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대권 주자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지난 5~6개월 동안 선두를 달리던 윤석열 후보의 독주 구도에 제동이 걸리면서 홍준표 후보가 부상하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고발 사주(使嗾) 의혹’ 때문인지 윤 후보 지지도가 떨어지고 그것이 홍 후보의 지지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보수 정치에서는 신인(新人)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하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계에서는 비정치인의 대권 수혈(輸血)이 쉽지 않았다. 군부 출신인 전두환·노태우를 제외하면 경력상 정치 토박이가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은 기업인 출신의 이명박이 유일하다. 그때도 상대인 정동영과 이회창이 표를 갈라 가진 덕을 봤다. 법조인 출신의 이회창은 몇 번의 국회 진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꿈은 좌절됐다. 현대그룹의 정주영·정몽준 부자(父子)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황교안도 보수 정치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했다.
당의 중요한 요직도 신인이 잠입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당 내외에서 현 야당 지도부의 위상이 전(前)만큼 못한 것도, 특히 이준석 대표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도 경험과 관록의 부족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하긴 지금 신인의 착지(着地)를 기다리기에는 당의 미래, 나라의 미래가 걸린 정권 탈환의 대의(大義)가 너무 코앞에 다가와 있기는 하다. 지금 보수 정당이 어떤 의미 있는 실험을 하기에는 상황이 급박하다.
이런 보수 정치의 풍토에서도 여론은 야당의 ‘새 피’를 원했고 국민의힘은 과감히 수혈을 시도했다. 법조인 출신의 윤석열과 최재형을 영입했고 36세 당대표를 선택했다. 거기까지는 놀라운 시도였고 어떤 의미에서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기성 정치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고발 사주 의혹’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그 배후가 여권이 아니라 어쩌면 야당 내부일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다면 ‘새 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득권 정치가 다시금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혈이 좋고 기득권이 나쁘다거나 그 반대가 옳다는 식의 단순 논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쩌면 기득에 집중하는 것이, 검증되지 않은 것에 항상 불안해하는 것이 보수 정치의 본령이고 동시에 한계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지난 3~4년 동안 문재인 정권하에서 보수 진영은 정권 교체의 과제를 방치하다시피 했고 그 와중에 보수층 국민이 그 과제를 새로운 수혈로 감당하는 길을 열어줬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기득 세력은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면 수혈되는 ‘새 피’는 험한 야당의 길에서 고생했던 기성 정치에 어부지리(漁夫之利) 하는 것일 수 있다. 새 피는 새 피대로 대가(?)를 치르는 것이 공평하다면 윤 후보의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 바로 그 대가인지도 모른다.
비정치인 영입 세력과 기성 진영의 강자 간에 치러질 야당의 대권 싸움은 이제부터이고 여기서부터다. 터질 것 터지고 싸울 건 싸우고 견딜 것은 견디고 여기서 살아남는 자가 이길 것이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도 그 도전 중의 하나다. 이런 정도의 홍역도 안 치르고 대선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리 난 것처럼 한탄할 일도 아니다. 내부 경쟁도 결국 사활을 건 싸움일 수밖에 없다. 거기엔 많은 힐난과 고발과 저격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도 시험의 하나다. 다만 그 싸움이 치사해서는 안 된다. 파괴적으로 가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 시험이 끝난 뒤다. 다른 야당 후보와 단일화 못하고 내부 단결 못하면 경선은 아무 의미 없는 개싸움이 되고 만다. 역대 대선에서 단일화 못한 야권은 예외 없이 졌다. 노태우는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난립하는 바람에 당선됐고 이회창은 이인제를 붙잡지 못해서 김대중에게 졌다. 대선을 5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서 야권에 절실한 것은 정권 교체다. 많은 국민이 바라고 있는 것은 ‘꿩 잡는 매’다. 꿩 잡을 수 있다면 어떤 매도 좋다. 윤매도 좋고 홍매도 좋다. 어떤 매이냐에 매달리다가 꿩을 못 잡아도 상관없다는 발상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