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국력의 기반인 인구부터 흔들린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역대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도 압도적인 꼴찌이다. 작년 한 해 출생아 수(26만500명)는 20년 전인 2001년(56만명)의 절반을 밑돈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2020년부터 한국은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 크로스'를 매년 겪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한 병원의 신생아실 모습/뉴시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이런 추세라면 한국은 2050년대 초중반에 총인구가 3000만명대로 감소하고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超)저출산·고령화·생산인구 감소 등으로 2030년부터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0%대 진입이 확실시된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임기 중 2년에 한 번꼴로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성장 빙하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 최고의 수도권 집중과 급속한 지방 소멸, 신성장 동력 부재와 청년 일자리 감소도 악재이다. 이들은 재정·통화정책이나 기업 투자 확대 같은 전통적인 대응으로는 해결이 난망하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부머와 2030 청년의 ‘세대(世代) 간 연결’을 새로운 돌파 카드로 제시한다. 두 세대는 우리나라 인구 구성상 ‘허리’의 처음과 끝에 해당한다.

◇지방 이주·보육 지원...인구 절벽 해소

구체적으로 베이비부머들이 지방으로 이주하거나 만 70세까지 기간 중 청년 세대를 돕는 사회 공공 서비스에 참여할 경우, 경제적 보상으로 서로 ‘윈·윈(win-win)’토록 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결혼 기피와 저출산 악화의 주범(主犯)인 부동산 및 수도권 과밀화 문제부터 풀 수 있다.

실제로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 등으로 5년 전 6억708만원이던 서울 시내 아파트 평균 가격은 올 3월 12억7722만원으로 110%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지방으로 옮기면, 부동산 가격 폭등을 해소하고 ‘청장년이 사라진 지방’ 도래를 막을 수 있다.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주택 가격 급등은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고 있다. 2022년 3월 말 서울 시내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아파트 양도소득세 세무상담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수도권에 살고 있는 440만명의 지방 출신 베이비부머 가운데 40만~50만명만 귀향해도 주택 물량이 대거 쏟아져 2년 안에 수도권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장기(長期) 지방 이주자에게는 수도권 주택 자녀 증여 시 세금 경감, 지방의 대체 주거지 제공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를 보장해 준다.

또 희망하는 베이비부머들에 한해 전국의 공공 육아·보육 시설 또는 어르신 돌봄 시설에서 주 2~3일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월 100만~150만원 급여 등을 받는 방안도 가능하다. 베이비부머들이 지역 대학에 등록해 ‘평생교육 학습’ 등을 할 경우, 지방 대학의 유지·발전과 은퇴자의 미래 준비라는 ‘일석이조’ 효과가 생긴다.

◇기술·경영 노하우 전수...일자리 창출

정부가 올 3월 발표한 청년 실업률은 7%대이지만, 지난해 청년들의 체감(體感) 실업률은 27%로 4명 중 1명 이상이 무직자였다. 국내 일자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비(非)대기업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것이다.

이를 위해 대기업이나 기술 인력 출신 베이비부머가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기술 멘토나 상담역으로 재취업하면, 해당 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돼 새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 10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7만여 국내 중소·중견기업 가운데 1만개의 혁신 또는 수출 중심 업체를 우선 대상으로 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은퇴자를 기술 고문 또는 글로벌경영 자문역으로 배치하고 이에 상응해 청년들도 같이 일하게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베이비부머는 3~5년 근무로 사회생활을 연장하면서 건강보험·국민연금 불입 같은 혜택을, 청년들은 회사 성장에 따르는 급여 상승과 기회 확대를 누릴 수 있다.

이런 취지에서 2018년 7월부터 베이비부머 기업인들과 2030 창업자들을 연결해 지원하는 사단법인 ‘도전과 나눔’ 같은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금룡 이사장은 “11명의 성공한 선배 기업인들이 120명의 청년 기업가들을 매월 직접 만나 다양하게 돕고 있다”며 “청년들의 만족도가 높아 참가자가 매년 늘고 있다”고 했다.

◇ 두 세대는 한국이 보유한 세계 最强 ‘전략 자산’

베이비부머와 2030 세대 간의 ‘결합’은 어떤 선진국도 시도해본 적 없는 우리나라의 전략적 승부수로 꼽힌다. 두 세대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만 보유한 가장 강력한 ‘인적(人的) 전략 자산’이기 때문이다.

710만명의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는 동년배의 10%대가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첫 번째 세대이다. 이들은 1995년 당시 1인당 소득 1만달러이던 한국을 소득 3만달러(2015년·당시 52~60세) 국가로 만든 핵심 세력이다. 수천 달러이던 1인당 소득을 20여 년 만에 3만달러로 높인 세대는 한국의 베이비부머가 유일하다.

베이비부머들은 은퇴후 생활 준비에 열심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열린 ‘인생대학’ 수료식에 참석한 베이비부머들 모습/조선일보DB

2030 세대는 대학 진학률이 70~80%에 달하고 해외 유학·어학연수 등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글로벌 경쟁력 높은 프리미엄 세대이다. 그러나 인구 구조 변화와 경제 성장세 약화 등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첫 번째 세대로 꼽힌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2030 세대가 신바람 나게 일하고 결혼·출산을 활발하게 해야 베이비부머도 안정된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다”며 “산업화와 디지털화를 대표하는 두 세대가 화해하며 유기적으로 결합한다면, 우리나라가 성장 엔진을 재점화해 1인당 소득 5만달러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日처럼 몰락 않으려면...베이비부머가 청년세대 도와야”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며 몰락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베이비부머 격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자식 세대를 방치해 160만~300만명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생긴 탓이다.”

정영록(64)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다행히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경제력은 물론 사회에 대한 공적 책임감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희생과 양보, 조화로 청년 세대를 돕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성숙한 ‘첫 번째 어른 세대’로 두고두고 평가받을 것”이라고 했다.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송의달 기자

그는 최근 저서 ‘핏팅 코리아’ 등에서 “세계적으로도 진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베이비부머들을 소환해 이들이 ‘조연(助演)’급 수준의 사회적 기여와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지속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베이비부머들이 소임을 다하려면 가칭 ‘세대 승계 기금’을 만들어 후계 세대가 쓸 재원을 확보해주거나, 자녀에게 집을 넘겨주고 일부를 전세로 사는 ‘자가(自家) 전세’ 같은 부(富)의 이전(移轉) 방법도 적극 고민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청년들의 열악한 경제적 현실에 근거한다. 한국은행이 올 3월 낸 보고서를 보면, 1980~95년생은 20년 전 같은 연령대보다 4.3배 많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불황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소득이 적은 데다, 주택 구입 용도의 대출금이 많아서다.

정 교수는 “일본의 히키코모리 같은 미취업 부적응 청년을 줄이기 위해 중소·중견기업, 군대, 지역 공공시설에 남녀 청년들이 일정 기간 선택 근무해 준(準)직장 경험을 쌓는 ‘공공서비스 의무제’를 도입할 만하다”고 했다.

“베이비부머와 2030 세대가 결합하면 중심축인 40~55세 세대가 은퇴 후 걱정을 떨쳐 강력해진다. 베이비부머가 조만간 완전 퇴장하기 전에 국가적 차원에서 공론화하고 정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