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들의 우주 관광 경쟁 시대가 점화됐다. 영국의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지난 12일(한국 시각) 자신이 세운 우주 기업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을 타고 4분간 우주의 무중력을 체험하고 돌아온 데 이어, 20일 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블루 오리진의 로켓을 타고 우주로 향했다. 오는 9월에는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민간인만 태운 유인 우주선으로 지구 선회 관광을 계획하고 있다.
우주 탐사는 오랫동안 정부 주도로 진행됐다. 2001년 미국 기업인 데니스 티토가 2000만달러(약 230억원)를 내고 민간인 최초로 국제 우주정거장을 다녀왔지만 이후 우주 관광객은 7명 추가되는 데 그쳤다. 이제 민간 우주 관광이 본격화되면서 앞으로 1년 내 지난 20년간 나온 우주 관광객의 두 배가 우주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의 매슈 바인치를 교수는 지난 11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우주 관광을 본격화할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왕복선과 로켓 캡슐 등 관광 방식 다양
억만장자들의 우주 관광은 제각각이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왕복선은 대형 항공기에 실려 이륙한 다음 공중에서 엔진을 점화해 우주 경계선까지 상승했다. 우주선은 고도 86㎞에서 4분 정도 탑승객들에게 우주의 무중력을 경험시키고 다시 지상의 활주로로 착륙했다.
블루 오리진은 전통 로켓 방식이다. 뉴셰퍼드 로켓이 6인승 유인 우주선 캡슐을 탑재하고 발사된다. 이후 캡술이 로켓과 분리돼 100㎞ 상공까지 갔다가 낙하산을 펼치고 사막으로 내려온다. 재사용 로켓은 따로 발사대로 돌아온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로켓과 유인 캡슐 방식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블루 오리진과 같다. 하지만 고도가 다르다. 9월 스페이스X의 유인 우주선인 크루 드래건은 미국 결제 처리 업체 시프트4페이먼트의 대표인 재러드 아이작먼 등 민간인 4명을 태우고 540㎞ 상공에서 3일간 지구 궤도를 도는 비행에 나선다.
스페이스X는 내년 우주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와 손잡고 크루 드래건에 민간인을 태워 400㎞ 상공 국제 우주정거장으로 보내기로 했다. 2023년에 일반인의 달 관광도 계획하고 있다.
우주 관광 비용은 초고가다. 버진 갤럭틱 탑승권이 20만~25만달러다. 그럼에도 일론 머스크를 포함해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팝가수 저스틴 비버 등 유명 인사와 부호 600명이 선구매했다. 블루 오리진은 지난 6월 경매에서 우주 관광 티켓이 무려 2800만달러에 낙찰됐다고 밝혔다. 국제 우주정거장행 티켓은 5500만달러에 이른다.
◇관광은 본격적 우주산업 진출 위한 발판
미국 투자은행 코웬 조사에 따르면 재산이 500만달러 이상인 사람 5명 중 2명이 버진 갤럭틱의 25만달러 우주 관광 티켓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지구에는 그런 사람이 200만명쯤 된다. 버진 갤럭틱은 우주 관광의 영업 마진이 70%까지 성장해 소프트웨어 기업에 필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우주 관광이 2030년까지 40억달러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우주 관광이 초음속 장거리 비행을 대체하지 않는 한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100㎞ 상공의 카르만 라인까지 올라가면 공기가 희박해 비행이 어렵다. 버진 갤럭틱과 블루 오리진은 몇 분간의 준궤도 비행을 제공할 뿐이다. 비행 횟수가 적으면 돈을 벌 기회도 줄어든다.
또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그날로 사업을 접어야 한다. 미국은 우주왕복선에 민간인을 태워 국제 우주정거장으로 보내다가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고가 나면서 전면 중단했다. 이후 다시 민간인이 우주정거장으로 갈 때까지 15년이 걸렸다. 최근 모건스탠리는 버진 갤럭틱의 2030년 예상 매출을 180억달러에서 130억달러로 낮춰 잡았다.
결국 우주 관광은 본격 우주 비즈니스를 위해 기술력을 입증하는 발판이나 검증대로 볼 수 있다. 미 공군 항공우주대학원의 웬디 휘트먼 코브 교수는 지난 5월 과학 뉴스 사이트인 ‘컨버세이션’에 “우주 기업들은 우주여행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우주 관광을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블루 오리진은 우주 관광에 쓰는 뉴셰퍼드 로켓에 이어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대형 로켓 뉴글렌을 개발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로켓으로 우주정거장행 화물과 우주인 수송을 독점한 데 이어 미국 정부의 달 유인 착륙선도 맡았다. 장차 화성 유인 탐사도 노리고 있다. 브랜슨 회장의 버진그룹 역시 항공기로 공중에서 소형 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발사하는 회사인 버진 오비트를 보유하고 있다. 올 초 첫 공중 로켓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
◇2040년 우주산업 1조달러 시대 예상
우주 관광은 지난 10년간 우주산업의 성장을 보여주는 척도다. IT(정보 통신) 산업에서 성장한 기업들이 2000년대 잇따라 우주산업에 진출해 재사용 우주로켓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덩달아 인공위성 산업이 성장했다. 위성 영상으로 농작물 작황 상태를 분석해 곡물 가격을 예측하고, 콜레라 같은 전염병 창궐도 예측한다. 최근에는 초소형 위성 군단으로 전 세계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기업들도 나왔다.
특히 전자 장비가 발전하면서 소형 위성도 과거 대형 위성이 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이 크게 늘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세계에서 운용 중인 위성은 2062기로, 이 가운데 무게 500㎏ 이하 소형 위성이 930기다. 우주 관광 선두 주자를 자처한 브랜슨 회장이 노리는 시장도 바로 이 소형 위성 발사 서비스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우주산업이 지난해 3500억달러에서 2040년에 1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건스탠리의 경쟁자인 UBS는 2020년대 말까지 우주산업이 8000억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만 280억달러가 우주산업에 투자됐다. 과거 식민지 개척자들이 신기한 동식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안정적 투자 기반을 마련했듯, 우주 관광도 우주산업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지속적 투자를 이끄는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