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된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꽃다발을 들고 있다. 2021.06.11뉴시스

정권 교체에 목마른 야당의 당심(黨心)과 흑백(黑白) 정치의 퇴장을 요구하는 국민의 마음이 서른여섯 이준석씨를 제1야당 국민의힘 당대표로 밀어 올렸다. 40대 기수론(旗手論) 등장 이후 50년 만에 출현한 30대 주역(主役)의 정치 지진이다. 진원지는 지난 4년 국가·국민·세대·빈부 사이에 골을 깊게 판 ‘문재인 단층(斷層)’이다. 정치 구도는 좌우(左右)에서 신구(新舊) 대결로 크게 이동했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당사가 더 심하게 요동친 이유다.

내년 3월 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향한 정치 일정도 급물살을 탔다. 더불어민주당은 당헌 당규에 대선 180일 전에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도록 했다. 달력으론 9월 초에 해당한다. 국민의힘은 대선 120일 전에 후보를 선출한다. 11월 초다. 몇 달 차이가 있지만 두 당 모두 후보 선출이 코앞에 닥쳤다.

이준석의 약점이 장점으로 바뀌어 비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 당선 이력이 없는 경험 미숙은 구(舊)정치의 역한 냄새를 씻어줄 듯싶다. 옅어진 지역색(地域色)은 국민의힘이 수도권 유권자에게 접근하기 쉽게 정서적 문턱을 낮췄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경쟁 후보들의 공격이 당의 오랜 족쇄였던 박근혜 그늘을 벗어나게 도왔다. 유승민 전 의원과의 친분 문제는 이제 후보 경선 방식을 더 투명하게 만들도록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혹은 풍문(風聞)만 오가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됐든 대통령 후보에 뜻이 있다면 국민의힘에 합류(合流)하는 방식을 놓고 더 이상 꾸물거릴 이유와 여유가 사라졌다.

외투는 당장 바꿔 입어도 새 몸을 하루아침에 만들기는 어렵다. 햇빛 속에선 젊음도 금방 퇴색(退色)한다. 시대의 급소(急所)를 두드려야 한다. 그것이 시대정신이다. 먼 데서 찾을 게 없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를 그대로 얻어오면 된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국민들은 배반당한 느낌이 들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렸다. ‘이준석 당(黨)’은 ‘대통령 당(黨)’ 대신 불평등한 기회가 평등해지고, 불공정한 과정은 공정해지며, 정의롭지 않은 결과가 정의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 속에 심어야 한다.

세대(世代) 논쟁의 핵심은 사람이 살아온 세월만큼 앞을 멀리 내다보느냐 아니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월의 길이만큼 내다보느냐다.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살아온 세월의 지혜가 필요하고, 두려움 없이 미래의 문을 열어젖히려면 젊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후(前後) 세계 주요 국가 지도자들은 루스벨트·처칠·드골·아데나워·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등등 60대와 70대였다. 요즘 신체 연령으로 치면 80대다. 과거의 참화(慘禍)를 되풀이하는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때의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다.

IT 혁명 속 미국과 일본 간 우위(優位)가 또 한번 뒤집어졌던 1980년대 공격하는 미국 측 리더는 빌 게이츠·스티브 잡스 등 1955년생이 주축이었다. 성(城)을 지키던 도시바·후지쓰·NEC 등 일본 대표 기업 리더들은 거의가 1920년생이었다. 젊은 미국이 20·30년 더 멀리 내다봤고 이것이 미·일 대역전의 세대 요인이었다. 국민의힘은 돌파하는 야당이 돼야 한다. 젊은 공격수들을 전면(前面)에 배치해야 한다. 노숙(老熟)한 병풍에 둘러싸여야 젊음도 돋보인다. 세대 연합의 이점(利點)도 봐야 한다.

이준석 대표 세대는 문재인 시대의 희생자다. 국민연금은 그 세대가 연금을 받을 무렵인 2056년 바닥난다.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적립금도 2025년 고갈된다. 1960년대 이후 부채를 유산(遺産)으로 받을 첫 세대다. 국가 현실을 냉철하게 읽어야 내 삶을 지킬 수 있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과학과 상식의 눈으로 무장해야 한다. 대통령은 취임 40일 후 고리 원전 폐쇄를 선언하면서 ‘원전 해체 노하우를 축적해 원전 해체 산업을 육성하자’고 했다. 이것이 이데올로기 안경이다.

‘문재인 보유 국가’라는 시대착오는 산산조각 났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지망생들이 문 대통령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축복을 기다리는 모습도 곧 사라진다. 대통령의 축복은 독(毒) 반(半) 복(福) 반이 됐다. 뭉치면 죽고 헤어져야 희망이 보이는 상황이다. 머지않아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몸부림이 시작된다. 민주당의 각자도생은 국민의힘보다 훨씬 과격하고 격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