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한 이번 대선 여론조사 중에서 한 가지 변하지 않고 있는 지표는 항상 50~55% 안팎에 달하는 정권 교체 희망 여론이다. 알뜰폰을 포함한 RDD 방식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다는 칸타 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11월부터 지금까지 정권 교체 희망 여론은 5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이에 반해 정권 유지 희망 여론은 33~36%에 머물고 있다.
과거 대선 여론조사에선 정권 교체 희망에 관한 설문이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대선은 여당 후보 대 야당 후보의 치열한 인물 대결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정권 교체 희망 여부는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이번 대선에선 여론조사 기관 거의 대부분이 ‘정권 교체를 바라느냐’는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선거가 인물 대결보다는 정권 교체냐 유지냐로 흘러가는 것은 이번 대선 출마자들이 그만큼 국민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로 시작한 대선은 후보 아내들 문제까지 더해져 많은 국민은 ‘정권을 바꾸려면 그래도 윤석열을 찍어야지 어쩌겠느냐’ ‘정권을 지키려면 할 수 없이 이재명이라도 찍는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제 선거에 남은 변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밖에 없다고 한다. 원칙론으로는 단일화를 하든 말든 후보들의 선택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지금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의 상당수(어쩌면 거의 대부분)는 윤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권 교체를 지지하는 것이다.
윤 후보가 20~30년 정치를 해온 사람들을 제치고 갑자기 야권 후보로 부상한 것은 순전히 문재인 대통령과 맞선 1년여의 행적 때문이다. 이것으로 윤 후보는 반(反)문재인이자 정권 교체의 상징이 됐으며 이 외에 다른 정치적 업적은 전무하다. 윤 후보에게서 ‘정권 교체’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권 교체라는 국민 다수의 바람에 얹혀 있는 윤 후보 처지에선 설사 지지율이 50%를 넘어서 그냥 이대로 가도 당선된다고 해도 정권 교체에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찾아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은 선거운동의 전략 전술을 떠나 정권 교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윤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기본적 예의 문제다.
대선 캠프를 보면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진영은 자신도 모르게 자만심에 빠진다. 역대 대선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자기 진영에서 나타나는 자만심의 조짐을 잘 다스렸다. 한국 유권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다 된 듯이 행동하는 자만이다. 윤 후보 캠프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단일화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유권자들이 보기에 이는 자만이다.
‘단일화를 하든, 하지 않든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은 산술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유권자들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 때문에 단일화를 하지 않더라도 정권 교체를 바라는 사람들의 표가 투표장에선 윤 후보 쪽으로 어느 정도 몰릴 수 있다. 여기엔 조금만 모험하면 권력을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 여망에 따라 떠오른 사람이 정권 교체를 판돈으로 걸고 모험을 하려고 한다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2012년 대선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줬다. 당시에도 (이명박) 정권 교체 여론이 대체로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야권의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모두 정권 교체를 내세웠다. 여론조사 가상 대결을 하면 누가 되든 단일 후보는 여당 박근혜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야권 단일화 협상에 나선 문재인 측이 시종일관 안 후보를 압박해 무릎을 꿇리려 했다. 결국 안 후보는 돌연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거의 잠적해버렸다. 그런 식으로 단일화가 되자 여론조사에서 문재인은 박근혜를 앞서지 못했다. 놀랍게도 정권 유지 여론도 점점 높아져 결국 정권 교체 여론을 역전했다. 당시 문 후보 측이 단일화는 정권 교체 지지 국민에 대한 예의라는 마음가짐이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국민의 마음은 힘만 앞세우는 야권 단일 후보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이 그대로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
지금 안철수 후보가 여론조사 경선으로 단일화하자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지지율이 4배 이상 차이 나는데 여론조사 경선을 한 경우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국 윤 후보의 자세와 태도 문제다. 윤 후보가 안 후보와 단일화하는 데 진정성 있게 성의를 다해야 하는 것은 표가 몇 % 더 오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에 대한 예의다. 그런 뜻으로 김동연 후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단일화 노력을 해야 한다. 단일화를 해도 선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선거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단일화 성사나 그 효과와 별개로 지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지금 야당 후보가 국민에게 지켜야 할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