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가 경기지사이던 지난해 4월 양평군의 하천 불법 시설물 철거 현장을 찾아 집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민주당 대선 출정식에서 이재명 후보가 내세운 1호 공약은 ‘성장 회복’이었다. 보수·우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장 어젠다를 끌어다 자기 것으로 포장했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이재명다운 선택이다. 중도·보수를 겨냥한 득표 전략이겠지만 성장의 가치를 말한 것 자체가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성장 담론이 실종된 지 오래다. 성장을 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듯 취급받는 분위기에서 이 후보가 경제 파이 키우기를 들고나온 것을 환영한다.

이 후보의 성장론엔 형용사가 붙는다. ‘전환적 성장’과 ‘공정 성장’이다. 멋진 표현이다. 그런데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어떤 도그마에 의해 제약되거나 구속받는 이념형 성장론의 진정성을 믿지 않는 편이다. 과거에도 온갖 미사여구가 달린 변종 성장론이 숱하게 있었다. 누구는 ‘포용적’ 성장을 말했고, 누구는 ‘따뜻한’ 시장경제를 외쳤다. 참으로 아름다운 구호였지만 결국 성장을 포용·따뜻함 같은 사회적 가치의 하위 개념으로 두는 짝퉁 성장론에 불과했다. 성장의 외피를 쓴 분배·평등·공정의 담론이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형용사 달린 성장을 내세웠다. ‘소득이 주도하는’ 성장 말이다. 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그러나 가짜 정책이었다. 성장이 목적이라면서도 실제론 노동의 몫을 키우는 분배에 방점이 찍혔으니까 말이다. 경제 원리로도 인과관계를 뒤집은 논리 모순이었다. 성공했다면 노벨상감이었지만 결국 부작용만 낸 채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구체적 실행안은 안 나왔지만 이 후보의 ‘전환적 공정 성장’ 또한 비슷한 골격으로 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뒤집는다는 ‘전환적 성장’은 신재생 에너지 전환에 무게가 실려있다. 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탄소 중립 도그마의 연장에 가깝다. ‘공정 성장’은 약자 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로 내용이 채워져 있다. 사회적 가치가 우선이고 경제 파이 키우기는 그에 따른 부차적 결과로 밀려있다. 이 후보는 2호 공약인 기본소득마저 성장과 엮었다. 기본소득을 지급해 소비를 늘림으로써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논리인데, 이것 역시 ‘마차가 말을 끄는’ 식의 본말 전도나 다름없다.

이재명식 성장론의 핵심은 ‘국가 주도’다. 민간·기업·시장 대신 정부가 정점에 서서 주도권을 쥐고 국가 자원을 배분하겠다고 한다. 이 후보는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국가 투자”를 공약했다. 1970년대식 개발 독재를 연상케 하는 개념이다. 그는 박정희의 개발 어젠다까지 들고 나왔다. 박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가 산업화를 이뤘듯 자신은 ‘에너지 고속도로’로 탈탄소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좌파 진영이 치를 떠는 박정희까지 끌어들인 것이 변신 자유자재의 이재명답다. 보수층의 박정희 향수에 편승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이 후보가 은연중 ‘박정희 마케팅’을 구사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는 박정희의 경제 성과에 대해 긍정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 후보는 강력한 행정력과 추진력을 자신의 주특기로 내세우는데 이 역시 박정희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코로나 대응이나 계곡 불법시설물 철거 때 현장에서 진두 지휘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박정희의 야전 사령관 스타일을 벤치마킹 했다는 말들이 나온다.

일만 잘하면 되지, 보수·진보를 왜 따지냐는 이 후보의 실용론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와 박정희 사이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첫째, 박정희의 국가 주도론은 민간 경쟁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경제 주체들을 경쟁시켜 잘하는 곳에 국가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 새마을 운동도 성과있는 마을에 더 지원하고, 무역진흥 행사에선 무조건 수출 잘하는 기업인을 옆에 앉혀 우대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기본소득’을 뿌리자는 이 후보와는 발상부터 다르다.

둘째, 박정희는 밖을 내다 본 글로벌 전략가였다. 세계 시장을 먹겠다는 대외 지향적 성장론을 펼쳤다. 이 후보의 전환적·공정 성장은 철저히 국내용이다. 글로벌 경쟁이란 관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박정희는 대중 영합을 배격했다. 이 후보는 자타 공인의 포퓰리스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후보가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인기 없는 정책을 밀고 나갈 것 같진 않다.

이 후보는 “저성장에 따른 기회총량 부족과 불평등”이 사회 갈등의 본질이라고 했다. 그의 문제 의식에 100% 동의한다. 그러나 국가 주도로 밀어 붙인다고 박정희가 될 순 없고, 입으로만 성장 운운한다고 경제가 성장하진 않는다. 이념과 평등 도그마, 무엇보다 이 후보의 정체성과도 같은 포퓰리즘을 버리지 않는다면 짝퉁 박정희, 가짜 성장론에 불과하다. ‘소득주도 성장’의 시즌2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