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열린 2차 법정 TV토론에 참석한 윤석열(왼쪽)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단일화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 대선처럼 혼란스럽고 역겹기까지 한 단일화 현상은 처음 겪는다. 그 단일화 문제의 중심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가 있다. 그리고 그는 이번뿐 아니라 지난 2번의 대선, 그리고 2번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 나라 선거의 단일화를 문제로 만든 사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철수 씨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단일화 협상 때마다 등장했다가 그때마다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단일화의 대가를 챙긴 적도 없다. 그냥 나와서 경쟁하다가 상대방 밀어주기로 하고 물러난 것이 전부이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의 단일화는 김종필이 김영삼, 김대중 등과 했던 ‘연합’과는 달랐다. JP가 했던 것처럼 내각책임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공동정부 또는 대통령-총리 분점 같은 ‘열매’도 없었다. ‘안철수의 단일화’는 그래서 알다가도 모르겠다.

애당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가 거론됐을 때 많은 정권교체 열망자들은 윤 후보가 안 후보를 어떻게 해서든지 안고 가라고 종용했다. 안 후보가 출마의 변(辨)에서 ‘정권교체’를 들고 나왔기에 그의 정치적 동기나 목표가 국민의힘과 같은 라인에 선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상이 삐걱거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안 후보의 정체성(?)과 행보, 발언들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를 범(汎)야권의 인사로 보고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 오늘 단일화 협상 담당자들이 밝힌 몇 가지 발언들과 안 후보 자신의 유세 발언들을 보면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협상의 조건들이 맞지 않아서 그야말로 밀고 당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협상 의사 자체가 없는 것이고 또 굳이 나쁘게 보자면 애당초부터 쇼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윤 후보 측에서는 “대통령 말고는 다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안 후보는 협상 당사자의 협의 내용을 버렸다는 보도도 있다. 심지어 안 후보가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바른미래당을 창설한 것이 잘못이었다느니 1년 후면 윤석열 찍은 것을 후회할 것이라느니 하는 발언이 회자되면서 이제 단일화 문제는 ‘물 건너 간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왜 시작됐는지에 대한 지적이 국민의힘 내부에서 완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는 안 후보가 단일화 협상 과정을 두고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토로했을 때 국민의힘을 힐난했다. 그가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꼈다는 발언들도 들렸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안 후보가 ‘위장된 민주당 성향’이라느니 그의 부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느니 등의 말들이 나왔을 때 국민의힘의 ‘저질’을 걱정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안 후보가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단일화는 아니지만 연합의 형태로 정권 분점을 실행한 DJ·YS·JP 정치적 결단을 살펴보았으면 했다. JP가 매번 맨 마지막 고비에서 밀려나는 불운(不運)을 겪었다는 것을 떠올리기 바랐다. 그가 두 차례의 국무총리와 9선의 국회의원을 지냈으면서 직접 대통령에 출마한 것은 1987년 13대 대선이 유일했고 그나마 8.06%의 득표율에 그친 ‘4등’이었다는 것도 인식했으면 했다.

김종필은 노태우, 김영삼과 이른바 ‘3당 통합’을 해서 김영삼 정권을 탄생시켰고 뒤이어 김대중과 ‘DJP 연합’을 이뤄 김대중 정부를 태동시켰다. 그는 박정희, YS, DJ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2인자’로 불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그것을 그의 정치적 한계인 동시에 탈출구로 삼았다는 점이다.

안 후보가 또 민주화의 시대(時代)는 JP가 아니라 YS와 DJ를 택했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했다. 지금은 ‘과학 강국’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도, 안철수는 시대를 잘못 만난 것뿐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안 후보는 또다시 ‘철수’했다 그를 붙잡지 못한 책임이 윤 후보 측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그런 시나리오는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윤 후보와 국민의힘은 혼자의 힘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됐다.

나는 지난 1월 초순 안 후보를 대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안 후보는 등을 의자에 대지도 않은 채 반듯이 앉고 두 손을 상 위에 올린 자세로 “설 연휴가 끝나면 (단일화 여부에 관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약속하듯 말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애당초 마음에 없는 말을 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