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코로나 백신 접종 확대로 빠른 속도로 정상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흐름이 크게 바뀌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봉쇄 조치로 억눌렸던 항공·유통·에너지 등 전통산업 주식은 경제 정상화 기대감에 되살아나고 있다. 반면 지난해 많이 올랐던 기술주 가운데 향후 수익률이 의문시 되는 주식은 큰 폭의 조정을 받고 있다. 투자자들은 “다시 워런 버핏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꿈보다 기업의 이익과 거시경제 지표를 중시하는 가치주 시대가 되돌아왔다는 뜻이다.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91) 회장은 지난 56년간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며 수많은 경제 위기를 이겨내고 281만526%의 투자 수익을 올렸다. 월스트리트 평균(2만3454%)보다 훨씬 높았다. 어떻게 했을까? 그는 “공격보다 위기 때 수비를 더 잘했다”고 자평했다. 또 “자본주의의 강점은 시장에 기반해 좋은 기업에 자본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며 “나의 투자 기반이 된 미국 경제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1973년 10월 중동 전쟁 중에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줄이면서 국제유가는 6개월 동안 300% 올랐다. ‘1차 오일쇼크’이다. 보험사업이 주력인 버크셔 해서웨이 입장에서 자동차 운행이 줄면서 사고가 감소한 것은 호재였으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악영향이 더 컸다.
버핏은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 주식 투자 비중을 더 늘렸다. 그는 “우리가 투자한 기업들의 내재가치(intrinsic business value)는 좋은 상태”라며 “1973년에는 대규모 평가손이 났지만 장기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에는 계열사들의 지출 비용을 줄이며 내실화로 위기를 견뎌나갔다.
◆2000년대 초: 닷컴 붕괴와 9·11
버핏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거품) 당시에 닷컴 기업에 투자하지 않았다. 빠르게 변하는 IT(정보기술) 산업에서는 기업들의 내재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닷컴 버블이 붕괴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주가가 급락하고 우량 기업이 시장에 싼 매물로 나왔다. 버핏은 좋은 기업을 매력적인 가격에 인수합병했다.
2001년 9·11 테러 사태는 보험사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상 최악의 재난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였다. 버핏은 테러 위협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월드컵과 올림픽 테러 대비용 재보험 상품을 새로 내놓고, 2002년에는 ‘미드 아메리칸 에너지’ 등 여러 우량 대기업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버크셔 해서웨이는 1965년 버핏의 회장 취임 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버핏은 당시 “기업 활동이 내가 전에 본 적이 없는 속도로 급정지했다”며 “주식, 채권, 부동산, 원자재 등 모든 분야의 자산 투자자들이 마치 배트민턴장에 뛰어든 새처럼 피를 흘리고 혼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버핏은 이러한 상황에서 4가지 대응책을 실행했다. ①풍부한 현금 확보 ②계열사 경쟁력 향상 ③기업 인수 통한 신규 수입원 창출 ④버크셔의 유능한 경영진 유지 및 확대였다. 버핏은 60조원의 보유 현금을 동원해 폭락한 주식과 싼 가격에 나온 우량 기업들을 사들였다. 16조원 상당을 골드만삭스 등 자금난을 겪는 회사에 빌려줘 수익을 냈다. 또 북미 지역의 거대 철도회사인 ‘BNSF’와 독일의 ‘쾰른재보험’을 인수해 몸집을 배로 키웠다. 상당수 계열사 경영진들은 비용 절감에 나서 영업이익을 오히려 늘렸다. 버핏은 이후 애플 등 ‘생필품’이 된 IT(정보기술) 기업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2020년: 코로나 사태
버핏은 코로나 사태 1년이 지난 2020년 2월 27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국 중소기업인들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그는 “미국 전역에는 성공 스토리가 가득하다. 미국 건국 이후, 창의적 아이디어와 야망, 아주 작은 자본을 가진 개인들이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거나 기존 제품에 대한 고객의 경험을 개선함으로써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꿈 이상의 성취를 했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그 사례로 100년 전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했던 ‘시즈 캔디’와 80여년 전 자동차 보험 직접 판매 방식을 도입했던 ‘가이코’를 꼽았다. 또 1915년 영어도 못 하는 러시아 이민자가 만든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모든 매장이 6주 이상 문을 닫았는데도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버핏은 “미국의 방방곡곡에 있는 성공적인 기업가 군단에 경의를 표시해 달라”며 “인류 역사상 미국처럼 건국 후 232년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배양토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자유, 창의, 혁신을 중시하는 미국 기업인에 대한 존경,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번영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버핏의 위기 극복 비결인 셈이다.
[주가야 오르든 말든… 버핏은 기업가치만 봤다]
워런 버핏(91)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월스트리트의 투자자였던 벤저민 그레이엄(1894~1976)에게서 투자법을 배워 발전시켰다. 그는 ①좋은 사업 구조와 ②유능하고 정직한 최고경영자(CEO)를 가진 ③서로 다른 분야의 몇몇 회사 주식을 ④매력적인 가격에 ⑤가능하면 지분의 80~100%를 사들여 ⑥평생 보유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보험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2020년 말 현재 1380억달러(약 155조원)에 달하는 보험 지급준비금을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하면서 좋은 투자처가 생기면 다양한 기업(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올렸다.
버핏의 투자 전략 가운데 핵심은 ④번의 ‘매력적인 가격’ 산정 방식이다. 그는 가치(value)와 가격(price)을 분리한다. 기업은 유형 자산과 브랜드 가치 등 고유한 내재 가치(intrinsic business value)를 갖고 있다. 반면 주식시장에서 기업 주식은 가격(주가)에 따라 거래된다. 버핏은 먼저 그 기업이 미래의 존속 기간에 매년 벌어들이는 모든 현금 수입(이익)을 매년 예상되는 금리로 할인해 현재 가치를 계산한다(현금 할인법). 이 현재 가치를 연도별로 모두 합하고 현재의 자본금을 더하면 현재 시점에서 그 기업의 내재 가치가 나온다. 이 내재 가치와 현재의 주가를 비교해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사고, 고평가로 생각되면 팔았다. 버핏은 저평가 기업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현금을 그대로 보유하거나 버크셔 해서웨이 자사주를 매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