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숱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중에서도 ‘손바닥 왕(王)자’와 ‘개 사과’ 논란은 상당히 타격이 컸다. 내용 자체도 악성이지만, 윤석열 캠프의 오작동을 드러냈다는 점이 더 문제였다.
후보 손바닥에 선명한 매직 글씨로 쓰여진 왕(王)자를 아무도 모르고 지나쳤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TV 토론 나가기 전에 지우셔야 한다”고 말린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말렸는데 후보가 뿌리쳤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심각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치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드러내 놓고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선거 직전이라면 더욱 그렇다. 윤 후보는 더구나 평가 주체로 ‘호남 분’들을 끌어들였다. 생각이 다른 호남 유권자들은 당연히 격분했다. 그래서 실언의 파괴력을 배가시켰다. 그래 놓고 “내 말의 진의가 왜곡됐다”고 버티면서 화를 키웠다. 이틀 만에 “현명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는데 바로 그날 밤 후보 소셜 미디어에 ‘개에게 사과 주는 사진’을 올렸다. 몇 단계를 거치며 악재를 입체적으로 증폭시켰다. 오죽하면 “후보가 스스로 낙선 운동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두 사건 모두 윤 후보 아내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도 확인해 주지 않았지만 정설처럼 돼 버렸다. 그래서 캠프가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와 TV 토론 외모 관리는 후보 이미지에 영향을 준다. 그런 영역을 선거본부 공조직을 제쳐 두고 후보 가족이 주무른다는 것은 상식 밖이다. 더구나 후보 아내가 ‘언터처블’ 성역이라는 핑계로 후보가 입을 타격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선거 캠프 자격이 없다.
경선 과정에서 윤 후보가 보여준 토론 실력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질문을 이해 못 하고 동문서답하는 장면도 제법 나왔다. 여당 쪽에선 낄낄거리며 조롱했다. 이재명 후보는 “우울할 때마다 야당 토론을 봤다”고 했다. 윤 후보를 꼭 집어서 “학습과 체득이 안 돼 있다”고 저평가했다. 본선 토론에서 ‘압승’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윤 후보 지지자 중에서도 “이재명을 상대로 잘 버티겠느냐”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TV 토론에서 말싸움 이긴다고 선거에 도움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이 국정 현안에 대해 시시콜콜 세부적인 사항까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정책의 기본 뼈대와 자신이 공천받은 정당의 핵심 입장 정도는 숙지해야 한다. 윤 후보처럼 정치할 생각 없이 평생 딴 일을 해 온 사람은 몇 달 벼락치기 공부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의 면학 에피소드는 들은 기억이 없다. 현안 보고서를 계속 올렸더니 떨떠름해 하며 귀찮아 하더라, 1시간 집중 토론 준비를 하고 갔는데 “빨리 끝내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더라, 이런 얘기들뿐이다. 임금이 경전 읽는 공부 시간을 게을리한다고 쓴소리를 한 신하들의 이야기가 조선실록에 널려 있다. 대선 고시를 코앞에 둔 수험생 윤석열에게 “국정 공부 하셔야 한다”고 다그치는 야당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정치 현장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다 보니 실시간으로 야당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몇 달 새 되풀이해서 들은 단골 메뉴가 있다. 윤 후보는 얘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주변에선 윤 후보를 어려워해서 할 말도 못 한다는 것이다. 윤 후보가 주재하는 회의는 검찰총장이 부하 검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경선 기간 캠프에서 윤 후보를 부르는 명칭도 ‘총장님’이었다. 3, 4선 의원들도 윤 후보에게 껄끄러운 주제 꺼내기를 주저한다고 한다. 윤 후보가 호출하지 않으면 캠프가 있는 광화문 빌딩에 불쑥 들어서지 못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7월말 윤 후보가 입당하자 마자 소속 의원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경선이 윤 후보 승리로 끝나고 가상 대결에서 여당 후보를 앞서가고 있다. 윤석열 사령관의 지휘 구령과, 국민의힘 부대의 복창 소리는 더욱 우렁차질 것이다.
5년마다 대선을 앞두고 보수 정당은 늘 이런 모습이었다. 변화무쌍 유연한 상대를 만나면 경직된 몸을 가누지 못해 뒤뚱거렸다. 운 좋게 지리멸렬한 상대를 만나면 파죽지세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탄생한 대통령은 예외 없이 ‘불통(不通)의 늪’에 빠져들었다. 후보 뒤에 ‘닥치고 일렬종대’로 늘어선 야당을 보면서 찜찜하고 불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