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63조원·영업이익 12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그걸 보고 그 전전날 일본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 전략을 듣는다’라는 제목을 단 인터뷰 기사였다. 반도체 산업 재생(再生) 전략을 지휘하고 있는 기업 쪽 사령탑 두 명이 나섰다. 일본은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공급처 다변화와 자국(自國) 내 생산기지 확보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미국과 손잡고 대만과 제휴를 강화한다는 후속 대책도 내놨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본은 최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기반 자체가 허물어졌다. 한국·미국·중국은 일본과 투자 규모 단위가 다르다. 당장 정부 투자를 몇 조(兆) 엔(円) 단위로 늘려야 한다. 지금으론 한국 삼성전자·대만 TSMC·미국 인텔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인재(人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20년 퇴보를 만회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대만 TSMC와 제휴를 통해 기술을 습득(習得) 할 기회부터 확보해야 한다”
씹으면 몇 가지 뒷맛이 남는다. 우선 1990년대 초까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던 일본 반도체 산업의 현황이다. 30년 전 일본은 자신이 무적(無敵)이라 믿었고 세계도 그걸 의심치 않았다. 기자도 그 시절 현장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영화(榮華)를 지켜봤다. 1990년 1월 네덜란드 필립스사(社) 사장이 일본을 방문했다. 필립스가 소유하던 반도체 제조기기(器機) 회사를 매각하기 위해서다. 당시 반도체를 만드는 설비 제조 회사의 세계 톱(top) 10 가운데 1위부터 9위까지가 일본 기업이었다. 필립스가 하나 쥐고 있던 그 회사를 일본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지금 일본에는 반도체 전성시대를 받쳐주던 대리석 기둥 몇 개가 잡초 무성한 빈터에 서 옛 영광을 들려줄 따름이다. 허리 역할을 하던 기술 인력은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나라·보수가 더 많은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대(代) 마저 끊겼다. 한국 원전(原電) 산업의 10년 후가 이럴 것이다.
묘하게 걸리는 대목이 있다. 일본 정부의 투자 규모와 역할 확대를 주문하면서 비교 대상으로 한국·중국·미국을 차례로 들고, 일본 기업 경쟁 상대로 한국 삼성전자·대만 TSMC·미국 인텔 순(順)으로 꼽았다. 한국 정부는 삼성전자 공장에 송전선 하나 제대로 연결해 주지 않았다. 삼성의 최고 의사 결정권자는 4년 내내 수사와 재판을 받다 두 번째로 감옥에 갇혔다. 한국 정부는 상(床) 차려지면 숟가락 들고 생색을 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受託) 생산) 시장 점유율은 대만 TSMC가 54%, 삼성전자가 18%가량이다. 그런데도 과녁은 삼성전자다. 이유가 있다. 중국 견제의 반도체 전략에서 미국과 일본은 겉은 물론 속계산까지 일치하는 동맹이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업 대표를 불러일으켜 생큐(thank you) 했다 해서 큰 그림의 구도가 단번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 그림 속에서 대만과 TSMC는 미국·일본의 우군(友軍)이다. TSMC가 1987년 설립돼 걸음마를 떼던 시절 일감을 몰아준 것도 일본이다.
반도체 정치는 비정(非情)하다. 적대 국가는 물론이고 우방 국가도 예외가 없다. 중국이 첫 견제 대상으로 오른 것도 아니다. 일본은 35년 전 미국의 폭격을 맞았다. 1986년 미국은 일본을 압박해 미국과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는 일본 반도체 가격 감시를 의무화하는 협정을 맺었다. 이 한방으로 일본의 반도체 패권(覇權)은 금이 갔고, 높아진 수출 가격의 틈을 비집고 한국 반도체는 세계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얼마 전 대통령은 일본의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장비 수출 금지를 극복했다는 자축연(自祝宴)을 열었다. 일본의 수출 금지는 일본 내에서도 자해(自害) 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우리는 위기 극복의 성공 공식을 찾아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향해 전진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세계 흐름을 더 진중(鎭重)하게 읽어야 한다.
일본 반도체 쇠망사(衰亡史)에는 목숨 있는 것에 죽음이 따르듯 모든 권세(權勢)에는 끝이 있다는 성자필쇠(盛者必衰)의 교훈이 담겨 있다. 이런 흥망(興亡)의 감각은 우리가 누군가를 따라잡고 앞서나갔다면 뒤에 오는 나라도 우리를 따라잡고 앞서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겸손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대한민국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두 다스 가깝지만 이런 흥망의 감각과 역사 앞에서 겸손한 자세는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