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39회>

<1989년 5월 17일, 톈안먼 광장의 시위. 사진/AP Photo/Sadayuki Mikami>

“인웨이 자이 중궈 런타이둬(因爲在中國人太多, 왜냐면 중국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한중 수교 이듬해인 1993년 늦봄, 서울 종각 부근 어느 중국어 학원에서 연변 출신 조선족 강사 “우라오스(吳老師, 오선생, 가명)가 열다섯 명 쯤 되는 학생들을 향해 “중국을 알고 중국인의 마음을 읽으려면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표현”이라며 큰 소리로 따라 읽으라 했다.

“인웨이 자이 중궈 런타이둬! (因爲在中國人太多, 왜냐면 중국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스무 살에 입대하여 10년의 군 생활을 했다는 우라오스는 중국어도 알기 쉽게 잘 가르쳤지만, 중국 관련 얘기라면 정치, 문화, 관습, 음식, 무술, 의학, 암흑가 무용담, 연예계 스캔들까지 그 어떤 주제라도 막힘없이 걸쭉한 함경도 사투리로 “군인정신”을 발휘해 소상히 알려주는 자타공인의 “중국통(中國通)”이었다.

우라오스가 진도를 뽑다가 슬금슬금 옆길로 샐 때면 동학들의 얼굴엔 방실방실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 목소리가 점점 더 고조되어 급기야 한방 제대로 빵 때릴 땐 학생들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쾅쾅 내려치며 폭소를 터뜨리곤 했다. 여학생들 중에는 웃다가 눈물을 닦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누기든 중국 가서는 꿈에라도 범법 활동을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왜서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는 마약거래, 인신매매, 장기밀매, 금괴밀수, 불법도박 기타 등등, 그따위 악행을 범하다가 공안에 딱 걸리는 날이면, ‘즉결처형!’ 언도받고, 공개로 총살돼버리기 때문임다. 군에 있을 때 나가 공개처형을 현장에서 직접 감독을 해봐서 잘 아는데, 사형수가 잡혀 와서 총살을 당할 때는 맨 앞줄에다가 비행청소년, 불량배, 잡범들을 앉혀 놓고 ‘느그들도 악행과 망동을 계속하면 저렇게 총살당한다야, 잘 보라!’며 그 모습을 필시 지켜보게 합니다. 보통 총살형을 할 때는 죄인을 양손을 등 뒤로 묶어서 고개를 앞으로 푹 수그리게 하고 무릎을 꿇려서 멍하니 땅만 보게 한 후에 뒤통수를 조준해서 쏩니다. 문신투성이 깡패, 상처투성이 왈패 녀석들도 눈앞에서 총 맞고 쓰러지는 잔인한 장면을 보는 순간엔 벌벌 떨면서 오줌을 지리고 말아요.”

<55명에 대한 사형 공개 선판(宣判, 판결 선고) 대회 장면. 사형 선고 직후 트럭에 실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 중국은 해마다 수천 건의 사형을 집행하고 있다. 사진/Reuters>

학생들의 얼굴에 공포, 놀라움과 함께 잠시 웃음도 스쳐갔다. 그때 우라오스가 말을 이어갔다.

“양코배기야 바깥에서 중국을 욕하고 비난하겠지만, 그건 다 모르고 떠드는 소립니다. 중국이란 큰 땅띠가 어캐 저러케 돌아가는지 쥐뿔 몰라서 하는 잠꼬대 같은 소리가 아니가 싶단 말이지요! 왜서 그러냐면, 자유니 인권이니 인구가 1-2억 정도면 몰라도, 10억 넘어가면 그런 게 다 통할 리가 없다 이 말임다. 13억 인구 전부에게 자유를 주고, 인권을 주면, 사회가 통제가 되겠음까? 꽉 잡아도 온갖 위법, 불법, 탈법, 비행, 악행, 부패, 사기, 협잡, 공갈, 날마다 범죄가 터지는데, 중국 같은 큰 나라에서 자유니 인권이 다 뭔 호랑말코 우스개냐 이 말임다. 중국 같은 큰 나라는 고저 군이 나서서 꽉 잡아야 합니다. 모택동도, 등소평도 다 군으로 전 사회의 질서를 잡고, 군으로 전 인민의 군기를 잡은 혁명군 장수들임다!”

연변 출신 중국어 교사의 주장 “중국 같은 큰 나라는 군이 질서 잡아야”

신명 나서 강의를 할 때면 우라오스는 늘 장황하게 중국의 숱한 문제점을 일일이 열거하고선, 해결책을 얘기할 땐 일언지하로 오로지 중국공산당만이 군대를 앞세워서 통치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0년 간 군 생활을 한 사람답게 우라오스는 질서, 규율, 정리정돈만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원밍즈루(文明之路, 문명의 길)”라 설파하곤 했다.

“자, 지금 내가 여러분께 알려주는 이 표현이 중국 가면 어디서나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중요한 말인데, 교과서엔 절대로 이런 게 나오지를 않아요. ‘인웨이 자이 중궈 런 타이둬!’ 중국엔 인간이 너무 많아서다, 이 말임다. 바쁠 땐 그냥 줄여서, 런 타이둬 人太多! 런타이둬!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게 말을 하면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런 타이둬, 런 타이둬! 이 말이 중국에선 ‘밍톈 자이 수어바(明天再說吧, 내일 다시 얘기합시다)’ 다음 2등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이겁니다. 이 말을 모르고선 중국을 이해할 수가 없슴다.”

우라오스는 학생들에게 “인웨이 자이 중궈 런 타이둬”란 구절을 여러 차례 복창시켰다. 런 타이둬! 런 타이둬!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이 너무 많다! 이후 중국을 드나들며 확인할 수 있었지만, 중국 사람들은 실제로 날마다 이 말을 자주 한다. 구글 검색창에 따옴표를 쳐서 그 문장을 통째로 찾아보면, 비슷한 표현까지 13억 7천 만 개 정도가 순식간에 나올 정도다.

<중국 저장성 원저우의 선판 대회. 사진/Reuters>

일당 독재 치하에서 작은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체념과 적응의 논리

중국인들이 왜 입버릇처럼 “런 타이둬”라 말을 할까? 실제로 중국의 인구가 세계 최대이기 때문이지만, 그 한 마디 속엔 공산당 일당독재 치하에서 산더미처럼 큰 기계의 작은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힘없는 개개인의 체념과 적응의 논리가 담겨 있다.

중국은 인구 14억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국가이므로 중국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중국만의 정치문화, 중국만의 사회·경제 제도가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발상이다. 근대 산업화는 중국 인구의 급증을 불러왔고, 그 결과 더 강력한 독재 권력의 지배가 불가피하다는 중국식 일당독재의 인구학적 설명이다.

중국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것도, 마오쩌둥의 권위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도,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인권이 무너진 것도, 산아제한을 위해 정부가 여성의 몸에 IUD(피임용 자궁 내 링)를 삽입한 것도, 위구르족 100만 여명을 구금하고 시진핑 사상의 학습을 강요하고 있는 것도, 헌법에 명시돼 있던 임기 제한 규정을 없애버리고 현직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재집권을 노리는 것도, 그 모든 중국의 문제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라는 설명이다. 그 말을 잘 되새겨 보면 서구나 북미 사회와는 전혀 다른 중국역사의 특이성, 중국 사회의 특수성, 중국문화의 고유성, 중화문명의 예외성을 강조하는 발상이다.

단순히 우스개가 아니라 중국 사람들 다수가 공산당 일당독재를 견디는 이유는 바로 그 시스템이 14억 인구의 광대한 대륙국가에서 분열과 혼란을 피해 그나마 잘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생존전략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통치능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서방의 지식인들도 바로 그 점을 강조한다. 15년 전쯤 보스턴의 한 학술토론회에서 들었던 나이 지긋한 한 미국인 여성 학자의 발언을 잊을 수 없다. “인민에게 배 굶는 민주주의가 다 무슨 소용일까요? 중국의 문제는 ‘민주냐 독재냐?’가 아니라 ‘혼란이냐 거버넌스냐?’가 아닐까요?” 중국은 14억의 인구가 모여 사는 대륙 국가이기 때문에 자유, 민주, 인권보다 치안과 질서가 인민의 실생활 더 중요하다는 논리이다. 정부의 정치체제가 독재든 민주든 진정 중요한 건 치안유지와 생계보장 등 인민의 “살 권리” 보장이라는 개발독재의 변론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 인간의 가치가 추락한 슬픈 나라

중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한(漢)제국에서 당(唐)제국 중엽까지 인구는 5천만~6천만에 머물러 있었다. 그 후 중세 농업혁명의 결과 3세기 만에 인구가 두 배로 늘어서 1100년이면 1억이 넘었다. 몽골 지배 시기 전염병과 전쟁으로 인구가 3분의 1 이상 급감했지만, 명말(明末) 상업혁명으로 인구가 다시 1억 4천만까지 치솟았다. 17세기 “작은 빙하기”를 거치면서 10-20% 감소했다가 청(淸)제국 초기 150년 태평성세의 결과 19세기 중엽엔 4억을 돌파하는 명실 공히 인구 폭증을 경험했다. 수리시설의 확충, 곡물의 품종개량, 영농 기술의 보급, 천연두 통제 등 의학 발전이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 또한 감자, 고구마, 옥수수, 사탕수수, 대두 등 신대륙의 작물이 유입은 빈곤층의 생존율을 놀랍게 향상시켰다.

<188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축제. 19세기부터 본격적인 중국인의 이산(離散, diaspora)이 시작되었다. 2010년 경 전 세계 중국계 인구는 4천 만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사진/공공부문>

전통시대 인구의 증가는 물론 정치적 통합과 경제성장의 결과이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인구를 빈곤의 악순환에 몰아넣는 환경재앙과 실업대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생존한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다수의 생활수준은 저하되는 “발전 없는 성장”이 이어지게 된다. 생존 경쟁에서 밀려나서 농지를 잃은 빈민은 산지와 황무지를 개간하지만, 그 역시 살아남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일상적 경쟁을 의미했다. 고향에서 뿌리 뽑힌 빈민들은 인근지역을 유랑하다가 더 큰 생존의 기회를 찾아서 대도시나 해외로 탈출하거나, 대규모 민란에 가담하는 극한 선택에 내몰렸다.

중국 근세기 인구 폭증은 그야말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간의 가치가 하락하는 내권(內卷, involution, 안으로 말림)의 현상을 낳았다. 여기서 내권이란 경제학적으로 투입되는 총 노동량에 비례해서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는 “안으로 돌돌 말린”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일꾼들이 임금의 10%를 더 벌기 위해서 두 배 이상 노동을 해야 하는 고난 상황이다.

요컨대 중국의 근·현대사에선 인구가 늘면 그만큼 인간의 가치는 하락하는 기막힌 역설이 발생했다. 인구학에서 말하는 바로 그 “맬서스의 인구 함정(the Malthusian population trap)”이다. 오늘날 중국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인간 개개인의 가치가 집체적으로 하락한 슬픈 나라가 되어버렸다.

중국 인민이 원하는 건 자유 민주가 아니라 유능한 통치? “사람아, 아, 사람아!”

탱크부대를 보내서 시민들을 압살하는 톈안먼 대학살을 자행한 후에도 중국공산당은 권력 강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30년 전 종각 부근 한 중국어 학원에서 우라오스가 말했듯 “사람이 너무 많아(人太多)!”가 아니라면, 다른 설명이 가능할까? 진실로 “런타이둬!”는 오늘날 중국의 정치 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아닐 수 없다.

1989년 6월 4일 톈안먼 대도살 이후 중국 정부는 사람들을 두 개의 문이 달린 큰 방에 몰아넣고 선택을 강요했다. 왼쪽 문 밖에는 자유, 민주, 인권을 향한 가시밭길 길이 펼쳐진다. 오른쪽 문 밖에는 일당독재 하의 경제적 보상이 따른다. 그러한 양자택일의 극한 상황에서 대다수 중국 인민은 후자를 선택했다.

중국학자들뿐만 아니라 서방의 학자들 중에도 바로 그러한 인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인민이 진정 원하는 건 자유, 인권, 민주가 아니라 치안유지와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유능한 통치이며,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는 바로 그 점에서 인민의 기본욕구를 충족시켜준다고 주장하는 분석가들도 많다. 오늘날의 중국은 실제로 진시황 이래 2천년 지속된 황제체제의 연장일 수 있다.

문제는 중국과 전 세계 대다수 국가와의 경제적 공생 관계가 갈수록 더욱 강화되면서 중국은 안팎에서 더욱 거센 개방개혁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라고 둘러대기엔 그 사람들 개개인의 정치의식이 갈수록 고양되고, 권리주장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11명의 인물이 돌아가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고발하는 다이허우잉(戴厚英, 1938 – 1996)의 눈물겨운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가 보여주듯,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들 개개인이 모두 소중한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계속>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자유가 없으면 차라리 죽겠노라!” 사진/ https://www.wilsonquarterly.com/quarterly/_/tiananmen-square-at-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