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上海)의 래퍼가 포문을 열었다. 체제를 비판하는 다른 국가 래퍼들과는 달리 중국의 래퍼들은 대개 체제 옹호에 나서는 편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상하이(上海) 코로나 확산 사태는 달랐다. 방뤼에(方略)이라는 상하이 거주 래퍼의 경우다.

그는 얼마 전 ‘New Slave: 新奴隸’라는 랩송을 발표했다. 중국 당국이 빚어내는 상하이의 대 혼란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자유와 사상은 강제 구금에 처해있고…”로 시작하는 노래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좋을 사람은 집에 갇히고,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병원에 가지 못해…(관료들은) 스스로 고등동물인 척하지만 동물보다 잔인해,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 사람 잡아먹는 일이야”라는 식으로 당국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방뤼에(方略) 상하이 래퍼가 중국 당국이 빚어내는 상하이의 대혼란상을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 /유튜브
방뤼에(方略) 상하이 래퍼가 중국 당국이 빚어내는 상하이의 대혼란상을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 /유튜브

이 노래는 중국어 권역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불렀다가 지난 17일 당국에 의해 바로 내려지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유튜브 등에서 여전히 대단한 인기를 불러 모으는 중이다. 상하이 시 당국이나 그 위 공산당 중앙의 코로나 대응이 큰 후유증만 불러들인 결과다.

중국의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은 ‘시한폭탄’이다. 상하이에서는 구역을 봉쇄하고 주민을 격리하는 경찰 등 당국 인원들과 시민들의 충돌이 빈번하다. 푸동(浦東) 지역에서는 15일 주민들을 모두 강제로 이주시킨 뒤 아파트 단지 전체를 격리 병동으로 사용하려다가 큰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아울러 상하이 인근의 쑤저우(蘇州)와 쿤산(昆山) 등 지역도 코로나가 확산 중이며, 멀리로는 광저우(廣州), 시안(西安) 등 대도시 또한 봉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커지는 ‘백성’들의 반발

상하이 래퍼의 노래 제목이 심상찮다. ‘노예’라는 말은 중국에서 함부로 쓰는 단어가 아니다. 정치적 함의가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부르는 국가(國歌)의 시작은 이렇다. “일어나라, 노예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여, 일어나서 우리의 피와 살로 새 장성(長城)을 쌓자”다. 폭압적인 봉건질서에 굴종하지 말고 떳떳하게 일어나 제 권리를 쟁취하자는 호소를 담았다.

따라서 ‘노예’는 폭압적인 질서에 순종하는 인간형이다. 새 중국은 그런 전제의 틀을 거부하자는 건국의 지향을 노래에 담았다. 따라서 랩송 ‘신 노예’가 함의하는 바는 매우 정치적이다. 새로운 노예로 그냥 눌려 살 것이냐, 아니면 마땅한 권리를 쟁취하는 사람으로 살 것이냐를 말하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13년 5월 4일자 표지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청나라 황제 용포를 입은 합성 이미지다. /이코노미스트

이는 전통적인 중국의 사회질서 속의 ‘황제 vs 노예’를 겨누고 있는 내용이다. 그 ‘노예’는 때로 순민(順民)으로 통칭한다. 체제에 순응하면서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런 백성은 통치 권력의 밑바닥을 받치는 굄돌이다. 그러나 권력이 지독히 부패할 때는 체제를 뒤엎는 세력으로도 성장하고 만다.

그를 물에 비유한 글이 있다. ‘순자(荀子)’에 등장한다. “물은 배를 싣지만, 물은 그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는 말이다. 배를 띄우는 물은 ‘순민’이다. 그 배를 다시 뒤집을 수 있는 물은 보통 ‘폭민(暴民)’으로 지칭한다. 폭력적인 백성, 즉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민중이다. 중국의 역사는 늘 통치 왕조에 순응하던 ‘순민’들이 부패와 폭정, 학정에 견디다 못해 민란을 주도하는 ‘폭민’으로 성장해 왕조를 넘어뜨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순민과 조민, 그리고 폭민

일부에서는 그 과정의 중간에 ‘조민(刁民)’을 집어넣기도 한다. 말을 잘 듣지 않고, 사사건건 시비를 일으키며, 당국의 지시에 각종의 이유를 들어 대드는 백성이다. 백성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이 규정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중국의 역사에서 늘 등장했던 역동적인 피지배계층을 지칭하는 말임에는 분명하다.

중국의 민심은 먹고 사는 데서 우러나온다. 그 점은 세계 여느 지역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전제적인 왕조의 통치 틀이 견고하게 이어져 온 중국에서는 늘 ‘순민’이 ‘조민’으로 변하다가 급기야 ‘폭민’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언어의 잔재에서도 드러난다. 깊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뜨거운 불에서 고통을 견뎌야 하는 경우다. 그를 수심화열(水深火熱)이라고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강조한 핵심 의제인 '공동부유(共同富裕)'. 공동부유는 '전 인민의 풍요로운 생활수준 영위'를 목표로 하는 개념으로 소득격차 해소가 주요 목표다. /웨이보

물에 허우적거리고 불에 덴 듯한 경우를 일컫는 다른 말도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도탄(塗炭)이다. 앞의 ‘도’는 진흙탕, 뒤의 ‘탄’은 불이 이글거리는 숯 깔린 길로 이해하면 좋다. 그런 지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때를 전패(顚沛)라고도 했다.

안정적인 거처에 일정하게 먹을거리를 얻어 생활하는 경우를 벗어나 굶주리고 몸 편히 뉘일 데 없는 상황을 중국인들은 대개 유리(流離)라고 지칭한다. 먹을 게 없어 남에게 구걸까지 하면 유리걸식(遊離乞食)이다. 이는 순민이 폭민으로 이어지는 바로 직전의 단계다.

◇공산당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국의 ‘백성’들은 사실 사회주의 중국 건국 이래 지독한 ‘순민’이었다. 1959년 벌어져 4000만 명 이상이 굶주림, 또는 그로 인한 비정상적인 요인으로 사망한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당시에도 공산당에 반기를 들 줄 몰랐다. 이어 1966년 시작해 10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숨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기간에도 역시 ‘순민’의 틀을 넘어서지 않았다.

4월 15일(현지 시각) BBC 등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에서 코로나 격리 시설로 전환돼 집에서 쫓겨나게 된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빚어졌다. /BBC

그러나 요즘 사정은 많이 다르다. 2005년 전국적으로 벌어진 집단 항의 사건이 7만5천여 건을 넘어선 이래 이 수치는 지금까지 줄곧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상하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주민과 경찰 또는 당국자들의 잦은 충돌도 그런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제로 코로나’의 지침에 따른 무조건적인 봉쇄와 격리가 다른 대도시로 번질 경우 이런 분위기는 더 악화일로를 거듭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의 경기는 줄곧 하강하는 추세다. 상하이를 비롯해 광둥의 광저우 인근의 대규모 제조업 지역 실업률도 당국의 강변과는 다르게 부쩍 높아지고 있는 흐름이다.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은 당연히 급증한다. 거기다가 코로나 확산에 따른 강제 봉쇄와 격리가 덧대지면서 급기야 ‘우리는 새로운 노예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는 상하이 래퍼의 외침까지 터져 나왔다. 이런 민심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공산당의 과학기술적 발전은 매우 빠르다고는 하지만, 말 잘 듣는 수많은 ‘순민’들이 ‘조민’으로 변하고 있는 점 또한 사실이다. 시진핑(習近平) 공산당 총서기의 연임을 앞둔 중국 당국이 가장 골머리를 앓을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