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영수를 떠받들어 모시고, 영수를 지키며, 영수의 뒤를 좇자(永遠擁戴領袖, 捍衛領袖, 追隨領袖)”는 구호가 지난달 17일 중국 남단의 광시(廣西) 장족(壯族) 자치구에서 터져 나왔다. 느낌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개혁·개방 이전 1인 권력이 극성을 부리던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언어다.

이는 최고 권력자에게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다 바치는 ‘충성 맹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꼭 새롭다고만 할 수는 없는 현상이다. 현 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권력이 차츰 ‘연임’의 구상을 펼쳐가던 5년 전 시점에 이미 공산당 내부에서 조금씩 불거지기 시작한 일들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4월 12일 남부 하이난성에 위치한 원창 우주발사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현상을 중국에서는 흔히 ‘표충(表忠)’이라고 적는다. 최고 권력자의 위세가 매우 강했던 마오쩌둥(毛澤東) 집권 시절의 중국에서는 흔했던 현상이다. 개혁·개방 이후 줄곧 드문 일로 여겨졌으나 시진핑 총서기 연임 행보와 함께 최근 들어 되살아나고 있다.

현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는 올해 가을에 열릴 예정인 공산당 20차 당 대회에서 과거 권력구도의 틀을 깨고 연임을 성사시킬 분위기다. 분점으로써 세력의 균형을 유지했던 과거 권력의 틀과 달리 그는 연임을 통해 확고부동한 ‘1인 권력의 시대’를 열 듯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졌던 시진핑에 관한 호칭의 승격(昇格)과 찬양 발언이 그런 분위기를 잘 설명한다. 우선은 최근 광시 장족 자치구에서 나온 발언이 큰 관심이다.

◇새 충성맹세 신호탄 올랐다

광시 장족 자치구 지방 당 전체회의 공보(公報)를 통해 지난달 17일 등장한 위의 발언 앞과 뒤에는 “(권력) 핵심에 충성을 다 하고…시진핑(총서기)의 은덕에 감동하다”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일종의 지방 궐기에 관한 호소다. 중앙의 중요한 방침이나 권력자의 위상을 높이고자 할 때 지방 한 곳이 먼저 나서 다른 지방 정부 등의 추가적 움직임을 부추기고자 하는 전통적 방식이다. 이를 테면 시진핑의 연임을 위한 전국적인 차원의 새로운 ‘표충’의 신호탄이다.

중국 베이징의 봉쇄 구역 밖에서 시 근로자들이 중국 공산당 깃발과 유해 폐기물 쓰레기봉투 근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이에 앞서 최고 권력으로 부상한 시진핑 총서기에 대한 찬양은 조심스러운 몇 단계의 ‘수순(手順)’을 거쳤다. 최고 권력 연임 제한 규정을 철폐하기 전인 2016년의 ‘사전 공작’ 단계에서 시진핑은 공식적으로 ‘핵심’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이 때 나돈 유명한 ‘표충’의 구호가 “충성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절대적인 불충성(不忠誠)이다(톈진 당 서기)”는 말이다.

이어 연임 규정 철폐가 이뤄진 2017년 10월의 공산당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은 “모든 것은 최고 존엄이 결정한다”는 내용의 ‘정우일존(定于一尊)’의 지위를 획득한다. 개혁·개방 시기 전체를 통해 이뤄졌던, 권력의 분점과 합의에 의해 정책을 결정한다는 원칙은 이로써 공식적으로 무너졌다.

이 뒤에 나돈 충성 어구들은 낯이 뜨거워질 수준에까지 이른다. “하늘과 땅을 경략하는 영웅적 능력과 전략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끌고…(당시 국방부장)”, “영명한 영수임에 부끄러움이 없고…(베이징 시장)”, “시진핑 총서기의 발언을 뼈에 깊이 새기고, 핏속에 녹여, 행동으로 옮기자(당시 선전시 당 서기)” 등이 쏟아져 나왔다.

◇호칭에서는 마오쩌둥 이미 추월

2018년 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시진핑에 관한 공식 호칭은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이 대회 폐막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다섯 개의 공식 호칭을 얻는 성과를 올렸다. “당의 핵심(核心), 군대의 통수(統帥), 인민의 영수(領袖), 국가의 조타수(操舵手), 인민의 길 안내자(領路人)” 등이다. 과거 최고 권력자였던 마오쩌둥은 앞의 넷 호칭을 얻기는 했으나, 마지막 ‘인민의 길 안내자’라는 호칭은 받은 적이 없다.

중국 베이징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대형 초상화. /AP 연합뉴스

따라서 적어도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이 부여하는 ‘공식 호칭’에서 볼 때 시진핑의 권력은 마오쩌둥의 권력 장악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는 시진핑 총서기의 취임 이래 줄곧 펼쳐져 왔던 ‘권력 집중[集權]’의 일환이다. 고도의 권력 집중으로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에 대응한다는 명분이다. 그로써 관례 상의 임기를 넘어선 연임까지 시도하는 중이다. 문제는 그런 ‘권력 집중’이 마오쩌둥 시대의 개인숭배(個人崇拜)에까지 이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중국 정치 평론가 덩위원(鄧聿文)은 최근의 한 기고에서 “권력 집중과 개인숭배는 사실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며 “많은 일을 서두르다가 결국은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쥘(大權獨攬) 것이고…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개인숭배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예임을 자처하는 관료 풍토

만주(滿洲) 사람들이 중국을 석권했던 청(淸)나라 시절에 중국 관료들은 만주족 황제 앞에서 스스로를 “종놈…”이라고 불렀다. 한자로 적으면 노재(奴才)다. 자신을 다스리는 권력 앞에 신하로 복종하는 이른바 신복(臣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를 낮춘 표현이다. 그런 관가(官家)의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런 습속이 남아 요즘도 중국에서는 최고 권력자에 끝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노예처럼 무릎을 꿇고 땅바닥을 기는 풍토가 극심하다. 위의 ‘표충’과 관련 발언들에서 이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느껴진다.

마오쩌둥 중국 초대 주석(오른쪽)을 연상케 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뒷짐 진 모습. /둬웨이

이번에 광시 장족 자치구에서 불거진 “최고 지도자를 떠받치고, 지키고, 따르자”는 발언은 일말의 체제 위기감을 담고 있다. 최고 권력에 힘을 더 실어 불안정한 상황을 극복하자는 뉘앙스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국 권력의 고도 집중을 통한 통제와 개입의 강화 등을 예고하고 있다. 그로써 중국이 ‘개인숭배’의 어두운 시절로 다시 회귀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올 가을의 20차 공산당 대회가 최고 권력의 연임을 확정할 경우 중국의 국가발전 방향은 개혁·개방 시대와는 큰 결별을 고할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