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근무 후 귀국한 것이 2002년 초였다. 일본 취재 경험을 토대로 ‘한·일 산업 역전’ 기획을 해보자고 제안했더니 경제부 선후배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은 우리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란 게 그 시절 상식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무슨 재주로 일본을 따라잡느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했다.
일본은 조용하고 평온한 나라였다. 그런 곳에서 살다 온 기자에게 한국은 하도 변화 속도가 빨라 눈이 팽팽 돌아갈 지경이었다. 당시 한국 산업계는 디지털 전환이 한창이었다. 네이버 같은 신흥 기업들이 속속 탄생하고 전통 제조업도 디지털 혁명의 격류에 올라타 사업 모델 자체를 완전히 재구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천하의 소니며 마쓰시타가 쇠락하고 삼성·LG가 그 자리를 차지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네이버의 ‘라인’이 일본의 국민 메신저로 군림하게 될 것임을 어떻게 내다볼 수 있었겠는가.
오랫동안 일본은 우리에게 ‘특별한’ 나라였다. 이 말엔 부러운 선망의 대상이란 의미와 함께 이질적이고 이상한 존재란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일본은 부유한 선진국의 상징과도 같았다. ‘메이드 인 재팬’은 신뢰의 대명사였고 일본식 모델은 국가 발전의 롤 모델 역할을 했다. 강력한 경제, 안정된 사회 질서, 워크맨·가라오케로 상징되는 혁신 능력, 남을 배려하는 국민성은 언제나 감탄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이해하기 힘든 피곤한 이웃이기도 했다. ‘칼의 DNA’가 새겨진 민족성은 우리의 경계심을 자극했고, 반성하길 거부하는 왜곡된 과거 인식은 우리를 분노케 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일본은 ‘보통의’ 나라가 아니었다.
한·일 관계 역시 ‘특별한 일본’을 전제로 구축돼 있었다. 일본엔 강자(强者) 특유의 여유가 있었다. 일본의 기술·지식 이전과 자본 지원, 한국 산업계의 ‘일본 베끼기’가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의 역사 인식은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가해자로서 최소한의 부채 의식은 갖고 있었다. 역사 왜곡이나 정치인 망언(妄言)에 우리가 반발하면 듣는 척은 했다. 이제 모든 전제가 바뀌었다.
일본은 더 이상 우리의 롤 모델이 아니다. 20년 전 기자가 귀국할 당시 일본의 1인당 GDP는 우리의 3배였다. 지금은 거의 비슷하다. 20년 사이 우리의 소득이 3배 늘어났지만 일본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100여 년을 축적한 일본의 지적·물적 자산과 과학 기술력은 여전히 강력하고 일본이 중요한 나라임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과거처럼 압도적이진 않다.
삼성 ‘갤럭시’가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 동안 일본은 변변한 스마트폰 브랜드조차 못 만드는 나라가 됐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와 현실증강 게임 ‘포켓몬고’ 이후 세계를 사로잡은 일본발 혁신이 떠오르지 않는다. 구로사와 아키라를 배출했던 일본 영화는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K콘텐츠에 밀려났고, 일본 ‘망가’는 한국 웹툰에, 닌텐도 게임기는 한국형 온라인 게임에, J팝은 K팝에 무릎을 꿇었다. 선진적이라던 일본식 시스템은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허상을 드러냈다. 확진자 집계를 비롯한 모든 행정 절차를 구닥다리 팩스에 의존하는 일본의 후진성이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한·일의 경호 역량을 비교한 글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이 날아들었을 때 한국 경호원들은 완벽하게 대응해 추가 테러를 막았다. 아베 전 총리의 경우 첫 번째 총성 후 3초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경호에 실패해 두 번째 총탄에 치명상을 허용했다. 일본이 자랑하던 매뉴얼 대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안전 면에서도 일본은 평범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은 군사·안보적으로도 특수한 나라였다. 톱클래스의 군사력을 보유했지만 평화헌법에 의해 자위대는 ‘군대’가 아닌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자민당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가 ‘보통 국가론’을 주장한 것이 1990년대 초였다. 다른 보통의 국가들처럼 안보의 속박을 벗어던지자는 일본 보수파의 염원은 개헌 세력이 중·참의원 의석 3분의 2를 확보함으로써 가시권에 들어왔다. 일본이 헌법을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우리는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전 시스템 면에서도 특별하지 않은 ‘보통 국가’ 일본과 마주 서게 됐다. 침체를 겪는 나라는 내향적이 되고 배타성을 띠기 쉽다. 일본에서 들끓는 ‘혐한(嫌韓)’ 정서도 한국에 따라 잡혔다는 집단 우울증의 분출과 다름없다. 한일 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우리가 좀 더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국력 저하로 예민해진 일본을 끌어안고 우리가 앞장서 이끌어가는 큰 그림의 전략 외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