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꾸준히 40%대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이후 한때 지지율 30%가 깨지기도 했지만 회복했고 지금은 심지어 오르고 있다. 문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많은 여론조사에서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일관되게 확인되는 흐름이다. 이제 대선을 7개월 정도 남겨놓은 말년의 대통령이 이런 지지율을 기록한 전례가 없다. 이 시기쯤 갤럽 조사에서 김대중은 26%, 노무현 24%, 이명박 25%, 박근혜가 29%(최순실 사건 직전) 정도였다.
역대 여권의 대선 주자들은 말년의 인기 없는 대통령과 ‘차별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금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차별화가 아니라 문 대통령과 동조화하려고 고심하고 있다. 여권만이 아니라 야권을 포함한 전체 정치인 중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높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7개월 뒤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지만 전례가 없는 현상임은 분명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해 ‘측근 비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과 다르다. 문 대통령 딸의 이상한 해외 이주와 이에 도움을 준 이상직 의원에 대한 상식 밖의 비호, 문 대통령을 ‘형’이라고 불렀다는 유재수의 비리 비호, 청와대가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선언했을 때 투기를 한 대변인, 최근 임명한 반부패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대통령 아들에 대한 계속되는 국고 지원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드루킹 여론 조작과 문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한 울산 선거 공작도 탄핵에 이를 수 있는 비리다.
‘측근 비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대중(大衆)이 ‘측근 비리를 모른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문 대통령이 검찰과 법원을 통해 자신과 정권의 문제를 최대한 틀어막은 효과가 가장 클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 이 문제들이 어떻게 드러날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앞으로 7개월 동안은 검찰, 법원에 의해 문제 노출이 봉쇄될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 중견기업 등의 임직원들은 4년간 나빠진 것이 없다. 임기 내내 수백조원을 살포한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호남과 수도권에 밀집한 민주당 고정 지지층이 결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이낙연 전 총리 지지율 상승이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실제 호남 언론 여론조사에 따르면 광주에서 이 전 총리 지지율은 지난 2월보다 9%포인트 올라 이재명 경기지사를 역전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노무현에 대한 부채 심리’가 ‘문 대통령은 지키자’로 이어져 ‘묻지 마 지지’ 분위기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 야당의 국정 능력에 대한 회의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를 발전시킬 능력’이란 물음(현대리서치 조사)에서 이 지사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보다 14%포인트 더 높았다. 국정 능력이란 면에서 야당을 미더워하지 않는 사람이 여전히 많은 것이다.
지금 두 가지 상반된 신호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역대 가장 높은 임기 말 지지도를 나타내고 있는 반면, 각종 조사에서 정권 교체 희망이 정권 유지 희망보다 10%포인트 정도 높다. 이 엇갈리는 지표는 내년 3월 대선이 상당히 박빙으로 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야권은 정권 교체를 원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절대적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말기 때도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비율이 정권 유지보다 더 높았지만 결과는 박근혜의 당선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말년에 세 아들의 비리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되자 ‘김대중’은 이슈가 되지 못했다. 결과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었다. 대선은 총선이나 서울시장 선거와 달리 지난 정권에 대한 찬반 투표가 아니라 새 정권을 택하는 선거다. 과거 심판이 아니라 미래 선택이란 뜻이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 소용돌이가 쳤던 시기에도 다음 정권의 국정 과제를 묻는 조사에서 ‘경제’가 1위였고 ‘적폐 청산’은 4위였다.
여야 고정 지지층을 뺀 중간층은 대략 20% 정도로 추산된다. 승부의 키를 쥔 이 중간층은 문 정권의 공과(功過)보다는 누가 다음에 나라를 잘 이끌지를 본다. 현재 민주당 이재명 지사, 이낙연 전 총리는 모두 행정과 국정 경험자다. 반면 야권의 윤석열 전 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사실상 국정 무경험자로 문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는 것 외에 보여준 것이 없다. 야권의 국정 경험자들은 모두 지지율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문 대통령의 지지율 자체가 낮지도 않지만, 야권이 국정 능력에 대한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 채 문 대통령 비판만으로 내년 대선을 치르려 한다면 작년 총선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