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11회>
계급투쟁 구호 사라진 중 공산당, 노동자의 파업 권리 인정 안해
몇 년 전 “중국현대사” 첫 시간 강의를 간단한 퀴즈로 시작한 적이 있다.
(1) 마르크스와 레닌이 가장 중시했던 단어는? ( )
1. 세계평화, 2. 경제발전, 3. 자유와 인권, 4. 계급투쟁
(2) 현재 중국공산당이 가장 중시하는 단어는? ( )
1. 계급투쟁 2. 평등사회 3. 인민해방, 4. 화해(和諧)
참고로 현대 중국어에서 “화해(和諧)”란 세상 모든 것이 화목하게 조화를 이룬 화목해순(和睦諧順)의 상태를 의미한다. 화합, 안정, 안녕, 화평, 협화, 협조, 협동, 배합(配合), 순화(順和), 해순(諧順) 등의 단어는 모두 화해(和諧)라는 한 마디에 압축돼 있다.
퀴즈의 정답은 둘 다 4번이다. 첫 번째 퀴즈의 정답률은 거의 100%였는데, 두 번째 퀴즈의 정답률은 저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1, 2, 3번 중 하나를 찍었다. 아마도 다수 학생들은 중국공산당이 화해를 강조한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듯했다. 모름지기 공산당이라면 무산계급과 빈곤층의 이익을 대변하며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자산계급과 투쟁을 해야 함은 세계시민 모두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3) 다음 중 중국 헌법에 명시된 공민의 기본권이 아닌 것은?
1) 표현의 자유, 2) 종교의 자유, 3) 거주이전의 자유, 4) 파업의 권리
이 퀴즈는 3, 4번이 모두 정답이다. 50%의 확률이었지만, 학생들의 정답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대부분은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를 정답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중공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교적 박해를 가한다는 뉴스는 일상적으로 접하지만, 무산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중국공산당이 파업의 권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구미 사회의 학생들로선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사회를 상상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노동자·농민 등 무산계급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중국공산당이 노동자들에게 파업의 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문화혁명의 막바지에 개정된 1975년 헌법은 파업의 권리를 인정했는데, 개혁개방 이후 개정된 1982년 헌법에서 그 권리가 삭제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화혁명의 어두운 기억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1967년 1월 상하이 노동자들은 시위원회를 무력화한 후 정부 권력을 전면 탈취했다. 이른바 상하이 “탈권(奪權)투쟁” 이후 중국 여러 곳에선 사분오열된 군중집단들이 서로 살육전을 벌이는 잔혹한 무장투쟁이 빈발했다. 그 혼란을 기억하는 중공중앙의 영도자들은 1982년 헌법에서 파업의 권리를 삭제했다. 상세한 내용은 잠시 미루고, 우선 “화해”의 정치적 함의에 집중해 보자.
도덕적인 사회는 도덕 강조 안 해...화해 강조하는 이유는?
입법·행정·사법권을 독점한 중국공산당이 “화해”를 중시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대립, 갈등, 파업, 태업, 항의, 시위, 조반(造反) 등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 및 사회분쟁을 모두 중단하고 현실의 질서에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라는 순응의 요구일까? 상식적으로 평화로운 사회에서 평화가 강조할 리 없고, 도덕적인 사회에서 도덕이 문제될 리 없다. 중국공산당이 “화해”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중국의 사회 갈등이 고조되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공산당이 본격적으로 “화해”의 가치를 선양한 시점은 2004년 중공 제16기 4차 전체회의였다. 이후 2006년 10월 중국공산당 16기 6차 전체회의에서 “사회주의 화해(和諧)사회 건설의 몇 가지 문제에 관한 결정”이 채택되었다. 이 문건은 “사회의 화해가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 속성”이며, 당은 “사회주의 화해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명기한다.
당시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공공질서 요란(擾亂, 소요) 행위”가 2003년도 58,000건에서 2005년도 87,000건으로 2년 만에 50%의 급증세를 보였다. 중국 정부가 말하는 “공공질서 요란 행위”란 피케팅, 가두행진, 집단탄원 등의 평화적 시위부터 공권력과의 물리적 충돌까지 포함되는 넓은 개념이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실상을 심하게 축소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홍콩 노동운동 단체에 따르면, 2003년 한 해에만 30만 건이 넘는 노동 시위가 발생했다. 그 당시 농촌에서 발생한 몇 가지 소요만 살펴보자.
2004년 10월, 쓰촨(四川) 성 야안(雅安)에서 댐건설로 살 곳을 잃은 1만 명의 농민들이 격렬하게 시위를 벌여서 시위자 한 명과 경찰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5년 4월, 저장(浙江) 성 화시의 농민들 2만 여명이 산업시설의 오염물질 방출에 항의하는 조직적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2005년 6월,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정부에 고용된 300명의 부랑배들이 압류당한 토지 보상액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던 농민들을 공격해서 여섯 명이 사망했다.
2005년 7월, 광둥 성 광저우 인근의 한 마을에선 1,500명 농민들이 500명의 무장경찰과 충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05년 8월 저장 성에서 오염물질을 방출한 한 배터리 공장에 대한 항의가 일어나 경찰들이 시위대를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시기, 후베이(湖北) 성 다예(大冶)에선 실업자들이 정부 관사를 공격하고 차량을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5년 12월, 광둥성 산웨이(汕尾) 둥저우(東洲) 마을에선 발전소 건설에 따른 불이익에 항거하는 격한 시위가 발생해서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20명의 시위대가 무장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2006년 1월 광둥성 산자오진(三角鎭)의 판룽(蟠龍) 마을에서는 압류당한 농지 보상액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 수천 명이 경찰과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10대 소녀가 목숨을 잃었다.
“계급 투쟁” 대신 “조화롭게 살라” “화해하라” 외치는 이율배반
도시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보다 더 과격한 양상을 보였다. 광둥성 전강 유역의 한 타이완계 운동화 공장에선 2004년에만 10-12차례의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고, 급기야 11월엔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공장시설을 파괴하는 폭력사태가 이어졌다. 2005년 9월 광둥성 광저우의 한 신 공장에서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임금 지불을 시위하던 중 경찰과 충돌하여 차량을 파괴했다. 2005년 7월 광저우의 한 의류공장에선 3천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했는데, 이 사건을 보고한 정부의 보고서엔 “해마다 수천 건의 비슷한 폭발이 일어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후 2010년 30만 명이 고용된 선전(深圳)시의 타이완계 전자회사 팍스콘(Foxconn)에서는 시위가 격해지는 과정에서 무려 15명이나 투신자살하는 극한 사태가 발생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 모든 사건들도 극히 일부임을 고려한다면, 결국 중공중앙이 “화해 사회”를 부르짖는 이유는 급증하는 사회갈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첨예한 사회투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안정과 경제성장을 희구하는 중국공산당이 “계급투쟁”을 강조할 수는 없다. 그 결과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선양하는 중국공산당이 “화해”를 말하는 기묘한 역설이 발생했다.
공산당이란 본래 계급철폐, 인민해방, 자본주의 해체를 위해 창건된 노동자·농민의 계급정당이 아닌가?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테제인 계급투쟁 대신 “화해하라!” “조화롭게 살라!” 외친다면 더는 공산당이라 할 수가 없다. 환경 파괴를 외치는 녹색당, 불의를 조장하는 정의당, 사탄을 숭배하는 기독교당, 자본가를 대변하는 노동당만큼, 아니 그보다도 더 기묘한 이율배반이자 자가당착이다.
시진핑 “화해는 5000년간 전승해온 이념...중화민족에겐 침략 유전자가 없다”
시진핑 정권 역시 출범 직후부터 “화해”를 늘 강조해 왔다. 빈도나 강도에서 후진타오 정권보다 더 심한 듯하다. 일례로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평, 화목, 화해(和諧)는 중화민족이 5천 년 역사에서 한 결 같이 추구하고 전승해온 이념이다. 중화민족의 혈액 속에는 타인을 침략하거나 세계를 제패하려는 유전자가 없다.”
시진핑 주석의 이 발언을 통해 “화해”는 중화민족 고유의 민족성으로까지 승화되었다. 오늘날 중국이라는 대륙 국가의 형성은 유사 이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쟁과 그로 인한 영토 병합의 결과였다. 역사적 현실성은 없지만 중화민족은 침략의 유전자가 없다는 시 주석의 발언은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무서운 마력을 발휘한다.
무엇보다 전 인민을 향해 중화민족은 본래 갈등보다는 화해 지향의 민족이라 강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논리에 따르면, 과격하게 시위하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분열”을 책동하는 소수민족 활동가들, 일당독재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은 모두 중화민족의 민족성을 벗어난 일탈자들일 뿐이다. 그만큼 중국공산당에게 “화해”는 정치적 반대자와 불만세력을 억누르는 강력한 이념의 무기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늘날 중국 전역에선 “계급투쟁”의 구호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대신 화해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쾌속으로 중국 전역을 누비는 고속열차의 이름이 바로 “화해”이다. 대도시 마천루의 최고급 레스토랑에도, 산간벽지의 허름한 식당에도 “화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중공중앙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일군의 학자들도 “화해”의 선전선동에 열성을 다해 동참해오고 있다. 중국의 저명한 원로 철학자 장리원(張立文, 1935- )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화합(和合)”이 “중화민족의 민족성이자 중국 전통 철학의 학술적 핵심어”라며 세계를 이끌고 갈 중화민족의 화합 정신을 강조해왔다. 2016년 발표한 자전적 논문에서 장 교수는 스스로 창건한 “화합학(和合學)”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나는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성장했다. 1950년대부터 토지개혁, 토비(土匪) 소탕, 반패(反覇, 반지주) 투쟁, 삼대(三大)개조운동에서 문화혁명에 이르기까지 계급투쟁을 깊이 체험하고 이해했다. 화평한 발전의 길을 가야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문화대혁명’처럼 경제가 붕괴 직전에 이르는 길을 갈 수 없다. 이제 화합, 곧 화해 발전의 길을 가야 한다.”
공산당 이름을 중화민족화합당으로 바꾸는게 어떨까
1950-60년대 중국공산당 일당독재 하에서 계급투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했기에 장 교수는 인간 공동체의 조화로운 공존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장 교수의 “화합학”이 바로 오늘날 일당독재의 중국공산당이 가장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지배 이념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은 계급투쟁이 역사발전과 인간해방의 기본 동력이라 생각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제창한 “과학적 공산주의”는 계급투쟁을 핵심으로 삼는 모순의 이론, 갈등의 철학이다. 반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1원칙으로 삼는 중국공산당은 더는 계급투쟁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부자와 빈자,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권력층과 라오바이싱(老百姓, 평범한 인민)이 모두 함께 어우러져 대립, 갈등, 마찰, 알력도 없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존”의 이론, “화해”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다.
공산당이란 본래 계급철폐, 인민해방, 자본주의 해체를 위해 창건된 노동자·농민의 계급정당이다. 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본 테제인 계급투쟁 대신 화해를 외친다면 더는 공산당이라 할 수 없다. 차라리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신 “화합학”을 지도이념으로 삼고, 당명은 “중화민족화합당”으로 고치는 건 어떤가? 그래야만 시진핑 주석이 존경해마지 않는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이 실현될 수 있을 듯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