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이른바 ‘타다 금지법’ 국회 통과를 앞두고 35세 기업가 박재욱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법에 적혀 있는 대로 사업을 했다. 타다 드라이버 1만2000명이 실직하지 않게 해달라. 젊은 기업가가 무릎을 꿇고 말씀드린다”며 거부권을 행사해달라고 호소했다. ‘렌터카와 기사를 동시에 빌릴 수 있다’는 법 조항에서 출발한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는 2018년 출시 이후 이용자 172만명을 확보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택시업계는 “택시 운행 면허 없는 불법”이라고 반발했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호응하면서 타다금지법이 통과돼 서비스를 접게 된 것이다. 이후 타다의 모회사인 차량공유 스타트업 쏘카 대표가 된 박재욱은 사업을 재정비해 쏘카를 모빌리티 업계 최초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성장시켰다.
박 대표는 지난 2월 국내 스타트업 1800여 곳을 회원사로 둔 국내 최대 스타트업 협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 3대 의장으로 선임됐다. 초대 의장인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2대 공동 의장인 토스(금융앱) 이승건·직방(부동산 중개앱) 안성우·컬리(신선식품) 김슬아 창업자와 달리, 박 신임 의장은 여론에 떠밀려 자신의 서비스를 접고 법정 다툼까지 경험했다. 지난 1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쏘카 본사에서 만난 박 의장에게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물었다. 그는 “새 정부는 유니콘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기업 덩치를 키우는 데만 급급한 유니콘 위주 정책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왜곡시킨다”고 했다.
◇네거티브 규제 꼭 도입해야
-쏘카의 유니콘 등극 이후, ‘곧 망할 회사’라던 시선이 확 바뀌었다. 그런데 왜 유니콘 육성 정책에 비판적인가.
“현 정부는 아예 ‘2022년까지 유니콘 20개’라는 목표를 세워놨다. 이 구호 때문에 다른 좋은 육성 정책이 다 묻혔다. 모든 스타트업의 목표가 유니콘이어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재무상태를 좋게 유지하며 일자리 창출하는 기업도 있고, 이익 또박또박 내면서 주주들에게 배당 잘하면서 성장하는 기업도 있다.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채용하는 사회적 기업도 있을 것이다. 천편일률적으로 기업 덩치만 키우려는 유니콘 위주 정책은 다양성을 막는 일이다.”
-새 정부는 어떤 스타트업 육성정책을 펴야 하나.
“과거에 만들어진 법이 현재 디지털 세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여객과 물류운송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1960년대 만들어진 여객운수법은 택시는 사람만 태우게 한다. 차량공유는 렌터카 법령을 따르고 있다. 영업용으로 활용할 수가 없다. 내가 차가 없어도 쏘카를 빌려서 쿠팡 배달을 할 수도 있지 않나. 지금 법규로는 못 한다. 약 배달을 막는 약사법과 온라인 안경점 개업이 안 되는 의료기사법 등 비슷한 사례가 너무 많다. 시대 상황에 맞는지 이제 물음을 던져야 할 시기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해 스타트업 간담회에 참석해서 말씀하신 것들이 있다. ‘스타트업이 마음껏 뛸 수 있게 좋은 신발은 신겨줘야 한다’ ‘불필요한 모래주머니는 제거하겠다’고 했다. 불필요한 모래주머니가 바로 창업가들을 옥죄는 규제다. 이를 위해서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꼭 도입돼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것 빼고는 다 해도 좋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은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다. 법에서 허용하는 서비스만 하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성과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시장을 혁신하는 서비스가 탄생하기 굉장히 어렵다. 앞으로 법에서 금지하는 것이 아니면, 모든 가능성을 열고 시도해볼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가 잘 적용돼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도전하고 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렇게 자란 기업들이 일자리도 만들어내고 국가 경쟁력도 같이 높아진다.”
-현 정부도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공약했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까지 만들었다.
“장병규 의장(게임사 크래프톤 창업자)이 많이 고생해 주셨다. IT·스타트업 업계에 몸담은 많은 분들이 참여해 목소리를 냈는데 정책엔 잘 반영되지 않았다. 타다 논란 당시, 택시 규제와 관련해서 택시 업계와 밤샘 토론을 벌이려 했는데 택시 업계 반대로 무산됐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다른 권한 없이 딱 정책 ‘제언’만 할 수 있었다. 결국 그것이 한계였다.”
장 의장뿐 아니라 포털 다음을 창업했던 이재웅 전 쏘카 대표도 현 정권 초기인 2018년 기획재정부 산하 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본부장 자리에 올랐다가 4개월 만에 사임한 바 있다. 당시 그는 “혁신성장본부는 급조된 조직이었으며, 나는 자문밖에 못 하는 위촉직에 불과했다”고 했다.
-네거티브 규제가 왜 도입되지 않고 있는가.
“네거티브 규제를 하려면 적극적인 행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관(官)도 기업하고 똑같다. 일을 잘하면 그에 맞는 보상, 좋은 평가가 뒤따라와야 한다. 아직까지는 실수를 덜 하고, 사고를 안 치는 공무원이 인정받는 시스템이다. 적극적으로 규제를 줄여주는 공무원이 인센티브를 받도록 공직 사회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승진이나 보상이 뒤따라올 수 있도록 조율이 필요하다.”
◇플랫폼 갈등,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봐야
-택시·변호사·세무사·의사 같은 기존 직군과 플랫폼 스타트업들 간 갈등이 심하다.
“플랫폼이 없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 다시 그때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플랫폼이 무리한 방식으로 폭리를 취하고 시장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건 당연히 문제다. 규제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소비자 즉 시장이 판단하고 안 쓰면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정부와 정치권이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우리 IT기업과 스타트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도 전에 칼부터 대는 건 경계해야 한다. 글로벌로 뻗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
-정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나.
“신규 사업자와 이익을 침해받는 기존 사업자 간 갈등은 어디에서나 생긴다. 정부가 이해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상설 협의 기구를 운영하면 좋겠다. 하지만 테이블만 마련해놓고 ‘자 둘이 알아서 이야기 나눠 봐’ 하면 해결이 안 된다. 정부가 일정 부분 보증을 서야 한다. 예컨대, 미래가 바뀌고 있으니 이 부분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발전시킬 거다. 당신들이 받는 피해는 정부에서 일정 부분 보상해주고, 기업들이 성장하면 당신들의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하겠다고 해야 한다.”
◇주 52시간제, 유연하게 적용돼야
-스타트업계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짧은 기간만이라도 52시간을 넘겨 집중해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화이트칼라(사무직)나 연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유연한 근무시간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다른 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의 가장 큰 경쟁력은 ‘속도’다. 이용자 불편을 감지해 이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만들려면 나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밤새워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순간에는 누가 강요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내가 풀고 싶은 문제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이걸 시장에 내놓고, 이용자 반응을 받아 다시 고쳐 내놓아보는 과정이 바로 혁신이다.”
-소위 ‘열정페이’ 논란이 생기지 않을까.
“스타트업은 연봉 체계도 다르다. 현금보다는 주식 비율이 크다. 이들은 초창기 스타트업에 들어와 지분을 받거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으로 보상받는다. 나부터 직원들까지 모두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고 학원을 다니면서 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격증처럼 주식이 나에게 주어지니까 말이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은 기존 대기업과 달리 장시간 몰입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회사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느냐가 나의 성장에 직결되니까 직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
-현재 국내 창업 생태계는 어느 단계에 와 있나.
“내가 창업한 2011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쏘카뿐 아니라 토스·직방 같은 스타트업은 전 국민적으로 인지도를 쌓았고, 글로벌 진출 가능성이 보이는 곳도 많아졌다. 하지만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같이 ’플랫폼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업은 전부 미국 회사다. 우리도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민간이 디지털 경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국가가 인프라로 뒷받침해야 한다. 20여 년 전,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IT 기업이 크게 성장한 것처럼 데이터 분야나 기업 규제 분야에서 국가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
☞박재욱
국내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쏘카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26세 때인 2011년 커플용 메신저 ‘비트윈’으로 처음 창업했다. 2018년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를 출시했으나 논란 끝에 2020년 4월 사업을 접었다. 이후 최대주주인 이재웅 전 대표에 이어 쏘카 대표를 맡아 자율주행·주차장·전기자전거 등 까지 사업을 확대했고, 현재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을 겸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