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강한 여름에는 양산을 쓴다.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게도 양산을 씌워주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태양 복사열을 관리해 온난화를 막자는 이른바 지구 공학 기술이다. 하지만 자연에 손을 대면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근본적인 대책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등한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과연 지구는 양산을 펼 수 있을까.
◇호주에서 첫 지구 공학 실험 진행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달 25일 “구름 형태를 바꿔 햇빛을 막아 호주의 거대 산호초를 구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 서든 크로스대의 대니얼 해리슨 교수 연구진은 지난 3월 해안에서 100㎞ 떨어진 석호에 배를 멈추고 공중으로 바닷물을 분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노즐 320개가 뿜어낸 바닷물은 이내 옅은 구름을 이루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른바 ‘해양 구름 증백(增白)’ 기술이 실제 자연에서 처음으로 시연된 것이다.
원리는 이렇다. 평소 바다 위에 있는 층적운은 구름 입자가 크고 성기다. 햇빛은 구름 입자와 부딪히지 않고 쉽게 통과한다. 바닷물을 공중으로 분사하면 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 결정이 구름 입자를 만드는 응집핵이 된다. 구름 응집핵이 늘어나면 작은 구름 입자가 증가한다. 그만큼 구름이 밝아지고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한다. 이른바 ‘투메이 효과(Twomey effect)’다.
호주가 바다 구름에 손을 대려는 것은 산호초 때문이다. 호주 북동부에는 2300㎞에 걸쳐 산호초가 이어진 대보초(大堡礁)가 있다. 바다 생물 600여 종이 이곳에 기대 산다. 지난 2017년 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에 폭풍과 불가사리 피해까지 겹쳐 대보초가 큰 피해를 입었다. 1995~2017년 사이 대보초의 산호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지금 상태라면 2070년까지 산호가 2020년 기준으로 60%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호주 산호 복원 적응 프로그램(RRAP)은 열에 강한 산호 품종을 이식하고 불가사리를 퇴치하면서 동시에 바다 구름을 밝게 하면 산호 손실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를 위해 서든 크로스대 연구진은 내년에는 바닷물 분사 노즐을 3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정도 규모면 구름을 30% 더 밝게 해 태양 복사열을 6.5%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프린터 개발자가 인공 화산 구현
햇빛을 차단해 온난화를 막자는 지구 공학의 아이디어는 화산 폭발에서 나왔다. 지난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하면서 2000만 톤의 이산화황이 분출됐다. 이산화황은 성층권을 따라 전 지구를 순환하면서 햇빛을 차단해 지구 평균 기온을 섭씨 0.5도 떨어뜨렸다.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폭발 당시 지구 기온은 5도나 내려갔다.
지구 공학 기술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우주에 거대 반사거울을 설치해 지구로 오는 햇빛을 되돌려 보내거나 고도 16~25㎞ 성층권에서 미세 입자를 뿌려 햇빛을 차단할 수 있다. 바닷물 분사 역시 우주에서 오는 단파장의 태양 복사 에너지를 반사하려는 것이다. 선박에서 해수면에 거품을 뿌려 역시 햇빛을 반사할 수도 있다.
태양 복사열은 지구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이러한 장파장의 태양 복사열이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기온 상승을 초래했다. 과학자들은 6~13㎞ 고고도에 있는 구름에 응집핵을 뿌려 얼음 입자 크기를 키우고 구름을 솎아내면 지구에서 나오는 태양 복사열이 쉽게 우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 과학공학의학한림원은 지난 3월 이 중 성충권과 고고도 권운, 해양 층적운에 대한 지구 공학을 집중 연구하라고 제안했다.
호주 연구진의 실험은 프린터 기술자들 덕분이다.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간하는 스펙트럼지는 지난 7일 “바닷물 분사 노즐을 개발한 주역은 과거 휼렛패커드(HP)와 제록스에서 잉크젯 프린터와 토너를 개발했던 아만드 뉴커만”이라고 소개했다.
구름 응집핵을 만들려면 바닷물이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로 분사돼야 하지만, 기존 노즐은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미터) 수준에 그쳤다. 뉴커만은 2009년 워싱턴대 팰로앨토연구소에 합류하면서 과거 같이 일했던 엔지니어를 규합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쓰던 장비까지 가져와 노즐을 개발했다.
새 노즐에서 압축 공기는 가운데, 물은 통로 벽면을 따라 이동한다. 초고압 상태의 공기가 초음속으로 분출되면 압력 차이로 급속 팽창한다. 이 힘이 주변의 물을 폭발시켜 미세 입자로 만든다. 노즐에 전류도 흘려 물방울들이 서로 뭉치지 않도록 했다.
◇“전 지구적 기상이변 초래” 비판도
호주 연구진의 실험으로 지구 공학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올 6월 스웨덴에서 20㎞ 성층권에 햇빛을 반사할 탄산칼슘 입자를 살포하는 실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 여론에 실험을 중단했다.
뉴욕대 연구진은 지난 4월 “성층권에 살포한 입자가 산성비를 초래해 생물 다양성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성층권에서 햇빛을 차단하면 몬순(계절풍)을 약화시키고 수증기량을 줄여 가뭄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다 위 구름을 밝게 하는 실험도 같은 비판을 받고 있다. 태양 지구 공학 실험이 국지적인 영향만 주는 기술로 이미지를 바꾸는 잘못된 선례가 된다는 것이다.
민승기 교수는 “엘니뇨나 라니냐는 해수면 온도 0.5도 차이로 발생해 전 지구적인 기상이변을 부른다”며 “열대 바다에서 국지적으로라도 인위적으로 수온을 떨어뜨리면 반대로 육지에 집중호우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상예측에 쓰는 컴퓨터 모델은 구름과 강수에 가장 취약해 지구 공학이 초래할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