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5선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은 정부·여당 잘못에 직언을 아끼지 않아 ‘미스터 쓴소리’로 불린다. 대선 기간에도 당내의 과도한 ‘문재인·이재명 성역화’를 비판하다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 대선 이틀 후인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 의원은 민주당의 패배에 대해 ‘내로남불’ ‘위선’ ‘오만·독선’ ‘패거리 의식’ 등의 수식어를 쓰며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잡은 정권을 곧장 내어주게 된 데 대한 절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은 ‘현재의 승리’에, 민주당은 ‘2년 전 총선 승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민주화 이후 최소 표 차(0.73%포인트·24만7077표) ‘신승(辛勝)’으로 청와대와 행정부 권력을 쥐게 됐다. 172석 막강한 의회 권력을 갖고 있는 민주당 역시 현재는 “과다 대표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의원은 “각자 현재 딛고 있는 상황, 자기 신세를 직시하면 협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文 정부·민주당 심판받은 것
-20대 대선의 의미를 짚어본다면.
“문재인 정부·집권 세력에 대한 심판이다. 내용 면에서는 이긴 쪽도 진 쪽도 절반도 안 되는 각각의 지지 기반을 갖고 가야 하는 매우 부조화스러운 구조가 됐다. 국가나 국민 입장에서 매우 우려스럽고 정치권의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민주당 패배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사람들이 민주당에 대해 생각하면 내로남불, 위선, 오만, 독선, 맹종, 패거리 의식 등을 떠올린다. 현직 대통령을 내쫓고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내세웠는데 민주당이 어떤 행태를 보였나. 우기고, 어거지(억지)쓰고. 버티고 아니라고 하거나 상대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에는 ‘이명박·박근혜 때보다는 낫지 않냐’고 했다. 국민들은 ‘민주당 너희는 다르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걸 채워주지 못한 실망감이 있는 거다.”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정권 심판론’을 넘지 못했다고 보는 건가.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대장동 의혹과 욕설 파문, 아내 등 주변 관련 의혹도 패배 원인의 한 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장동 건은 막판에는 ‘윤석열이 몸통’이라고 하는 프레임으로 가지 않았나. 그런 대응이 과연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었나 싶다. 억울한 게 있다면 그걸 풀어야 하는데, 상대방을 끌어들여 그 얘기만 했다.”
-0.73%포인트, 최소 표 차로 뒷심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0.7%포인트 차로 졌든, 0.0001%포인트 차로 졌든 진 것은 진 것이다. 3분의 2 가까운 국회 의석을 갖고 있으면서 반도 못 얻었다면 성공한 게 아니다. 그런 평가는 자기 환시, 자아도취, 자기 위안을 넘어 자기기만을 하는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이 있다면.
“네거티브다. 이재명 후보가 경선·본선 때 모두 네거티브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는데 결국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한 것 같다. 왜 네거티브 안 하고, 인간적 예의를 갖춰 신사적으로, 정책 어젠다를 더 재미있게 풀어내며 하지 못했냐는 거다. 상대 후보를 좀비·악마처럼 몰아붙여서 억지 주장을 하고 잡아먹으려 했다. 관용·배려·용서·연대·공존 이런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원칙 있는 패배였으면 더 좋았다.”
李, 네거티브 유혹 떨치지 못해
-최악의 네거티브는 무엇이었나.
“(윤 당선인 아내) 김건희씨에 대한 공격은 아주 비열했다. 김씨 사생활 관련 루머를 공식 석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들거나, 아무리 표현의 자유라고 해도 이른바 ‘쥴리 벽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도 없었다. 여권 모 인사는 윤 당선인이 어퍼컷을 할 때 배가 나와 와이셔츠가 삐져나온다며 용모를 비난했다. 출신·용모·배경으로 차별·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건 민주당의 기본적인 가치·지향점이고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다. 그런 우리 당의 전통이 사라진 것 같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민주당 강경 지지층 문제도 많이 지적했다.
“우리 당의 결함 중 하나가 맹종·일색에 성역화를 한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 이재명 후보, 김어준씨 등이 성역화됐다. 패거리 정치가 활개를 치면서 다른 목소리가 스며들 틈이 없다. 그런 열성 지지층이 있다는 게 자산이면서도 부담이다.”
-그런 선거를 치렀는데 윤석열 정부와 협치가 가능할까.
“상대를 배려해서 통합과 협치를 하라는 건 허구다. 자기 신세와 형편, 확보하고 있는 지분을 생각하면 ‘이러면 안 되겠네’라는 생각이 퍼뜩 들 것이다. 현실적으로 딛고 있는 기반을 생각하면 각자 절반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겸허하게 상대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고 내 것도 관철시키고, ‘협상’을 해야 한다.”
-172석 민주당은 이른바 ‘입법 폭주’를 해왔다.
“양쪽 모두 이번 선거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하면 알게 될 것이다. 현재는 양쪽 다 ‘과다 대표’ 상태다. 2년 전 선거로 180석을 얻은 민주당이지만 이번 대선은 절반도 못 했다. 국민의힘은 절반 안 되는 득표로 당선됐지만 대통령이라는 막대한 권력을 싹쓸이했다. 둘 다 거품이 꼈다. 양쪽 모두 축소 지향적으로 바라봐야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
-협상과 거래를 해야 한다는 건가.
“미국에서는 ‘딜(deal)’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우리는 유교적 기반 때문인지 거래를 하고 싶어도 말하지 않는다. 상대의 신념이나 이해관계를 설득·굴복시킬 수는 없다. 신념·체계·인생관을 어떻게 굴복시키고 양보하라고 할 수 있나. 서로 ‘딜’ 하는 거다. 내어 줄 건 내어주고, 받을 건 받고.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은 건강한 싸움이 아니다.”
巨野 통 큰 리더십 보여줘야
-현실적으로 172석이 무기가 될 것 같다.
“172석 거대 야당이 이런 리더십을 보이면 어떨까. 민주당이 아니면 법안 통과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을 게 아니라, 적극 협조할 테니 가지고 와봐라 하는 거다. 윤 당선인이 정부조직법을 내놓으면 그걸 함께 ‘초벌구이’ 해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정부조직법을 제출하는 거다. 태클, 흠집 잡기, 꼬투리 증폭시키기 이런 거 말고 ‘포지티브’ 하게 지금까지의 야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그럼 국민들도 민주당을 다시 볼 것이다.”
-차기 민주당 지도부도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그렇다. 우리가 의석이 적을 때는 ‘약자의 굽신거림’일 수 있지만 172석 거야의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쾌활하게, 통 크게, 쾌도난마처럼, 상대가 입을 떡 벌리게끔 화통하게 해야 한다. 발목 잡기, 흠집 내기 그간 많이 해봤지 않나. 자신은 속 시원한 거 같은데 사실 자기 마음도 병들어가고 어둡고 음습해지는 거다. 그런 정당에 좋은 기운이 오겠나.”
-이재명 후보의 앞으로 역할은.
“대선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쳤으니 당분간 자중하며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부족한 건 나였다’고 한 최근의 자세는 아주 잘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자세를 견지하는 게 국민 신뢰와 호감을 이어가는 방법이다.”
-당 일각에서 비대위원장·당대표 등 조기 등판론이 나오는데.
“그건 이 후보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가만히 있는 사람(윤 당선인) 공격해서 키워준 것처럼 역작용이 생길 수 있다. 엉뚱한 얘기해서 잘하고 있는데 재 뿌리고 먹칠하는 거 아닌가 싶다.”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정치는 무한 책임이기 때문에 패배했으면 책임을 지는 건 마땅하다. 다만 당대표·최고위원만 그만두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건 자연스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2030 갈라치기’ 반성해야
-선거 결과 2030 남녀가 극히 분화됐다.
“정치 세력과 여야 후보들의 맹성이 필요하다. 자기들 표를 얻으려고 ‘갈라치기’한 것 아닌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아주 몹쓸 짓을 한 거다. 청년들이 갖는 울분과 좌절감을 이용해 상대를 혐오하게 한 건데 아무도 반성을 안 하고 있다.”
-선거제 개편 등 정치 개혁 논의는 이어갈 수 있을까.
“여야 모두 절반을 획득하지 못한 지금이 적기라고 본다. 크게 다섯 가지를 바꿔야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로 대통령 권한을 확 줄여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든 중대선거구제든 선거 제도를 개편하고 국회법을 바꿔 교섭단체 기준을 현재 20석에서 10석이나 5석으로 낮춰야 한다. 2030세대의 참여를 높이려면 정당법상 정당 구성의 진입 장벽을 확 낮춰야 한다. 국가보조금도 의석수별로 배분할 게 아니라 소수 당, 신생 정당에 더 많이 가도록 해야 한다.”
-윤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동의할까.
“윤 당선인이 정말 한국 정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면 정치 개혁을 추진력 있게 끌고 가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내려놓고 분권형으로 확 바꾸고, 의회에 상당한 권한을 넘기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민주당도 공약했기 때문에 윤 당선인이 결심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