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도쿄행을 단념한 시점은 올림픽 개막 나흘 전이다. 원칙적으로 가는 게 옳았다. 3년 전 평창올림픽 때 아베 일본 총리가 방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통령이 도쿄에 꼭 가야한다는 여론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 여론이 강했다. 일본이 와달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북한이 석 달 전 불참을 선언해 남북 평화 이벤트도 무산됐다. 그래도 밀어붙이다가 막판에 “성과가 미흡하다”며 단념했다. 대통령은 방일 대가로 일본의 수출 규제 해제를 기대한 듯하다. 일본이 해줄 리가 없다.
올림픽을 기회로 정치적 성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성과를 위해 정상이 올림픽에 가는 것은 아니다. 성과를 기대하고 추진했어도 겉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실이라 해도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메달 따러 올림픽에 간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올림픽은 언제나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다. 제풀에 주저앉은 대통령의 집착을 해명하기 위해 청와대는 올림픽의 선을 넘었다. 정치색을 칠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대한체육회는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올림픽 선수촌 외벽에 현수막을 걸었다. ‘이순신 장군 12척’ 문구를 응용한 문구였다. IOC에서 경고를 받고 철거했다. 정치적 선전에 해당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생트집이라고 일본을 비판했다. 일반 여론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마찰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평창올림픽 때 한국 아이스하키 선수가 이순신 동상을 그린 헬멧을 썼다가 IOC 경고를 받았다. 헬멧에서 그림이 지워졌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3년 만에 또 이순신 장군의 문구를 내세웠고, 또 경고를 받았고, 또 내렸다. 국가 영웅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인가. 현지 기자에게 선수촌 풍경을 물었다. 각국 국기만 보일 뿐 한국과 같은 구호성 현수막은 안 보인다고 한다. 코로나로 감옥처럼 통제된 상황에서 그런 행위 자체가 어색한 분위기라는 것이다.
대한체육회는 다시 현수막을 걸었다. ‘범 내려온다’ 문구와 호랑이 지도다. 결과적으로 쑥스럽게 됐다. 16위한 나라가 범이라고? 이번엔 지도의 꽃잎 그림이 일본 온라인에서 입길에 올랐다. 호랑이 등 부분, 지도로 따지면 동해에 꽃잎 두장을 그렸다. 일부가 “독도 아니냐”고 시비를 걸었다. IOC가 아니니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일본이 올림픽 홈페이지 자국 지도에 독도를 넣었고 IOC가 이를 용인했기 때문에 설사 IOC가 얘기했어도 “이것은 한국 영토인 독도”라고 해도 됐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친절하게 “독도가 아니라 그냥 꽃잎”이라고 했다. 평창 때도 올림픽 조직위가 한반도기에서 독도를 넣었다가 IOC 지적에 뺐다. 북한 눈치에 태극기를 내리더니 일본 눈치에 독도를 지웠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대한민국 상징이 수난을 당한다. 배짱도, 담력도 없으면서 올림픽에 무언가를 자꾸 덧씌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그리자 여당 대선 후보들은 너도나도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다. 누군가는 일본을 향해 “저놈들” “고약하고 치사하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래야 표가 모이기 때문이다. 그들 말대로 했으면 국민 대부분은 안산을 몰랐을 것이다. 김연경의 진가도 몰랐을 것이다. MZ세대 체육인의 위력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의 분투가 빛난 대회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MZ세대가 다른 가치를 보여줬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개막 직전까지 정치적 성과를 저울질하던 대통령은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경기 자체를 즐긴 젊은 선수들이 많았고, 긍정의 웃음 뒤엔 신기록까지 따라왔다”고 했다.
육상 높이뛰기 기사에서 이런 제목을 봤다. “메달 못 따면 어때요, 결과보다 도전 즐겼다.” 높이뛰기 결승전 마지막 장면은 강렬했다. 허장성세로 일관하던 카타르의 챔피언은 금과 은의 갈림길에서 기대와 욕망, 긴장과 불안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메달과 노메달의 기로에 선 한국 선수는 웃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역전당했을 때 질겅질겅 껌을 씹는 선수만 있었던 게 아니다. 외야 담장에 기대 고개를 푹 숙인 선수의 절망이 있었다. 배에 기름이 끼었다고 욕을 먹지만 나는 그 절망의 장면이 한국 야구팀 전체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져 메달을 놓친 터키 배구팀은 코트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올림픽 메달은 이런 것이다.
스포츠는 적자생존의 세계다. 어려서 압도적 실력을 보여도 학교 대표가 될까 말까라고 한다. 국가대표는 하늘이 내린다고도 한다. 그러면 올림픽 메달은? “메달 못 따면 어때요.” 이렇게 즐기면서 국가대표에 오른 선수가 없다. 정치인들이 침을 튀기면서 아첨하는 MZ세대에서도 그런 선수는 없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똑같다.
메달이 올림픽의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한국 선수가 수영, 육상, 체조에서 보여준 것처럼 치열한 도전은 그 자체가 감동적이다. 난민 대표처럼 팀 자체에 메달 이상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올림픽 메달에 초연한 나라는 없다. 몇 번 순위가 밀리면 정신을 차리고 엘리트 체육에 힘을 쏟는다. 마지막 날 미국이 극적으로 1등에 올랐을 때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을 밀어내고 최다 메달을 가져갔다”는 긴급 뉴스를 올렸다. 일본에서 올림픽 여론이 반대 다수에서 찬성 다수로 바뀐 것도 일본 선수가 따낸 메달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은 45년 만에 가장 안 좋은 올림픽 성적을 거뒀다. 인구 460만 뉴질랜드와 경제 규모 세계 61위인 쿠바에도 뒤졌다. 한국 스포츠를 오염시킨 정치인과 정치병에 걸린 체육인이 진짜 패배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선수들의 감동 드라마에 올라타 “메달은 중요하지 않다”며 어깨를 토닥인다. 요컨대 자기도 잘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선수들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하라”고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