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선 하루 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 내외의 박빙 승부를 오래전부터 예측했다.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하루하루 2%씩 따박따박 상승세를 탔다”고 했다. 민주당 선거 캠프에선 “지지율 격차가 한 자리 이내로 들어왔다”는 주장이 나왔고, “사전 투표에서 이겼다”는 문자 메시지도 발송했다.
하지만 정말로 박빙 승부인지, 상승세를 탔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개표함 뚜껑도 열지 않은 사전 투표를 누가 이겼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로 언론이 객관적인 판세를 보도할 수 없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서울의 최종 결과는 오세훈 후보 57.5%(279만표), 박영선 후보 39.2%(190만표)였다. 작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서울 지역 득표가 304만표였지만 불과 1년 만에 지지자의 3명 중 1명가량인 114만표를 잃은 참패였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기간에 쏟아낸 민주당의 주장은 가짜 뉴스였던 셈이다. 예전에도 선거 막판에 각 정당의 아전인수식 판세 분석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수치를 내놓거나 ‘이겼다’고 단정하며 총공세를 펼친 적은 드물었다.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선거법의 취지는 우세 후보에게 표가 쏠리거나 약세 후보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효과를 차단해서 선거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가짜 뉴스를 확산시키며 유권자를 헷갈리게 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 선거 직전 6일간 공표 금지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안 맞는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금지 기간이 아예 없고 프랑스도 이틀에 불과하다.
2013년부터 선거 5일 전에 이틀간 사전 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여론조사 공표 금지의 폐지 필요성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전 투표자는 직전 여론조사를 참고할 수 있지만 선거 당일 투표자는 최신 여론조사를 참고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엉터리 여론조사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공표 금지가 없어지면 조사 회사들은 투표 결과와 근접한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선거 후에 저질 조사 회사를 가려내 퇴출시키기도 쉬워진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관련 선거법 개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권이다. 여야(與野)는 선거 때마다 우열이 바뀌긴 하지만, 이기는 쪽은 우세를 밀어붙이기 쉽고 지는 쪽은 열세를 감추기 쉽기 때문에 양쪽 다 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캐나다에선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규제가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1998년에 폐지됐다.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란 게 판결 요지였다. 우리나라 유권자는 언제까지 알 권리를 빼앗기고 속수무책으로 모독을 당해야 하는가. 정치권은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