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10월 21일 첫 국산 우주발사체(로켓)인 누리호 발사가 성공하면 우리나라가 세계 7번째로 무게 1t 이상의 실용급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고 밝혔다. 2030년 우리 발사체로 달 착륙의 꿈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당시 발사는 위성 모사체를 원하는 궤도에 진입시키지는 못했지만 로켓의 비행 능력은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누리호 발사가 100% 성공했어도 지금으로선 위성 자력 발사나 달 착륙의 꿈은 이룰 수 없다. 국제 사회가 미사일로 전용이 가능한 우주로켓 개발을 극도로 제한하는 바람에 미국 부품이 들어간 위성이나 달 착륙선은 누리호로 발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용 위성 발사 못 하는 누리호
누리호는 2010년부터 1조9572억원을 투입해 엔진 설계부터 제작·시험 등 개발 전 과정을 순수 국내 기술로 이뤄낸 첫 발사체다. 지난 1차 시험발사는 실패했지만 1단 로켓의 엔진 4개를 한 치 오차 없이 동시에 작동시키는 클러스터링과 로켓 고공 점화 등 핵심 기술은 첫 시험에서 완벽하게 성공했다.
국내외에서 내년 누리호 2차 시험발사가 성공하면 우리나라가 자력 위성 발사국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누리호는 내년 5월 2차 발사에서 성능 검증용 소형 위성을 쏘고 12월 발사에는 차세대 소형 위성 2호, 2024년에는 차세대 중형 위성 3호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국가 안보나 우주 탐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실용급 위성은 쏠 수 없다. 미국의 국제무기거래규정(ITAR)이 자국 부품이 들어간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을 다른 나라 로켓으로 발사하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권현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위성이 우주 공간에서 위치를 잡을 때 쓰는 핵심 부품인 자이로스코프가 대표적 ITAR 제한 품목”이라고 했다.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구관측위성인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위성)은 모두 미국 회사의 자이로스코프가 들어갔다.
실제로 지난 2006년 발사된 아리랑위성 2호는 당초 비용이 저렴한 중국 창정 로켓에 실으려 했지만, 미국이 ITAR을 근거로 반대해 러시아 로콧 로켓으로 변경한 적이 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은 “현재 개발 중인 실용 위성은 모두 외국 발사체와 계약이 돼 있다”며 “2030년 발사 목표인 달 착륙선이 ITAR에 의해 누리호 발사가 제한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사일 확산 방지 조약이 기원
ITAR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전용 가능한 우주로켓의 확산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기원은 1987년 만들어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이다. 미국은 G7 국가를 중심으로 핵비확산을 위해 탑재량 500㎏ 이상, 사정거리 300㎞ 이상의 미사일에 대해 기술, 부품의 수출을 통제했다. 회원국 간 거래는 가능하지만 회원국-비회권국 간 거래는 금지된다.
미국은 이웃 일본을 포함해 8국은 MTCR 체제 출범 이전에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해 ITAR 예외로 인정한다. 미국 부품과 기술을 자국 로켓과 위성에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일본은 H2A 로켓으로 위성 발사 서비스 사업도 하고 있다. 2012년 아리랑3호가 첫 고객이었다.
우리나라도 2001년 MTCR 회원국이 됐지만 지위가 다르다. 미국 부품이 들어간 위성은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 로켓으로만 쏠 수 있고, MTCR 체제 이후에 개발한 한국의 누리호로는 발사할 수 없다. 한 위성 연구자는 “우리나라는 위성을 발사할 때마다 이 로켓에 실어도 되는지 미국에 문의한다”며 “과거엔 러시아 로켓도 허용했지만 최근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나빠져 이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 부품 국산화와 협상 양면 전략
우리나라는 계속 미국에 ITAR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을 풀면 브라질 같은 나라도 같은 대우를 요구할 수 있다고 거부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폐지된 ‘한미 미사일지침’과 사정이 다르다. 한미 미사일지침이 종료되면서 우리나라도 미사일에 쓰던 고체연료 엔진을 우주발사체에 쓸 수 있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한미 미사일지침은 어디까지나 양국 간 문제라 종료가 가능했지만 ITAR은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정책이라 폐지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과학 외교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한국 우주발사체에 대해 예외를 인정받는 길이 최선이다. 권현준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미국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누리호가 성공하면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계속 협의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ITAR로 제한되는 핵심 우주 부품의 국산화 지원 사업인 스페이스 파이오니어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안되면 국산 부품을 쓰겠다는 무언의 압력이다. 우리나라 위성 개발이 늘어나면 미국 기업들이 자사 부품 판매를 위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경민 한양대 특별공훈교수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이 들어간 우리나라 APR1400 원전도 수출을 추진해 성공한 예가 있다”며 “대선 후보들이 ITAR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워 한국 우주개발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