이 된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힘을 합쳐 그 질서를 다시 세우면 중국도 거기에 맞춰 조정할 수밖에 없다. 공백이 있어서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나섰던 것이고 공백이 없어지면 달라질 것이다.”
-한·미 동맹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나.
“바이든 행정부 관료들과 얘기해 보면 그들도 현 (문재인) 정부의 북한 의제,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중국과의 관계를 제약하는지 이해한다. 한국 정부에 너무 많은 압박을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쿼드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압박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국방장관) 2+2 회의라든가 (한·미·일) 3국 국가안보실장 회의처럼 한국을 포함하는 메커니즘을 최대한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협의하고 협력하는 습관을 서서히 만들어 조금씩 부드럽게 (한국이란) 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 놓으려고 하고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로 갈수록 북한 문제에서 점점 더 절박해지면서 중국에 더 맞서지 않으려고 할 것 같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