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의 골이 이렇게 깊고 심각한 적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친문(문재인)-친명(이재명) 등 기존 여권과 친윤(윤석열) 등 야권의 대립은 정책과 이념의 차이를 떠나 분노와 증오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28일 오후 만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향하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숫자로도 알 수 있다. 첫째, 지난 대선 때 당락의 차이가 0.73%에 불과했다. 둘째,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나들고 있다. 역대 전례가 없다. 셋째, 당선 직후 80% 지지를 즐긴 역대 대통령과 달리 윤 당선인의 지지율은 50% 안팎이다. 이것도 전례가 없다. 172석의 민주당은 패배자이면서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문제는 이런 숫자의 이면에 서로에 대한 증오·저주·조롱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조건 싫고, 무조건 감옥 보내야 하고, 무조건 척결해야 한다는 극단적 배타적 감정의 차원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패배적 분열이 ‘노무현의 자살 사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본다. 대통령직에서 갓 물러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가 검사들로부터 모멸적인 조사를 받은 것이 그를 자살로 몰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로부터 좌파 세력은 이를 갈고 복수(復讐)를 다짐했다.

복수를 다짐한 좌파는 광우병 사태를 시작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끝없이 괴롭혔고 마침내 권력을 잡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에 넣었다.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지난 사면 때 이명박을 끝내 풀어주지 않은 것은 그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하게 한다. 나는 지금도 MB가 대통령의 위치에서 검찰을 간접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심각히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복수의 희열은 또 다른 복수를 부르게 마련이다. 문재인 5년의 과도한 과신(過信)과 무능은 이제 스스로를 복수의 대상자로 내몰았다. 좌파 세력은 이제 다수당이면서도 ‘윤석열에 의한 복수’에 전전긍긍하는 신세가 됐다. 그 불안감이 검수완박의 역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울산 선거 개입,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등으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이재명씨는 대장동 개발 비리, 성남 FC 후원금,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으로 고발돼 있다. 이들 의혹 사건은 다루기에 따라 엄청난 법적 책임이 뒤따를 수 있고 정치적 쓰나미가 될 수 있다. 명백한 범법 사실의 확인 여부를 같은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가도 문제다. 당연히 윤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온 나라가 긴장해 있다. 그것은 법의 공정성과 법치주의 확립 문제 못지않게 심각하고 중요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일단 ‘시스템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거리를 뒀다.

나는 이런 ‘전 대통령 사법처리’의 악순환을 윤 당선인이 끊었으면 한다. 어쩌면 검찰 출신의 윤석열이기에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적격자다. 이 일련의 악순환에는 검찰이 주(主) 무대를 제공해왔다. 노무현과의 악연도 ‘검사와의 대화’에서 비롯됐다. 노무현을 바위에서 뛰어내리게 한 데도 ‘이명박 검찰’의 위세가 작동했고 박근혜와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것도 ‘문재인의 검찰’이었다. 오늘날 윤석열을 등장시킨 무대도 ‘청와대의 검찰’이었다.

윤 당선인이 그 고리를 어떤 선에서 끊고 어느 과정에서 정리할 것인지는 큰 숙제이기는 하지만 이런 악순환을 이어가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분노에 찬 40%를 두고서는 새 대통령과 새 정부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엊그제도 ‘제발 일 좀 하게 해 달라’는 조로 말했다. 현재 상황으로는 국힘당이 지방선거에서 크게 이긴다는 전망도 없다. 172석 민주당에 시달리면서 ‘일하는 정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다수를 빼앗아 온다는 보장이 없다. 새 윤 정권이 그나마 빛을 볼 수 있는 길은 민주당이 분열되거나 민주당을 감읍시키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은 ‘전직 대통령’과 ‘전 대선후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와도 관계가 있다.

물론 지난 5년의 적폐는 청소해야 한다. 좌파 정권의 핵심이었던 사회권력이 제자리를 찾도록 법적 공정의 확립과 자유주의 논리의 확산, 민주적 사고의 정립을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보·외교·국민경제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도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적폐의 청산과 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처리는 차원을 달리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울산 선거, 원전 문제와 대장동 사건을 반드시 같은 농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핵심은 어느 선에서 얼마만큼 끊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