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사업은 ‘모범적 공익 사업’이기는커녕 전대미문의 권력형 토건(土建) 비리로 드러나고 있다. “대장동 토건 부패, 강제 수사와 특검으로 비리를 밝히고 처벌하라!”는 제목의 경실련 성명이 정곡을 찌른다. 대장동 비리는 “철저하게 국민 상대로 장사하고 민간 업자에게 과도한 부당 이익을 안겨준 공공과 토건 사업자의 짬짜미 토건 부패 사업”이다. 권력과 민간 업자들이 결탁해 국민 재산을 약탈했다.

성남시 판교대장 도시개발구역 모습. 2021.10.7/연합뉴스

대장동 사태는 성남시 버전 도둑 정치(Kleptocracy)다. 도둑 정치는 권력자가 권한을 이용해 부정 축재하거나 정경유착으로 특권을 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권력에 대한 견제나 감시가 소홀한 제왕적 대통령이나 제왕적 지자체장일수록 도둑 정치의 유혹도 커진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게 인류의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투자액 대비 천 배 이상을 번 대장동 비리 규모다. 민간 업자들이 대장동 한 곳에서 거둔 부당 이익이 수천억 원이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정치 후진국에서 발견되는 도둑 정치가 세계 10대 경제 부국(富國) 한국에서 발현되면서 도둑 정치 규모도 천문학적으로 커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이하 이재명)는 대장동 비리가 저질러졌던 당시 성남시장(2010년 7월~2018년 6월 재직)이었다. 경실련 성명의 명징한 분석대로 “인허가권자인 성남시는 부정부패를 차단하기보다 특혜 이익의 지원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장동 도둑 정치의 처음과 끝에 대장동 개발의 ‘설계자’이자 최종 인허가권자인 이재명이 연루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로써 그는 유력 대선 후보로서는 치명적인 도둑 정치인(kleptocrat) 의혹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프레임 전환에 뛰어난 이재명은 뇌물 수수가 의심되는 야당 인사들에게 도둑 정치 모자를 씌우는 선공(先攻)으로 진영 대결을 소환하였다. 적과 동지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진영 전쟁이 시작되면 이재명의 도둑 정치 여부는 부차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계산은 적중했다. 진영 대결이 극대화하는 대선 국면에선 이재명이 도둑 정치인이라는 의혹이 설령 사실로 밝혀진다 해도 정권 재창출을 바라는 이들은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인 이재명이 후흑의 달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청나라 말기 지식인 리쭝우(李宗吾·1879~1944)는 뻔뻔함과 음흉함(면후심흑·面厚心黑)을 제왕학의 절대 병기로 설파했다. 철면피의 흑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후흑의 초보 단계에 불과하다. 두꺼운 얼굴임에도 형체가 없고 시꺼먼 마음을 가졌어도 검은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높은 단계다.

후흑의 극치는 한없이 뻔뻔하고 음흉하면서도 ‘순결한 정의의 화신(불후불흑·不厚不黑)’으로 나타나는 경지다. 이런 상승(常勝) 무공을 구사하려면 ‘후흑을 행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항상 정의와 도덕의 옷을 입어야 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이 맨 처음 선보여 세상을 어지럽힌 불후불흑의 기교(技巧)는 절세(絶世) 고수 이재명에게서 한층 강력해졌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며 명백한 잘못에도 결코 사과하지 않고 ‘말을 애매모호하게 흐리는’ 거짓말을 정치의 방략으로 삼는 것도 불후불흑의 핵심 기법이다.

그러나 후흑학을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廢)하라’는 처세술로만 읽는 것은 심각한 오독(誤讀)이다. 뻔뻔하고 음흉한 호걸들이 설치던 영웅할거 시대엔 공자·맹자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날 후흑학의 목표는 후흑의 기술을 공맹 도덕과 접목시키는 데 있다고 리쭝우는 결론짓는다. 이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면 현실 정치의 악취를 뚫고 의미 있는 삶을 지향하는 ‘실천 도덕의 정치’가 중요하다는 철학적 통찰로 승화된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에게 책략과 이익 너머에 있는 규범과 가치를 꿈꾸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초래한 부동산 폭등으로 모두가 고통받는 터에 대장동 도둑 정치가 민심에 불을 질렀다. 오늘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마지막 토론도 전격 취소됐다. 지상파 3사 합동 TV 토론회가 폭로할 도둑 정치 의혹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후흑 정치인들이 판치는 도둑 정치는 얼굴이 셋, 팔 여섯 개인 악신(惡神)들이 처참한 살육전을 일삼는 아수라(阿修羅)의 현장이다. 민중의 재산을 약탈한 대장동 비리를 뭉개는 자들에겐 국민적 분노의 화염지옥이 기다린다. 지금 대한민국 최대 과제는 도둑 정치의 아수라에 맞서 정의를 되살리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