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선을 한 달쯤 앞두고 조선일보가 한국갤럽과 실시한 조사에서 후보 지지율은 노태우 38%, 김영삼 28%, 김대중 24%였다. 실제 대선 득표율(노태우 37%, 김영삼 28%, 김대중 27%)과 거의 비슷했던 이 조사 결과는 투표가 끝난 뒤에야 신문에 실렸다. 당시엔 선거 여론조사 공표를 투표일 이전에는 전면 금지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정권 교체를 위해 야권이 합쳐야 한다’는 여론을 수치로 보여주지 못했고, 민심을 오독(誤讀)한 양 김씨의 각자 출마로 야권이 패했다.
요즘엔 여론조사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정확한 민심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크게 앞서며 선두를 달린다는 조사가 있지만, 접전 중인 두 후보를 안철수 후보가 뒤쫓는 ‘2강 1중’ 구도란 조사도 있다. 윤 후보로선 다자 대결에서 굳건한 1위라면 안 후보와 연대의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윤 후보와 이 후보가 접전인 조사 결과가 맞는다면 야권이 연대하지 않을 경우 승부는 안갯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낸다고 해도 승리가 따 놓은 당상은 아니다. 요즘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30%대에 갇혀 있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권 지지층도 정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총결집해서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도 갤럽 조사에서 안철수 후보의 사퇴 직전에 후보 지지율은 박근혜 39%, 문재인 24%, 안철수 20%였지만, 야권 단일화 직후엔 박근혜 45%, 문재인 43%였다. 문 후보가 안 후보 지지층을 흡수했지만 박 후보도 보수층의 총결집으로 지지율이 올랐고 끝까지 우세를 지켰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하려면 두 후보의 지지층뿐만 아니라 부동층까지 끌어 모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선 단일화 또는 공동 정부 구성 등 논의를 빨리 끝내고 연대의 취지에 맞은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다수 선거 전문가들은 야권 연대 없이는 정권 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최근 윤 후보 지지율이 반등했지만 지지층의 결집력이 약한 게 약점이다. 크고 작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40%대에서 20%대까지 출렁였다. 정권 교체를 원하면서도 국민의힘에 대한 신뢰가 낮은 20·30대와 중도층 표심(票心)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를 위한 연대’가 성사된다면 이들을 안정적으로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1987년과 2017년 등 역대 대선에선 후보 단일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결국 불발된 쪽이 필패(必敗)했다. 하지만 윤 후보와 안 후보 측은 여전히 야권 연대에 손사래를 치며 ‘독자 승리’를 외치고 있다. 야권이 연대만 하면 이긴다는 건 착각이지만, 연대를 안 해도 이긴다는 건 더 큰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