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가 종말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역사에서 종말이란 말은 부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왕조 멸망 같은 종말이 없는 건 아니다. 이 종말이 지금 또 오고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대통령마다 모조리 다 혁명과 감옥을 만난다면 그런 정치사야말로 종말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는 대규모 민주화 저항 앞에서 무너졌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권도 더 급진적인 혁명에 먹혔다. 이 혁명도 긍정 평가보다는 부정 평가를 더 받는다. 더는 혁명 당하지 않을 마지막 혁명 정권이라 자처했을 문재인 정권도 또 하나의 구 체제로 저물고 있다. 의미는 자명하다. 지체된 보수·진보를 넘어 더 진화한 보수·진보가 나와야 할 때다. 이런 여망이 최근 보수 진보 양쪽에서 급격히 표출된 바 있다.

20일 강남역 11번 출구 앞에서 열린 '강남역 모여라' 행사에 참석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태영호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서 이준석 대표는 2시간동안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국회사진기자단

보수 쪽에선 이른바 이준석 현상 이면의 역설적 정서가 그러했다. 이준석 현상은 따분하고 맛대가리 없는 국민의힘 관성(慣性)에 대한 식상의 반어적 표현이었다. 이준석 돌풍엔 작전 세력의 바람몰이와 여(與)쪽 역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 “그래, 차라리 36세 네가 한번 해봐라” 하는 우상 파괴적 충동이 작용한 점도 있었을 것이다. 이준석 됨됨을 좋아할 이유는 없더라도, 그의 파격이 심심한 보수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기길 바랐던 것이다.

진보 쪽에선 전남대 86학번으로 6월 항쟁에 참여했던 광주 자영업자 배훈천 대표, 서울대 82학번으로 미문화원 점거·농성을 주도했던 소상공인 함운경 대표 두 사람의 운동권 비판이 그러했다. 이들은 말했다. “소득 주도 성장, 최저임금제, 주 52시간제는 사기다. 강남이란 구름 위에 사는 자들이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오손도손 사는 자영업자와 서민의 생태계를 순식간에 망가뜨렸다.” “좋은 아파트 살고 싶다'는 건데, 왜 이 욕구를 부정하나?”

이처럼 맥 빠진 보수와 무지막지 좌파에 대한 생활 현장의 반란은 이미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보수 정계도 좌파 정계도 지금 큰 정체성 혼란에 빠져있다. 국민의힘 주류는 보수인 듯하면서도 보수·자유·우파로 분류되기를 사절한다. 자신들은 좌로 이동한 ‘중간’이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도 복잡하다. 골수 주사파, 미친 탈레반, 이들에게 주눅 들지 않겠다는 송영길, 조국 털어내고 문 대통령 뛰어넘자는 양정철, 딴살림 차리는 이재명, 보수의 보배 추미애와 조국, 차세대 비(非)주사파 박용진, 모두가 각자도생이다.

양쪽은 결국 이 혼란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선 2022’에 휩쓸릴 것이다.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올라가려면 그 전에 국민의힘에선 기회주의 아닌 선명 자유주의가, 민주당에선 전체주의 극좌 아닌 민주적 좌파(democratic left)가 각기 신주류로 들어서면 좋겠지만, 양쪽 다 그럴 형편이 못 된다. 그렇다면 ‘대선 2022’까지는 앞으로, 특히 정권 교체 세력의 경우, 어떤 정국이 펼쳐지고, 펼쳐져야 할 것인가?

싸움이 진영 대 진영의 전면전으로 접어들면 좌파들은 이념적 주적 앞에서 한 덩치로 선다. 우파들은 반면에 내부 부족 싸움에 더 매몰된다. ‘대선 2022’ 때 또 이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이게 싫으면 정권 교체 쪽 각파는 후보 단일화에 닥치고 응해야 한다. 단일 후보를 만들 때까지 정권 교체 계열들 사이엔 밀당이 있을 수 있다.

밀당 과정에서 이준석 대표는 알아야 할 게 있다. 국민의힘엔 여론 지지율 1~3%를 넘는 감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전 총장에게 “버스 놓치지 말라” 어쩌고, 그를 가두리에 넣고 바보 만들 처지가 아니란 말이다. 체급 높은 윤석열이 오히려 국민의힘을 향해 “내 정권 교체 펀드에 가입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만하다. 이러지 않고 아쉬워하거나 간 보는 것처럼 보이면 그는 망친다.

윤석열 최재형 같은 입장들이 3당을 만들 계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정권 교체 세력 전체를 담고 있지 않은 국민의힘에 바로 낚일 필요는 없다. 당분간 밖에서 정권 교체 대형(隊形)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지를 설파하면 된다. 이 대형은 우파·중도·기타를 아우를 ‘공정·상식 연대’일 수 있다. 이 아우름은 국민의힘처럼 중도를 얻는답시고 자유 우파를 버리는 게 아니라, 자유 우파를 견지하면서 중도를 견인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살리기 국민 단일 전선을 기필코 이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