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판이 음해와 모략으로 어지럽다. 상상을 초월하는 선전·선동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정치를 압도한다. 양강(兩强)인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조차 당파 싸움의 늪에 잠겨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희망의 리더십으로 시대의 폭풍우를 헤쳐 나가야 하는 자리다. 세계사의 흐름을 읽고 나라를 추스르는 조타수다.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철학’을 실천한다. 차기 대통령은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미·중 패권 경쟁에 대처하고 세계경제의 틀을 바꾼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면서 한국적 격차 사회의 고통을 해소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의 소명이다.

미국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은 미·중 패권 다툼의 엄중함을 증명한다. 미·중 대립이 세계 질서를 재정렬(Realignment)하면서 중국의 팽창 정책은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로 치명적 한계에 봉착했다. 종합 국력에서 중국은 더 이상 굴기하는(rising) 세력이 아니라 쇠퇴하는(declining) 세력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만을 ‘수복’하려는 중국의 야망과 그 능력 간 격차가 대만해협의 폭발성을 키우고 있다. 6·25전쟁의 교훈은 대만과 한반도의 운명이 깊이 이어져 있다고 증언한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남·북·미·중 간 종전선언 이벤트로 한반도 평화를 치장하려는 시도는 국제정치적 유아(幼兒)의 백일몽이다. 평화는 종이 한 조각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는 ‘무장 평화’에서 나온다.

미·중 패권 경쟁이 아마겟돈의 악몽을 피한다 해도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혁명을 결합한 미·중 경제 전쟁은 필연적이다. 미국과 중국은 인공지능,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거의 모든 경제 영역에서 총력전으로 맞선다. 여기서 우리는 적빈(赤貧)을 딛고 산업화와 과학기술을 국가 대전략의 핵심으로 삼아 국가를 도약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구적 리더십을 상기하게 된다. 산업혁명은 뒤처졌지만 정보 혁명에선 앞서갈 수 있다는 결의를 국가 대전략으로 승화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도 국격을 높였다. 정치적 맞수이면서 자신의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한 시대정신에 성공적으로 응답한 두 대통령의 리더십이 빛난다.

과학기술 혁명과 산업구조 변화와 함께 코로나 사태가 ‘노동의 종말’을 가속화하면서 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키는 것은 세계 전체의 흐름이다. 그러나 파리에 본부를 둔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12월 7일 펴낸 ‘세계불평등보고서 2022′는 충격적이다. 한국의 1인당 평균 소득은 구매력 평가 기준 3만3000유로로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와 비슷하지만 불평등은 훨씬 심각하다. 소득 상위 10%와 하위 50% 두 집단의 1인당 소득 격차는 한국이 14배로, 프랑스(7배), 이탈리아(8배), 영국(9배)보다 최대 2배나 크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1인당 평균 부(富)의 상·하위 간 격차는 무려 52배에 이른다.

이렇게 거대한 격차를 능력주의의 틀로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긴 곳에선 부동산, 입시, 취업 등의 민생 문제가 정의와 공정의 문제로 비화하고 분노와 절망이 증폭된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한국인의 삶이 박탈감과 불행 의식으로 얼룩져 있는 현실은 한국 정치의 총체적 실패를 웅변한다.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 및 ‘지옥’의 흥행 성공은 통합 정치의 실패를 증언하는 뼈아픈 문화적 고발장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소명을 실현할 설득력 있는 미래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고 사회 통합을 구현해 역사의 발광체(發光體)로 상승해가기는커녕 상대방 실수에 편승하는 일차원적 반사 정치에 머물러 있다. 두 후보자 모두 당파적 정치꾼을 넘어 국민적 정치가(statesman)로 성장하기엔 너무나 갈 길이 멀다.

우리는 국제정치와 세계경제의 변화에 냉철하게 대처하지 못해 국가 절멸의 위기를 겪었다. 시민사회의 분열과 우물 안 개구리 식 시야가 국망(國亡)과 전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한말이나 해방 직후의 지리멸렬과 6·25전쟁의 비극이야말로 생생한 증거다. 미·중 패권 경쟁과 정보 혁명, 격차 사회의 ‘퍼펙트 스톰’이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나라의 생사가 걸린 역사의 도전에 온 힘을 다해 응전하는 자(者), 그가 바로 다음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