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의혹은 ‘경기경제신문’의 박종명 기자가 쓴 한 편의 기사에서 시작됐다. 제보를 토대로 쓴 ‘이재명 지사님,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란 칼럼이었다. 처음엔 박 기자도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화천대유는 기사가 나가자마자 삭제를 요구하더니 다음 날 박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뭐가 급한지 언론중재위 절차도 제쳐놓고 바로 형사 고소에 들어갔다. 닷새 뒤엔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청구액이 무려 10억원이었다. 겁 먹고 입 다물라는 뜻이었다.

이재명(오른쪽) 경기도지사가 2018년 10월 1일 유동규 경기관광공사 사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기념촬영하는 모습./경기관광공사

금액도 터무니없지만 고소장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화천대유는 기사의 ‘정치적 의도’를 거론했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순한 의도’와 ‘특정 후보자를 흠집 낼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지사는 대장동과 관계없다는 점을 조목조목 적었다. 통상적인 고소라면 자기가 당한 피해 사실 위주로 따지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화천대유의 고소장은 마치 이 지사가 고소인의 한 사람인 양 작성돼 있었다. 이 지사와 관련없다면서도 이 지사 입장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걸 보고 박 기자는 “더 큰 게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너무 큰 것을 건드렸구나 싶었다”는 것이었다.

대장동 의혹이 이토록 거대할 줄 몰랐던 것은 취재 기자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생각이 바뀐 건 이재명 지사가 조선일보만 콕 찍어 공격하는 걸 보고서였다. 경기경제신문의 첫 보도 후 조선일보가 본격적인 의혹 파헤치기에 나서자 이 지사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선거 방해” “헌법 파괴” “중대 범죄”라며 온갖 독설을 퍼부었다. 며칠도 안돼 대부분 언론이 따라왔지만 이 지사는 오로지 조선일보만 찍어 맹공을 이어갔다. 정치 고수가 구사한다는 ‘한 놈만 패기’ 전술이었다.

이 지사의 공격은 논리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이었다.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 차원의 반박 대신 “견강부회” “허위 조작” “마타도어” 같은 험한 말을 쏟아내며 ‘무조건 가짜 뉴스’로 몰았다.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주류 언론과 전선을 형성해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선거 전략으로 보였다. 이 지사는 사실 대신 정치 공학과 진영 논리로 싸우려 하고 있었다. 팩트에 약한 자가 팩트 논쟁을 피하는 법이다. 그의 대응은 대장동 논란의 팩트 싸움에 자신 없다는 실토로 들렸다.

예정된 절차처럼 이 지사는 조선일보에 대한 무더기 법적 공격에 나섰다. 어제까지만 선관위에 이의 신청을 17건 내고, 1건은 형사 고발했다. 그 대부분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 보도여서 정정(訂正)할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대장동 개발 핵심, 경기관광공사 사장 영전’ ‘이재명 인터뷰한 언론인, 7개월 뒤 화천대유 설립’ ‘사명(社名)에 주역 64괘가 들어간 까닭은’ 등등 사실 다툼 여지가 없고 선거와 무관한 기사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었다. 실제로 선관위는 지금까지 결론 낸 13건 중 11건에 대해 “이유 없다”며 기각·각하 판정을 내리고, 2건에는 ‘공정 보도 협조 요청’을 했다. 예상된 결과였지만 이 지사 측으로선 아무래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기자들을 겁주어 위축시키는 것이 목적일 테니까.

사건을 취재하다 보면 찌릿하고 ‘감’이 오는 때가 있다. 낚싯줄로 전달되는 손맛처럼 ‘아, 뭐가 있구나’ 싶은 확신의 순간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 그것은 당사자 반응을 보면 안다. 뒤가 구리고 감출 게 많은 사람일수록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화내며 협박하거나 기사의 ‘의도’를 거론하며 편파성 프레임을 덮어씌우는 경우, 뻔한 사실마저 무조건 부인하며 진흙탕 공방으로 몰고 가는 경우라면 거의 100%다. 드러내선 안 될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대장동 의혹의 핵심은 설계 오류다. 왜 공공의 몫이어야 할 수천억 원이 업자들에게 가도록 사업 구조를 짰는가. 이 본질적 질문에 이 지사는 사실로서 답하지 않는다. 설명 대신 버럭 화부터 내거나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노벨이 9·11 테러를 했다는 거냐”는 식의 말장난으로 과녁을 흩트리고 있다. 명백한 사실도 부정한다. 유동규가 오랜 측근이란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아니라고 한다. ‘돼지’ ‘마귀’ ‘악마’ ‘도둑’처럼 멱살잡이 다툼에서나 나올 만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팩트 논쟁을 말싸움, 감정 대결로 몰아가겠다는 뜻이다.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전형적 수법이다.

“1원도 받은 게 없다”는 이 지사 말을 믿는다. 그러나 ‘뭔가 있다’는 심증을 키운 것이 이 지사 본인이다. 사실 대신 ‘정치’로 싸우려는 그의 대응이 의혹을 더욱 부풀리고 있다. 과거의 무능을 덮으려다 희대의 의혹을 자초하는 꼴이다. 객관적 팩트로 결백을 입증하지 않는 한 대장동 꼬리표는 끝까지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버럭 화낸다고 겁먹을 기자도 없고, 현란한 궤변에 넘어갈 국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