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4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시장에서 연설 도중 과거 가족사를 얘기하다가 눈물을 닦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후보가 그제 “욕설 문제로 우리 가족들 아픈 상처를 그만 헤집어 달라”고 했다. 그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에서 “제가 잘못했다”며 울면서 말했다. 대선 후보의 이런 모습을 처음 봤다.

이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작년 7월 1일 고향 안동에서 “제 부족함에 대해 용서를 바란다, 죄송하다”고 했다. 그 후에도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사과했다. 아무리 극악한 욕설이라도 당장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범죄가 아닌 이상 이 정도 사과했으면 문제는 잦아든다. 그것도 10년 전 일이다.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 후보의 과거는 반복 재생되고 있다.

이 후보는 상대 진영이 자신의 과거를 헤집는다고 비난한다. 그런 측면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들 못지않게 이 후보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헤집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남에서 그는 ‘형수 욕설’ 문제에 대해 7분 말했다. 여러 차례 울었고 세 차례 “잘못했다”고 했다. 그것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6분 이상 죽은 형을 비난했다. 그가 “참혹하다”며 공개한 가족사를 여기에 옮겨 적지 않겠다. 정신이상자인 형이 어머니에게 욕설을 해 그가 한 대로 욕을 했다는 것이 골자다. 사흘 전 서울 연남동에선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 하루에 한 명에게만이라도 말해 주세요. 이재명이 보니까 흉악한 사람이 아니더라, 욕했다는데 보니까 엄마 때문에 그랬다더라고.”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할 때 가족사를 들쑤시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열성 지지자들은 이 후보의 눈물에 공감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문부터 들었다. 형에게 화가 났다면서 왜 형수에게 욕설을 퍼부었을까. 형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전화를 바꿔주지 않았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둘을 뒤섞어 자신의 행위에 이해를 구하려 하나. ‘형수 욕설’을 들은 많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욕설의 상대가 왜 형수인지 답하지 않는다. ‘형수 욕설’을 사과하면서 정작 형수에겐 사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혼 없이 적당히 둘러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과거는 인생의 상수(常數)라고 한다. 바꿀 수 없는 디폴트값이다. 사과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보통 사람은 그 위에 긍정적 미래를 덧씌워 승화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이 후보와 그의 주변은 과거를 변수(變數)로 여긴다. 말재주로 정당화할 수 있다며 끝없이 자신의 과거를 헤집는다. 그러면 상대방이 달려들어 또 헤집는다. 악순환이다.

그를 옹호하는 주변 사람들의 타락은 더욱 심하다. 김어준씨는 “이재명 욕설을 AI가 만들었다”고 했다. 요즘 여권 언저리에서 나타나는 말기적 징후다. 유시민씨는 이 후보의 욕설을 ‘미러링’이라고 감쌌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처럼 거울을 비추듯 상대방의 행동대로 갚아 주는 것을 말한다. 형수 욕설은 이재명이 아니라 형의 욕설이라는 궤변에 그럴 듯한 용어를 갖다 붙인 것이다. 이런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1월 16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김건희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이 방송이 나가자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도 방송하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사실 이 후보만큼 ‘미러링’이 두려운 정치인이 없다. MBC가 김건희씨의 사적 대화를 공개했을 때 세상의 거울은 곧장 이 후보로 향했다. 그의 사적인 욕설도 지상파 방송에서 보도하라는 항의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보수는 돈을 주니까 미투가 안 터진다’는 김씨 발언을 폭로하자 세상의 거울은 이 후보의 여배우 ‘무상(無償) 연애’ 의혹을 비췄다. 송영길 대표가 윤석열 후보를 “가족범죄단”이라고 비난했을 땐 세상의 거울은 가족 전체로 돌아갔다. 본인의 전과 4범 이력, 아내의 ‘혜경궁 김씨’ 의혹, 아들의 도박 혐의와 성매매 의혹, 조카의 연속 살인과 조폭 범죄. 그는 세상의 거울을 피할 수 없다. 남의 상처를 헤집을수록 자신의 상처가 훨씬 아프게 헤집힌다. 남의 약점을 공격해 그에게 빼앗는 국민의 지지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자신이 잃어버린다. 상대를 향한 모든 네거티브 파상 공세가 자신의 진영에 더 큰 해일로 밀려온다. 이게 ‘그 누구와도 다른’ 인생을 산 이재명의 숙명이다.

정치인 이재명의 정책 비전엔 시대를 뛰어넘는 내용이 있다. 방향은 달라도 이 후보만큼 그동안 ‘중부담 중복지’를 용기 있게 주장한 정치인이 없다. 미래 세대를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의 기본 소득 주장엔 반대하지만 이 주장이 한국 사회의 복지 논의를 보다 풍성하게 했고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심화시켰다는 데 동의한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소년공을 거쳐 여기까지 온 그의 입지전적 서사는 한국 사회의 유연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나는 그의 등장이 이 시대의 중요한 일면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이 후보의 대선 슬로건은 ‘나를 위해, 이재명’이다. 얄팍해 보이지만 현실의 급소를 찌르는 명쾌함이 있다. 이 후보 역시 ‘나를 위해’ 미래로 달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