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특정인들 주머니에 거의 1조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게 생긴 ‘대장동 특혜 논란’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 ‘이낙연이냐 이재명이냐’ 헷갈리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히려 ‘이재명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몰아주고 있는 것 같다. 이재명 지사는 민주당 경선에서도 50%가 넘는 득표율을 유지하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는 전주보다 더 올랐다.
지난 1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나와 논란이 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소폭 내려갔다. 여론조사 회사마다 다르지만, 최소한 올라가지는 않았다. 거칠게 말하면, ‘대장동 1조’보다 4획짜리 ‘왕(王)’자가 더 악재인 셈이다. 왜 그럴까.
‘화천대유’ 논란의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이재명 지사의 발언은 수시로 바뀌었다. “대장동 사업 설계는 내가 했다”더니, 그 다음엔 “토건세력이 해먹으려고 하는 걸 막았다”고 했다. 가장 최근 발언은 “한전 직원이 뇌물먹고 부정행위하면 대통령이 사퇴하냐”는 창의적(?) 논점흐리기, “관리책임”이라는 두루뭉실한 책임 아닌 책임론 비스무레한 것이었다.
이 지사 측은 ‘뉴스’나 ‘팩트’가 나올 때마다 ‘음모론 드라마’로 해명한다. 화천대유의 요상한 수익 구조를 둘러싼 보도가 나오면 ‘조선일보는 선거에서 손떼라’ 소리치거나, ‘국힘과 토건세력이 해먹으려던 (일)”이라고 받아쳤다. 음모론에 진영논리를 붙여 방어하면, 최소한 반은 ‘내 편’이 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총장 측은 손바닥 ‘왕’자 논란이 불거지자 “동네 할머니들이 토론 잘하라고 써줬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로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자 “비누로 지워봤는데 안지워지고” “손세정제로 닦아봤는데” 라고 단계별로 상세히 설명했다. 심지어 “손가락 위주로 씻어서”라는 말도 내놨다. 무슨 질병관리청의 코로나 예방 ‘손씻기’ 강의인가.
윤 캠프 쪽은 ‘개그’를 다큐로 받는 묘한 패턴이 있다. 그것도 앞뒤가 안맞는 ‘삑사리’ 다큐로 말이다.
이렇게 말했으면 어떨까. “제가 처음에는 도리도리하더니, 방송 토론회에서 상대 말을 잘 못받아친다고 하네요. 동네 할머니들이 많이 실망하셨답니다. 이번에는 좀 잘해보라고 손바닥에 ‘왕’짜를 써주셨어요. 바로 지우기도 뭣해서 그냥 나왔습니다. 기자들 보기엔 제가 오늘 ‘왕’짜 덕 좀 본 거 같습니까?” 이렇게 ‘셀프 디스’를 섞어 설명해 보는 거다. 물론 ‘도리도리’ 논란이 다시 화제에 오르거나, 반대 진영에서는 지속적으로 ‘박근혜 오방색 논란’을 끌어와 각종 음해성 주장을 계속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같은 당 홍준표 의원이 “늘 무속인을 끼고 다닌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무속 대통령 하려고 저러나 의아했지만 손바닥에 부적을 쓰고 다니는 것이 밝혀지면서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대선 경선에 무속인까지 개입하고 저질” 같은 말을 지금처럼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 홍준표가 민주당 지지자처럼 같은 당 후보에게 ‘박근혜 이미지’를 씌우느냐” 반발하는 측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홍 의원의 주장에 대응하는 윤석열 측 반박은 “빨간 속옷 입는 사람 누구?” 수준이었다.
개그를 개그로 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윤 전 총장 본인이나 캠프가 ‘무결한/완벽한 총장님’이라는 ‘환상’에 젖어있는 건 아닐까. 윤석열 지지자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윤석열이 밉지만 문 정부를 끝낼 보수 후보는 그 사람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모르거나, 망각한 것 같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이재명 지사나 홍준표 의원처럼 ‘순간에 되받아치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평생 연습해도 안되는 사람은 안된다. 그래도 ‘자기 셋팅’을 새로 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대통령과 재벌을 잡아넣은 정의의 수호자’ ‘문재인 정부에 맞선 법치의 마지막 보루’ 이런 건 지지자들이 해줄 말이다. ‘9수해서 사시에 붙은 남자, 세상의 쓴 맛 좀 아는 후보’ ‘노총각으로 살아 꼼꼼한 배려는 좀 부족한 남자’ ‘도리도리는 하지만 거짓말은 안하는 후보’ 이런 세팅이 필요한 시점이다. 눈치보는 참모들이 이런 말 하긴 어렵다. 후보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개그를 다큐로 받는 ‘참사’는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