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한국에서 방송인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비다(24)씨는 20일 본지 인터뷰에서“고국 소식을 들을 때면 멀리 떨어진 한국에 사는 나도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전 세계 각 분야 전문가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아프가니스탄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빨리 마련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9·11 테러 20주년을 앞두고 미군 완전 철군을 시작하자 파죽지세로 진격, 적극 공세에 돌입한 지 일주일 만인 15일 수도 카불을 함락했다. 탈레반은 1차 집권기(1996~2001) 때 여성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인권 유린, 문명 파괴 행위로 악명을 떨쳤다. 지금 이들은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 주장했지만, 이미 전국에서 주민들을 살해하거나 폭행하고 있다는 뉴스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수도 카불 공항은 탈레반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려는 이들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됐다. 탈레반 집권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부모 품에 안겨 탈출, 러시아·우크라이나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뒤 현재는 한국에서 방송인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비다(24)씨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성(姓)은 밝히지 않았다. 아프간에 남은 친인척이나 지인들이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나조차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절망스럽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실제로 두려움에 떨었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현재 한국에서 방송인 겸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비다씨가 인터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했다./고운호기자

“탈레반 집권으로 어린 소녀들의 삶 더욱 위험해질 것”

-탈레반 집권 뒤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 카불 공항의 모습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젊은 엄마들이 공항 담장 밖에서 철조망 너머로 갓난아기를 필사적으로 미군에게 던지는 모습, 이륙하는 비행기에 매달려 탈출하려던 현지인들이 공중에서 추락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다. 그렇게라도 해서 탈출해야겠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추락사 소식을 듣고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위험천만하지만 비행기에라도 매달려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그 사람들의 마음은 다급하고 두려운 거다. 나의 부모님도 내가 두 살 때 그런 심경으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탈출했다. 해외 거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탈레반이 합법적으로 외국 비자를 획득한 아프간인들의 출국을 막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더욱 걱정이다. 그 사람들도 탈레반의 진입을 앞두고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서둘러서 빠져나가려 했을 테니까. 외국 정부에 협력했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현지 상황을 보도해온 언론인 같은 사람들도 누구보다 먼저 탈레반에게 보복당할 위험에 처해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 편집동에서 아프가니스탄 출신 모델 비다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1.8.20. / 고운호 기자

-탈레반은 과거 여성들에게 부르카(전신과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의상)를 강제로 착용하도록 하는 등 여성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들이 다시 부르카를 강요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부르카를 써 본 적이 있나.

“자라면서 부르카를 써 본 적이 없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척 어른 몇 분은 지금도 쓰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열다섯 살 때 몸이 아픈 외할머니를 뵈러 엄마·남동생과 함께 한 달 정도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적이 있다. 두 살 때 빠져나왔기 때문에 사실상 그때 처음 직접 아프가니스탄을 본 것이다. 그때는 탈레반이 물러갔을 때였는데도 부르카를 쓴 여성들이 보였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이 이걸 쓰고 대체 어떻게 앞을 볼 수 있을까’였다. 앞을 볼 수 있게 구멍을 낸 부르카도 있지만, 아예 눈까지 가린 것도 있다. 또 이런 걱정도 들더라. 그걸 두르면 안에 있는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런 상황을 악용해서 테러를 저지르기 위한 위장 도구로 부르카가 이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들려오는 현지 소식들이 과장됐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은 없나?

“모두 사실이다. 부모님도 현지에 남은 친척들을 통해 계속 소식을 듣고 있다. 미국에 계신 엄마와 매일 통화하는데 내 걱정도 많이 하신다. 방송에 나온 뒤 인터뷰와 아프가니스탄 관련 행사 참석 요청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졌다. 엄마 걱정도 있고 해서, 대외 활동을 중단할 생각이다. 솔직히 나도 많이 두렵다.”

“자유롭게 살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1960~70년대 수도 카불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여성들이 미니스커트 등 서양식 복장으로 자유롭게 거리를 다니고, 대학교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이다.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들이 많았다.

“몇 년 전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직접 동영상과 사진을 찾아보니 그랬더라. 화장을 하고 멋을 낸 여성들이 거리를 거닐고, 패션 부티크도 있었다. 외할머니가 예전에 패셔니스타(옷을 멋지게 입는 사람)였고 남자들한테 인기도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엔 그 얘기가 믿기지 않았는데, 그 동영상을 보니 충분히 그랬겠구나 싶다. 외할머니 세대가 젊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동영상 속 그 시절 아프가니스탄은 내가 알고 있는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탈레반이 오지 않았다면 지금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다른 여러 나라처럼 멋있게 잘 살고 있었겠지.”

-탈레반이 공식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들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라고 선언했다. 일부 국가는 탈레반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탈레반을 합법적 정권으로 인정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가의 통치자라고 선언했지만, 그들의 통치를 두려워해서 지금 사람들이 공항으로 몰려가서 탈출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의 한 도심 거리 모습. 젊은 여성 세 명이 짧은 치마를 입고 활짝 웃으며 걷고 있다. /트위터 캡처

-난민 생활을 거쳐서 미국에 정착했고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지금의 삶에 대해 만족하나.

“우리 가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거쳐 내가 초등학교 나이 때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정말 고마웠다. 2층 집에 살았는데 식당과 욕실까지 있었다. 전엔 상상도 못 할 집이었다. 메디케어(의료보험)와 푸드스탬프(식량지원) 서비스도 제공됐다. 마음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요즘 절감하고 있다. 언제 어디든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입고 싶은 옷을 입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하게 느낀다.”

-개인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중학생 때 한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하게 보고 한국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가 어떤 내용인지는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학교 때 한국어 수업을 수강 신청했고, 한국 교환학생도 신청했다. 다른 외국 학생들은 K팝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고 먼저 한국을 알게 됐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K팝을 듣기 시작했다. 앞으로 계속 한국에 머물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소녀들의 꿈을 이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아프간 난민들을 위해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이번 사태가 터진 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그걸 묻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런 질문을 받는 것이 슬프다. 제발 아프가니스탄을 위해서 전 세계 각 분야 담당자들이 빨리 힘과 지혜를 모아서 대응 방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 개막하는 도쿄 패럴림픽에 참가하려던 아프가니스탄 여성 태권도 선수가 이번 사태로 출전이 힘들어졌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태권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정말 사랑받는 운동이다.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코리아’ 하면 먼저 ‘태권도’부터 이야기한다. 태권도 때문에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낯설었던 나라를 친숙하게 여기게 됐다. 그뿐 아니라 친척 동생들이 K팝을 즐겨 듣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청소년들도 전 세계 또래들과 다름없이 마음껏 운동과 공부를 하고 꿈을 키우며 살아가야 할 텐데,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탈레반이 20년 전 축출된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소녀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교육자·과학자·의사·운동선수 등의 꿈을 키워왔고, 실제로 어른이 돼서 꿈을 이룬 경우도 있다. 지금 고국에서 떨고 있을 소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몸이 가장 중요하니 부디 몸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상황이 지금보다 좋아지면, 절대로 여러분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꿋꿋하게 이어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모든 사람과 간절히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