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고 유엔 기후회의 알록 샤르마 의장(왼쪽)이 2021년 11월 13일(현지 시각) 회의 폐막 연설에서 성과가 부진했던 걸 사과하며 잠시 울컥하고 있는 장면. / AFP 연합뉴스

13일 폐막된 글래스고 유엔 기후회의가 실패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 등 거대 배출국의 2030년 감축 목표를 강화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는데 거의 외면당했다. 1년 뒤 이집트 회의를 다시 기약하기로 했다. 매년 기후회의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다음 해 일정 잡기라는 말이 있다. 비슷하게 됐다. 알록 샤르마 기후회의 의장은 폐막 때 “일이 이런 식으로 된 걸 사과한다”고 했는데, 영상을 보면 고개를 숙이면서 울컥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유엔 기후회의는 정말 귀중한 제도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 120국 정상이 모였고, 197국 대표들이 2주간 지구 기후를 살려내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모든 참가국의 입장을 사전 조율하고, 차이를 좁히고, 설득해가면서 80여 개 항목 하나하나의 문안을 완성해가는 작업이다. 매년 해왔고 올해 26번째다. 이런 기회 아니면 태평양, 히말라야, 아프리카 소국들이 자기 주장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가당키나 했겠나. 기후 위기의 주목도 역시 크게 높여놨다. 기후회의와 별도로 유엔 기후과학기구(IPCC)는 수천 쪽 보고서를 5~7년 간격으로 내놓고 있다. 세계 3000명 넘는 전문가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한다. 위기 현황, 미래 전망, 해결책 등에 관한 과학적 식견을 주기적으로 갱신하고 있다. 기후회의가 그 보고서를 토대로 논의를 진행한다. 30년 전 선각자들이 설계한 ‘연례 기후회의 + 주기적 기후 보고서’라는 제도 인프라 덕분에 세계가 그래도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하지만 기후회의 진행은 더디고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계가 한 배에 탔고, 배에 구멍이 났다. 배가 가라앉을지, 가라앉는다면 언제가 될지, 구멍을 막을 방법을 찾아낼지 확실치 않다. 그런데 각국이 자리 잡은 선실(船室)은 제각각이다. 제일 먼저 물이 차오를 밑바닥 선실도 있고, 베란다 딸린 럭셔리 상층 선실도 있다. 지리 조건, 발전 단계, 배출량 등이 천차만별이다. 유엔 회의는 만장일치 원칙이다. 결국 최소공약수로 가게 된다. 가장 약한 카드를 꺼내 드는 국가의 의견이 채택되는 구조다. 이번에도 마지막 순간 인도가 버티면서 석탄의 ‘단계적 폐지(phase out)’ 선언이 ‘단계적 감축(phase down)’으로 약화됐다.

어느 정부건 기후 안정화를 추구하면서 자국 고통은 최소화시키고 싶다. 인도네시아는 대통령이 ‘산림 훼손 제로 서약’에 서명했는데 환경산림장관이 ‘불공평하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한국은 석탄발전 폐지 동의 후 시한 문제가 나오자 “취지가 그렇다는 것”이라고 발을 뺐다. 메탄 감축 서약은 배출 1·2·3위국이 모두 불참했다. 배가 가라앉는 건 막아야겠는데 거기에 드는 비용은 내가 아니라 남이 지불했으면 하는 것이다. 각자 단기 이익을 챙기다가 전체적으로 함께 망하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갈 수 있다.

각국 입장은 ‘다른 나라 동참이 보장될 때 나도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보겠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다. 거기에다 선진국, 개도국의 뿌리 깊은 진영 대립이 작용한다. 미국의 2019년 1인당 배출은 15.5톤인데 인도는 1.9톤밖에 안된다. 미국은 최부강국이고 역사적 누적 배출의 25% 책임이 있다. 인도는 역사적 배출 책임은 3.2%에 불과한데 열대 지역인 데다 가난해 기후 재앙에 취약하다.

이런 사정이 얽혀 기후 협약은 처음엔 ‘선진국만 감축 의무’ 방식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30년 전엔 3분의 2를 차지했던 선진국 배출 비중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개도국을 빼고선 기후 대응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전 세계가 참여하는 기후 체제로 바꾼 것이 2015년 파리협정이다. 개도국까지 동참시키다 보니 까다롭게 할 수 없었다. 각국이 자기 상황, 능력, 우선순위에 맞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는 ‘국가 자율 감축 목표(NDC)’ 시스템이다. 약속을 못 지켜도 제재는 없다. 글래스고 회의에선 이런 ‘마이 웨이’ 시스템의 한계가 노출됐다.

이제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선진국들이 탄소 감축의 교역 규칙을 내건 후, 미이행 국가에 불이익을 주는 ‘교역을 통한 강제’ 방식이다. EU가 올 7월 예고한 탄소 국경세가 그 시작이다. 탄소 감축에 소극적인 나라의 제품에 강제 부담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소수 클럽 국가끼리 울타리를 세워둔 후, 차츰 그 울타리를 넓혀갈 것이다. WTO, OECD 등이 그런 경로를 밟아왔다. 오존층 협약도 개도국들에 일정 시한을 준 후 강제 의무를 부과했다. 향후 기후 체제는 자발 감축과 교역 강제의 두 축으로 굴러갈 것이다. 한국은 기후 붕괴를 막는다는 지구 전체의 목표뿐 아니라 국가 경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탈(脫)탄소 경쟁력을 키워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