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주광역시 북구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다. /김영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1일 생방송 ‘국민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임기 동안 가장 큰 성과를 묻는 질문에 “성과라고 하면 K방역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K방역(한국의 방역시스템)을 대표적인 성과로 꼽은 이유는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지난 2년간 한국의 확진자와 사망자수가 다른 나라보다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진국 통계를 보면 지난해말 인구 100만명당 한국의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는 각각 1만2289명, 108명으로 32개국 중 2위와 4위로 낮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낮은 수치가 나온 이유로 주로 3가지를 꼽는다. ①검사비·치료비 부담을 낮춰 국민들을 병원과 친밀하게 만든 전국민 건강보험제도 ②감염자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도록 한 진단검사 장비 등의 신속허가제 ③감염자를 빨리 추적해 대규모 전파를 막은 신속추적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K방역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국민들이 정부 조치를 신뢰하고 따르면서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K방역 인프라는 누가 만든 것일까?

건강보험제도 만든 박정희·김대중

2020년 초 코로나 사태가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을 때 미국에서 환자들이 검사나 입원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입원할 경우 병원비가 수억원까지 나오면서 개인파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병원 중환자 음압병실에 19일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고 완치된 환자의 경우 검사비·치료비 1000만원 가운데 개인 부담금이 4만원에 불과했다. 건강보험공단과 정부가 대부분 부담했기 때문이다. 확진이 되더라도 의료비 걱정을 안해도 되니 기꺼이 검사를 받겠다고 사람들이 나선 것은 이러한 제도 때문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분석한다.

건강보험제도를 1963년에 처음 도입(의료보험법)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를 모델로 삼아 건강보험을 대기업에 강제적용하려 했으나 대기업 이익을 대표하는 전경련이 반대했다. 산재보험에 이어 의료보험료의 50%까지 기업이 부담하면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이유였다. 유명무실한 의료보험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1977년에 기업의 의료보험료 지출을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자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500인 이상 기업 1700개 업체의 200여만명이 첫 혜택을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중소기업 근로자로 대상을 확대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자영업자와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의료보험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기업 근로자들은 보험료를 많이 내서 혜택도 많이 받았지만, 지역의보는 보험료 수입이 작아 혜택 범위가 좁았다. 기업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능력껏 내고 혜택은 같이 받는’ 현재의 건강보험제도를 2000년 완성한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긴급사용·신속추적 도입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2015년 5월 20일~12월 23일) 대응 과정에서 환자 발병 당시에 의료기관의 늦은 정보 공개로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약 1000쪽 분량의 ‘메르스 백서’를 만들고 국가방역 체계를 대대적으로 혁신했다. 진단검사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진단시약의 긴급사용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는 작년 5월 보고서에서 “한국이 메르스 사태 직후 미국의 제도를 모델로 삼아 코로나 진단 검사의 긴급사용허가 제도를 도입한 덕택에 민간 기업의 신속한 진단시약 개발과 출시가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감염자 신속추적제도도 메르스 위기 대응 과정에서 나온 성과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 의심자의 의식 불명과 진술거부 등으로 전화번호와 주소 같은 기본정보조차 확보하지 못해 정부의 신속한 역학조사와 대응이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메르스 발병 직후인 2015년 7월 감염병 발생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통신사·카드사 등에 감염병 환자 및 접촉자 등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했다. 그리고 감염자 신속추적 프로그램 소프트웨어와 감염정보 국민알림 시스템도 만들었다. 이 덕분에 4년 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교통카드·신용카드 사용 내역, CCTV 및 스마트폰의 위치정보서비스(GPS) 데이터 등을 통해 역학조사와 대규모 감염자 추적이 가능했다. 또 정보공개를 통해 감염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임무 못 다한 문재인

전문가들은 전임 대통령들의 방역 인프라 개선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적 과제는 ①백신의 조기확보를 통한 경제 충격 완화 ②K백신 개발을 통한 한국 의료산업의 도약을 꼽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궁극적인 출구전략인 백신을 조기 도입하는데 실패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고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심해졌다. 또 K백신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이다. 박영화 법무법인 클라스 헬스케어팀 대표변호사는 “메르스 사태 직후 확정된 감염병전문병원을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설립하지 않았던 것도 뼈아픈 실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 발생 직후 국정지지도가 높아지면서 작년 4·15 총선에서 압승하는 등 정치적 혜택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K방역 인프라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K방역을 업적으로 꼽는 것은 자화자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文대통령, 방역 성과 과장…실패로 국민 고통”

김준경 KDI 전 원장

김준경 KDI(한국개발연구원) 전원장은 지난 2년간의 코로나 사태 와중에 한국의 확진자와 사망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비결로 ①전임 정부 덕에 가능했던 준비된 방역 ②국민의 협조 ③우수한 전국민 건강보험을 꼽았다.

김 전원장은 먼저 코로나 발생 초기에 침착하고 신속한 방역이 가능했던 것은 2015년 메르스 대응 실패의 값진 교훈을 기초로 박근혜 정부가 개편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매뉴얼과 법적 기반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 국민이 K방역에 적극 협조한 것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발생 초기 한국의 마스크 착용률은 94%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또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다분한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2020년 4월 한 설문조사에서도 국민의 90% 이상이 감염자 동선 공개가 적절하다고 응답하는 등 높은 수용성을 보였다고 전했다.

김 전원장은 준비된 방역과 국민적 협조 모두 선진국에 비해 저렴하고 효율적인 전국민 건강보험이라는 기반 위에서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확산기였던 2020년 중반 여론조사에서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비중이 92%를 윗돌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무릅쓰며 만들어 놓은 건강보험제도 덕택에, 예컨대 2019년 소득 상위 20%는 한달에 30여만원의 보험료를 내고 치료비 지원은 8만원 받지만, 하위 20%는 한달에 1500원 정도 내고 14만원의 혜택을 보는 엄청난 소득재분배 기능이 실현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전원장은 문 대통령이 K방역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전임 대통령들이 구축한 우수한 방역 인프라를 감안하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백신 조기확보 실패, 음압병상 증설과 의료인력 확충 없는 위드코로나 시행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 실패들이 없었다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집중된 피해와 국민적 고통을 지금보다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