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이 끝날 무렵이면 우크라이나 전쟁도 승패가 가려질 거로 알았다. 그러나 한국 선거 상황도 우크라이나 전쟁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쟁은 군사력의 강약(强弱)에 따라 결판난다. 러시아는 국방 예산, 전폭기·탱크 숫자 모두 우크라이나의 10배 규모다. 푸틴은 저(低)비용으로 신속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푸틴의 계산은 빗나갔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길고 비싸고 어려운 전쟁으로 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뉴시스

선거가 끝나고 보름이 지나도록 대통령과 당선인이 얼굴을 맞대지 못하고 있다. 개표가 끝나면 선거는 종료되고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사이에서 인수인계 작업이 시작된다. 지난 수십 년 쌓인 관례고 상식이다. 이게 무너진 건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이견(異見)과, 대통령 사람들을 선거 이후로도 여기저기 계속 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입 청와대 홍보수석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5월 9일 밤 12시까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라고 했다. 그때까지 국가를 보위(保衛)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끌어안고 가겠다는 걸까.

북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처지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먼 전쟁’이 아니다.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택일(擇日)하면서 미국 신경(神經)이 우크라이나로 쏠린 관심의 공백(空白)을 감안했을 것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러시아는 가장 강력한 핵무장 국가’라면서 ‘누구든 우리 길에 끼어들면 역사에서 본 적 없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핵 억지력(사실은 핵 공격) 부대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푸틴 대변인은 ‘러시아 국가 안보 개념은 국가가 ‘실존적 위협’에 처하면 핵무기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핵 보유 목적이 장식용이 아니라 ‘위협’ 또는 ‘실제 사용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푸틴 목소리는 어디서 듣던 목소리다. 김정은은 무엇을 ‘실존적 위협’으로 받아들일까.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로비에서 노무현 당선인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던 심정을 ‘나는 지는 해였고 그는 떠오르는 태양이었다’고 했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후계자에 대해서도 이런 감정의 기복을 느끼는 게 퇴임을 앞둔 대통령이다. 그런 면에선 당선인 일부 측근들 입이 조금 헤펐다. 반대편 미움은 받으면서 자기편 존경도 받지 못한다는 검찰총장 진퇴를 압박한 것도 그런 예(例)다.

그러나 서운하다 해서 이번처럼 반응한 대통령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선거 후 ‘역대 가장 작은 표차(票差)로 당락이 결정됐다’며 ‘통합의 정치’를 주문했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됐어도 같은 말을 했을까. ‘표차가 아무리 작다 해도 엄정한 국민 심판’이라며 ‘승복(承服)의 정치’를 강조하지 않았을까. 지금 대통령에게 국회를 장악한 172석 민주당에 기대는 마음이 전혀 없다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延長)’이라 했다. 군사력과 정치권력은 속성도 비슷하다. 칼은 뽑은 후보다 칼집에 들어있을 때 위력이 크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 군사력은 우크라이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러시아군은 한계와 약점도 동시에 드러냈다. 훈련이 부족하고 병참(兵站) 지원 역시 허약했다. 무엇보다 병사들 사기(士氣)가 바닥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이웃 나라 침략에 동원된 병사 사기가 조국을 지키겠다고 자원(自願) 한 병사 사기와 같을 수 없다. 별 쓸모가 없는 듯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장기적으론 전쟁 승패와 정치 집단의 성쇠(盛衰)를 좌우한다.

민주당은 언제든 국회를 점거해 국정을 마비시킬 수 있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고 언론 목을 조이는 법률안을 강행 통과시킬 수도 있다. 일부는 광우병 소동 때 거리를 휩쓸어 가던 혼탁(混濁)한 인파를 아련한 추억처럼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그런 장면을 지켜보며 대의명분이 선다고 치켜세워줄까. 대통령 선거가 마지막 선거가 아니다. 두 달 후면 지방선거, 2년 후면 총선이 있다. 민주당 거대(巨大) 의석은 어디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해(自害) 도구로 변할 수 있다.

대통령은 미련(未練)을 버리고 당선인은 말을 아끼는 것이 국가에 대한 예의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는 아무 구체적 내용이 없다. 물러나는 대통령과 당선인이 그 공백을 상식으로 메우라는 것이 이 법의 기본 취지(趣旨)다. ‘신법(新法)이 구법(舊法)에 우선한다’고 한다. 민의(民意) 또한 그렇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상식이 최고의 대의명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