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아주 한국사무소의 피터 언더우드 소장이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조지아주의 잇따른 대형 투자 유치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친기업 환경, 그리고 공무원들의 서비스 마인드”가 투자 유치의 핵심 비결이라고 말했다./박상훈 기자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현대차·기아의 첫 미국 전기차 공장 입지를 조지아주로 낙점하고, 총 55억달러(약 7조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조지아주는 현대차그룹 유치로 총 81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 내 ‘전기차 산업의 허브’로 급부상했다. 이 밖에도 SK온이 2019년부터 3조원을 들여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2개 짓고 있다.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미 전기차업체 리비안도 두 번째 전기차 공장(50억달러)을 짓기로 했다.

코카콜라·델타항공 본사가 있는 조지아주는 특히 한국 기업들과 인연이 깊다. 1999년 SKC가 필름 공장을 준공했고 기아(2009년), 금호타이어(2016년), 한화큐셀(2019년)이 잇따라 공장을 세우면서 협력사들까지 약 120개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단일 국가로는 한국이 최대 투자국이다.

한국과 조지아의 각별한 인연 뒤에는 34년째 오작교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지아주 한국사무소의 피터 언더우드(67) 소장이 있다. 그는 연세대를 설립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가문의 4세로, 4대째 서울에서 살고 있는 서울 토박이다. 1988년부터 조지아주 한국사무소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말한다. 그를 만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이었던 남부 목화밭 지대 조지아가 첨단 산업 허브로 변모하게 된 비결을 들어봤다.

◇투자 유치 비결은 ‘친기업 환경’

-조지아주가 현대차를 포함한 대형 투자를 최근 잇따라 유치하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친기업 환경이다. 먼저 조지아주는 30년 이상 법인세를 6%로 동결해오다 2019년에는 5.75%로 더 내렸다. 생산한 제품을 다른 주나 해외로 수출해 얻는 수익에는 법인세를 면제한다. 기업이 들어와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이 세수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도인 애틀랜타는 과거 지명이 ‘터미널’이었을 정도로 물류 요지다. 애틀랜타 공항은 전 세계에서 1일 이용객수가 가장 많고, 미국 전역을 어디든 비행기로 4시간이면 갈 수 있다. 조지아주 서배나 항구는 파나마를 거쳐오는 선박들이 미 동남부 지역 중 가장 첫 번째로 정박하는 곳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공장을 짓는 곳이 바로 서배나시 근처인 브라이언 카운티다.”

그는 새 현대차그룹 공장에 대해 “서배나시 인근 브라이언 카운티의 2923에이커(약 357만평) 규모 부지 내에 들어선다”며 “이 부지는 조지아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메가 사이트’로, 조지아주가 기업 유치를 위해 작년 5월 땅을 매입해 조성한 곳”이라고 말했다.

-여러 장점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경쟁력은 무엇인가?

“조지아주에는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대신 교육시켜주는 ‘퀵스타트’ 프로그램이 있다. 기업 투자가 결정되면 주정부가 곧바로 공장 준공 시 투입할 인력을 교육시키고 채용까지 연결해준다. 교육 프로그램은 퀵스타트 사무소 직원들이 기업과 논의해 같이 만들지만, 교육 과정의 소유권은 기업에 넘겨 다른 해외 공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1999년 조지아주에 비디오테이프 공장을 지었던 SKC의 경우, 공장 준공 후 풀가동 하기까지 다른 곳에선 1년이 걸렸는데 퀵스타트 덕분에 6개월 만에 가동에 들어갔다. 기아를 비롯해 최근 조지아주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 모두 이런 지원을 받았다. 정상 매출이 빨리 발생하면 기업 입장에서 엄청난 이익이다.”

피터 언더우드 조지아주 한국사무소장이 13일 서울 중구 오피시아빌딩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조지아주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미국은 지금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로 인력난이 심각한데.

“조지아주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좋다. 일단 인구가 1100만명이다. 미국에서 기업 하기 좋은 곳으로 부상한 미 동남부 선벨트 지역 중 플로리다주에 이어 둘째로 많다. 노인 인구가 많은 플로리다와는 달리 조지아주 평균 연령은 36세다. 조지아텍과 에모리대학 같은 뛰어난 대학이 있다. 산업 인력을 양성하는 전문대학(테크놀로지 칼리지)도 조지아주 159개 카운티에 1개씩 세운다는 목표로 건립 중이다. 기업이 조지아주 어디서든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다. 미국 대부분의 주는 기업 유치를 위해 거액의 현금 보조금을 지원하지만 조지아주는 현금 지원은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오는 것은 필요한 인력을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지아주 경제개발청은 총 32국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해 기업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체 환경법이 엄격한 캘리포니아주와 달리 주정부가 정하는 환경법이 따로 없다”며 “조지아주 환경청은 규제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지 도와주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관련 일자리만 2만개 창출

-최근엔 전기차 관련 투자를 대거 유치했다.

“전기차 분야에서만 최근 5년간 약 20개 기업을 유치했고, 2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받았다. 조지아주는 2009년 기아가 공장을 지으면서 자동차 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주요 부품 생태계가 갖춰진 것이다. 기아가 조지아주 공장 가동을 시작했을 당시 주민들은 기아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기아 공장 주변에는 아직도 ‘신이시여 기아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푯말을 볼 수 있다. 당시 금융 위기로 죽어가던 지역 경제가 기아 덕분에 살아났고, 기아는 지금 조지아주의 최대 기업이 됐다. 여기에 SK가 배터리 공장을 지으면서 에코프로비엠 같은 배터리 소재 회사들도 다수 들어왔다. 전기차 허브가 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조지아주는 작년 7월 ‘전기 모빌리티 혁신 연합’이란 조직을 만들어 관련 기업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한국, 기업 유치하려면 ‘노동유연성’ 절실

-한국이 투자 유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투자 환경을 고쳐야 한다.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고용 유연성’이다.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해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 중견기업 임원인 지인의 운전기사가 여직원 성추행이 적발돼 해고됐는데 노동부에서 다시 고용하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영학에서는 ‘해마다 직원 5%는 정리하라’는 말이 있다. 그래야 기업이 계속 100% 업그레이드된다는 의미다. 지금 한국 노동법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부당하게 해고하지 않게 하는 법도 있어야 하지만, 목표 달성을 못하면 내보낼 수 있는 법도 있어야 한다.”

-한국은 강성 노조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노조는 이제 정말 바뀌어야 한다. 1980~1990년대 노동자들의 권리가 억눌려 있었을 때의 투쟁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시대에 따라 변화할 줄도 알아야 한다. 조지아주는 노조 가입률이 4%대로 낮다. 오히려 노조 가입을 강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노조가 파업을 결정하더라도 근로자 개개인이 ‘일할 권리(right to work)’를 법으로 보장한다.”

-한국은 규제 왕국이라는 말도 듣는다.

“주 52시간제가 대표적이다. 공정거래법도 너무 복잡하다. 한국은 문제가 생기면 규제 위에 또 다른 규제를 또 만든다. 특정 제품군의 30%는 중소기업이 만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법은 정말 복잡한데 실제 공정한 거래는 이뤄지지 않는다. 공정위가 공정 거래 감독만 잘했다면 그런 법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이 기업 간 내부 거래, 아는 사람끼리의 거래가 너무 많다고 느낀다. 이것도 투자를 저해하는 한 요인이다.”

◇”우리나라, 창업 더 많아져야”

-2012년 출간한 ‘퍼스트 무버’에서 ‘한국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예전엔 모두가 좋은 학교 나와서 대기업 들어가는 꿈을 꿨다면, 요즘 다양한 꿈을 좇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너무 많은 학원에 보내고 획일적으로 키운다. 우리나라에 더 창의적인 인재가 많아지고, 창업이 많아져 유니콘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여전히 창업 환경은 그리 좋지 않다. 회사가 부도나면 대표이사가 감옥을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창업은 90%가 실패하는 건데, 패자 부활의 기회를 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할 만큼 한국 사랑이 깊은 것 같다.

“미국 국적에 한국 영주권자다. 내 고향은 연희동이다. 4대째 서울에서 산 토박이는 한국 사람 중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학·대학원을 다닐 때만 빼고 계속 서울에 살았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과 미국이 대결했을 땐 우리나라를 응원했다. 내심 좀 걱정하긴 했다. 누가 이기든 드러내놓고 기뻐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다행히 비겼다.”

☞피터 언더우드(한국명 원한석)

일제 강점기 때 연세대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우고 한국에 헌신했던 미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 1859~1916)의 4세. 독립운동을 도왔던 2세 원한경 목사의 손자, 연희전문학교 조교수였던 3세 원일한 전 연세대 재단이사의 아들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한국에 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희동에서 살고 있어 한국어에 능통하다. 미 루이스앤드클라크 칼리지, 샌프란시스코대 MBA를 졸업했다. 조지아주 한국사무소를 위탁 운영하는 컨설팅회사 IRC에 1988년 입사해 지금까지 한국 기업과 조지아주를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