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43회>

<2019년 6월 1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일어난 반중 시위. 거리에 나온 학생들이 “대만은 홍콩을 지지한다!” 등의 구호를 들고 있다. 당시 홍콩에서는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었다. 사진/Wu Min-zhou/the Epoch Times>

대만 간 펠로시 “일인지배냐, 민주주의냐 선택의 기로...대만 국민과 연대 중요”

“완화자분(玩火自焚).” “불을 갖고 놀다가 자신을 태워버린다”는 뜻. 지난 7월 28일, 시진핑 총서기가 바이든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할 때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견지하라며 흘린 경고의 메시지다. 시진핑 총서기의 이 도발적 발언은 대만 방문 의사를 밝혀 온 미국하원의장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1940- )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 군부의 우려를 전하며 펠로시의 대만 방문에 우려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미국의 유수한 언론에서도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고조됐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리드만(Thomas L. Friedman, 1953- )은 대만을 위기로 몰아넣는 “전적으로 무모한(utterly reckless)” 행동이라며 펠로시의 방중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프리드만이 반드시 중국 입장을 변호했다고 볼 순 없다. 그는 호저(豪猪, porcupine)의 등에 빽빽하게 자란 빳빳한 가시털처럼 대만 땅에 충분한 양의 미사일이 배치될 때까지는 미국도 영리한 외교를 이어가야 한다는 신중론을 펼쳤을 뿐이다.

조야의 우려와 비판이 고조되자 82세의 펠로시는 정면승부를 택했다. 보란 듯이 미 공군 제트기를 타고 타이베이의 쑹산 공항에 착륙한 직후, 그는 중공중앙의 시진핑을 정 조준해서 말의 포탄을 쏘았다.

“세계가 일인지배(autocracy)냐, 민주주의냐의 선택에 직면하고 있는 바로 지금, 미국과 2300만 대만 국민의 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펠로시는 왜 독재(dictatorship), 압제(tyranny), 폭정(despotism) 같은 보다 일반적인 단어 대신 굳이 “일인지배(autocracy)”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일인지배”라는 말로써 펠로시는 푸틴과 시진핑을 동시에 비판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증명하듯 세계는 지금 권력욕에 눈 멀어 인민을 담보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인지배”의 광기에 직면하고 있다. 대만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시진핑도 헌법까지 뜯어고쳐 재집권을 꾀하는 “일인지배”를 연출하고 있다.

<2022년 8월 2일 밤 11시 경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와 대표단 일행. 사진/https://twitter.com/SpeakerPelosi>

노회한 정치인 펠로시는 미·중 갈등을 “민주주의와 일인지배의 대결”로 규정했다. 아울러 펠로시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일인지배의 중국에 위협당하는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연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우리의 방문은 미국이 대만과 함께 함을 다시 강조합니다. 대만은 강건하고 역동적인 민주주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환구시보 전 편집장 “펠로시가 탄 비행기와 호위 전투기 격추할 수도 있다”

1991년 톈안먼 광장을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민주당 의원 펠로시는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죽은 이들을 위하여”라 적힌 배너를 들고서 톈안먼 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면을 연출했던 인물이다. 톈안먼 대학살 이후 그는 수천 명의 중국학생들이 미국에 계속 남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주역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달라이 라마를 옹호하며 중국 정부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등 민주당 내 반중 매파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해 왔다.

<낸시 펠로시 의원이 벤 존스(Ben Jones, 왼쪽)의원과 존 밀러(John Miller, 오른쪽) 의원과 함께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은 이들을 위해서”라 적힌 배너를 들고 있다. 1991년 9월 4일 TV 화면. 사진/ AP file>

그러한 펠로시의 대만 방문 계획이 알려지자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관과 언론인들은 경쟁적으로 과격한 언사들은 내뱉었다. 일례로 트위터 중국공산당의 선전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전(前) 편집장 후시진(胡錫近, 1960- )은 중국이 펠로시가 탄 비행기를 격추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했다.

“펠로시가 탄 비행기가 대만에 착륙할 때 미국 전투기가 호위한다면, 이는 침략이다. 중국 군대는 강압적으로 펠로시의 비행기와 미국 전투기를 쫓아버릴 권리가 있다. 공포를 쏘고 방해 전술을 쓸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그 비행기들을 격추할 수도 있다.” (7월 29일, twitter.com/HuXijin_GT]).

지금까지 쏟아낸 전랑 외교의 발언들만 놓고 보면, 중국공산당은 당장이라도 대만을 무력으로 응징하고 통일을 이루려고 하는 듯하다. 실제로 중국은 현재 대만을 둘러싸고 강력한 군사 시위를 하고 있다. 과연 이번 사태가 무력충돌로 이어질까? 과연 시진핑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푸틴처럼 대만을 침공할 수 있을까? 전랑들의 극단적 발언만 보면, 전쟁이 임박한 듯하지만, 시진핑은 결코 대만을 침공할 순 없을 듯하다. 중국 매체가 연일 쏟아내는 과격한 발언은 최후통첩이 아니라 블러핑(bluffing, 엄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중, 군사 충돌 예고하는 최후통첩의 수사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물위언지불예(勿謂言之不預)!” 군사충돌을 예고하는 중국 방식의 외교적 수사다.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 곧 말로 할 때 상대가 꼬리를 낮추지 않으면 무력으로 응징하겠다는 엄포성의 발언이다.

1949년 1월 16일 베이징 점령을 앞두고 “인민해방군” 사령관 린뱌오(林彪)와 정치위원 뤄룽환(羅榮桓)이 베이핑(北平, 베이징) 방위 사령관 푸쭤이(傅作義, 1895-1974)에게 발송한 공식 서한에서 이 표현을 썼다. “성이 무너지는 날에는 반드시 엄중한 응징을 가하고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을 터이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압박을 못 이긴 푸쭤이는 중국공산당에 투항했다. 1949년 1월 31일 “인민해방군”은 베이징에 무혈 입성하는 장쾌한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1949년 2월 1일자 <<인민일보>> 1면에 바로 바로 이 공문이 통째로 실렸다.

<1949년 1월 31일 국민당 장군 푸쭤이(傅作義, 1895-1974)의 투항으로 베이징에 무혈 입성하는 중국 공산당군과 환영 인파. 사진/ 공공부분>

이후 1962년 10월 20일에서 11월 21일, 중국은 1개월에 걸쳐 중국과 인도의 히말라야 국경에서 무력 충돌을 벌였다. 이 사건을 약 한 달 앞둔 1962년 9월 22일 <<인민일보>>는 “이를 참는다면 무엇인들 못 참으랴!”는 제목의 사설에서 “우리는 인도 당국에 정식으로 통고하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표현을 썼다. 이 분쟁으로 중국 측에선 722명이 전사하고, 69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인도 측은 사상자가 4885명에 달했고, 3698명이 생포되는 수모를 겪었다.

중국의 관영매체인 신화사(新華社)는 1967년 7월 “소련에 대한 우리 외교부의 강력한 항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또 한 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표현을 썼다. 2년 후인 1969년 중·소는 우스리(Ussuri) 강의 전바오도(珍寶島)에서 무장 충돌했다. 양측 각기 1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당 규모의 군사 대결이었다.

1978년 12월 25일 <<인민일보>>는 “우리의 인내엔 한계가 있다”는 사설에서 베트남을 향해서 다시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표현을 썼다. “소련의 지지를 믿고 욕심을 내서 계속 망동을 부리면 반드시 응당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미리 앞서서 경고하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이후 1979년 2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1개월에 걸쳐 중국은 20만 병력을 동원해서 베트남을 침략했다. 양측이 발표한 사상자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서방 국가들은 중국 측 사상자를 6만3000명 정도로, 베트남 측 사상자는 6만2000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상 네 번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서 중국공산당 정부는 국민당, 인도, 소련, 베트남을 향해서 군사 행동을 감행하기 전 관례적으로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최후통첩을 날렸음을 알 수 있다.

<1979년 2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중국은 한 달 간에 걸쳐 베트남을 침공했다. 사진/공공부문>

중 관영 매체의 최후통첩 발언 남발... 말만 앞세우는 ‘전랑 외교’?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관영매체는 바로 그 최후통첩의 표현을 지나치게 자주 스스럼없이 막 쓰고 있다. 2013년 11월 센가쿠 열도 분쟁이 일자 <<인민일보>>는 군사과학원 부총장 뤄위안(羅援, 1950- )의 발언을 인용해서 일본을 향해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인 국경분쟁이 고조되던 2017년 8월 6일 <<중국신문사, China News Service>>는 여러 군부 인사들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또 바로 그 표현을 사용했다.

2018년 4월 6일 미·중 무역 분쟁이 고조되자 신화사는 미국을 향해 “중국의 핵심 이익과 전 지구의 공동 이익을 위해서 중국인은 견결히 투쟁할 수 있으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018년 12월 9일 캐나다 정부가 미국 정부과의 사법 조약에 따라 화웨이사 부회장 멍완저우(孟晚舟, 1972- )를 체포했을 때도 <<인민일보>>는 캐나다 정부를 향해서 “중국은 크게 떠벌리지 않는다”며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2019년 5월 29일 <<인민일보>>는 미·중 무역마찰이 고조될 때 “미국은 중국의 제압 능력을 낮춰 보지 말라!”며 다시금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며 미국을 정조준했다.

<중국의 전랑 외교를 풍자한 반체제 삽화가 왕리밍(王立銘, 1973-, 예명 Rebel Pepper)의 작품. 2013년 표현의 자유를 찾아 중국을 떠난 이래 그는 현재 미국에 체류하며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고 있다. 그림/rfa.org>

2020년 이후 중국의 관영매체는 대만에 이미 최소 네 차례 이상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며 군사 행동이 임박했음을 강력하게 경고해 왔다. 그 언어를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대만은 기본 이성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옳다 여기고 이판사판 막가면 비통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2020년 4월 10일, <<환구시보(環球時報)>>)

“차이잉원 당국은 더더욱 외세를 끼고 몸값을 높이면서 외부의 반중세력과 더욱 긴밀히 결탁하여 자꾸만 사태를 악화시키며 양안(兩岸)의 화평 및 대만해협의 안정을 위해하고 있다. 우리는 정보와 치안 부문에서 대만의 독립을 지키려는 완고한 분자들에게 불을 갖고 놀면 스스로를 태우는 죽음의 길밖에 없다고 정식으로 경고한다.······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2020년 10월 15일, <<인민일보>>)

“대륙에선 유관한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한줌 밖에 되지 않는 ‘대독(대만 독립)’ 분자들이 대만 민중의 이익과 복지를 살피지 않은 채로 ‘대독’이라는 위험한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오직 양안 관계의 동요를 가중시키며 대만을 위험한 지경으로 몰고 가서 대만 수많은 동포들에 재난을 몰고 올 뿐이다. 대륙은 섬 안에서 ‘헌법을 고쳐서 독립을 꾀하려는(守憲謀獨)’ 그 어떤 형식의 분열적 행동에도 견결히 반대하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서 이를 제압할 것이니 말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2021년 4월 28일, 국무원 대만 사무 판공실 신문국 국장 마샤오광[馬曉光, 1955- ]의 발언)

이렇듯 중국의 관료 및 언론인들은 덩샤오핑 시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신중함을 버리고 경쟁적으로 퇴로 없는 막말과 폭언의 릴레이를 펼치고 있다. 1949년에서 1978년 사이 중국 관영 매체가 불과 4 차례에 걸쳐서 “물위언지불예”를 선언했고, 4차례 다 군사행동으로 그 경고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반면 시진핑 정부 출범 이후 2013년부터 현재까지 틈만 나면 중국의 관영매체는 말로만 으름장을 놓고 있을 뿐이다. 시진핑 정부가 노리는 “전랑(戰狼) 외교”는 결국 말의 성찬일 뿐인가?

펠로시와 차이잉원 “미국과 대만의 연대는 일인지배에 맞서는 민주주의 연대”

펠로시와 차이잉원의 연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해 말 2021년 11/12월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지에 실린 차이잉원의 기고문 “대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재독할 필요가 있다.

중국공산당 100주년을 맞아 시진핑은 “중국몽”을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 정의했다. 시진핑은 줄곧 중국이 대만을 흡수해 통일해야 함을 강조해 왔다. 이에 대해서 차이잉원은 “대만이 무너진다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민주주의의 동맹 체제에 파멸적 결과가 올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그는 “2차 대전 이래 국제질서를 규정해 온 자유민주주의적 질서에 도전하는 더욱 단호하고 자신감 넘치는 권위주의의 흥기”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을 전 세계 민주주의의 공적으로 지목한 셈이다.

차이잉원은 오늘날 국제 정세를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투쟁이라 해석한다. 같은 맥락에서 펠로시는 국제 정세를 “민주주의와 일인지배의 투쟁”이라 단정하고, “미국과 대만의 연대”는 일인지배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연대임을 분명히 했다.

<2020년 1월 선거 결과 압승하여 재집권에 성공한 후 활짝 웃고 있는 대만의 총통 차이잉원의 모습. 그 왼쪽 부총통 라이칭더(賴清德, 1959- )는 대만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는 민진당의 정치인이다. 사진/ AP: Chiang Ying-ying>

펠로시와 차이잉원이 손을 잡고 이중창으로 일인지배에 대항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연대를 노래 부르는데, 중국이 과연 어떤 군사 도발을 할 수가 있을까? 오늘날 2300만 대만의 국민들이 선양하는 가치는 자유, 민주, 인권, 평등 등 인류적 보편가치이다. 반면 14억 인구의 “중국은 하나”이므로 대만을 흡수해서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자유와 인권과 번영을 누리는 민주주의의 대만이 왜 일인지배의 중국에 흡수되어야 하는가? 이 본질적 질문에 대한 시진핑의 대답은 고작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밖에는 없다.

중국은 현재 대만을 둘러싸고 신경질적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 사태의 엄중함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지난 10년간 중국 전랑들의 행태를 되짚어 보면, 대만을 향해 “말로 알리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중국의 “최후통첩”은 엄포성 블러핑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