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거의 밥을 지어 먹지 않는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샐러드를 사 와서 먹을 때도 있고,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기도 하고, 빵이나 과자로 대충 때우는 경우도 잦다. 물론 근처 식당에도 자주 간다. 프리랜서니까 정해진 식사 시간이 없어서, 배가 고프면 그때 집을 나선다. 점심을 밖에서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저녁 음식을 포장해 오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을 피해 음식점을 찾았다. 순댓국 집이든 파스타 가게든 오후 3시쯤 들어가면 한가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시간대는 브레이크 타임이라며 문을 열지 않는 가게들이 생겼다. 지금 우리 집 근처 식당 중에 오후 3시부터 오후 5시까지 손님을 들이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음식점들이 저녁 메뉴 준비를 더 철저히 하려고 쉬는 시간을 갖나 보다, 한국 요식 업계가 드디어 박리다매에서 고급화로 전략을 바꾸나 보지, 하고 멋대로 추측했다. 그게 아니라 자영업자들이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 몸부림친 결과임을 나중에 알게 됐다. 많은 식당들이 주방에서 마지막 주문을 받는 마감 시간도 앞당겼다.
그 즈음부터 바뀐 식당 풍경이 한 가지 더 있다. 상당수 매장에서 한창 붐비는 시간대면 3분이 멀다 하고 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딩동, 배달의 민족, 주문~. 딩동, 배달의 민족, 주문~. 쿠팡 이츠, 주문~. 요기요 주문, 요기요~. 너무 경쾌해서 그만큼 부자연스러운 빅브러더, 아니 ‘빅시스터’들의 목소리.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는 나도 저 알림 소리에 은근히 마음이 급박해지는데,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들 기분은 어떨까 싶다. 그래도 사장들은 저 목소리를 반길까. 가끔 나는 저 ‘주문~’ 소리가 날 때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다들 하도 바쁜 나머지, 어떤 표정을 지을 여유조차 없는 듯하다.
며칠 전에는 점심에 토스트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도시락을 포장해 왔다. 토스트 가게와 도시락 가게의 점심시간 모습이 복사라도 한 것처럼 똑같았다. 고물가 시대에 비교적 저렴한 메뉴이다 보니 두 매장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배달 앱의 주문 알림 소리도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검은 헬멧을 쓴 배달 기사들이 수시로 들어왔다 나갔다.
두 매장 모두 일하는 사람은 두 명이었는데, 둘 다 주방에서 일했다.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쪽은 사장인 듯했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은 따로 없고, 매장 입구에 설치된 키오스크에서 손님들이 직접 주문한 뒤 음식도 직접 받아가는 방식이었다. 주방에 있는 이들은 엄청난 속도로 손을 움직였다. 아무리 봐도 세 명이 해야 할 일을 두 명이 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음식을 기다렸다. 토스트 가게에서 한 중년 여성이 주방 앞으로 가서 사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요, 이 앞 도로에 잠깐 차를 대도 되나요? 고개를 든 사장은 멍한 표정이었다. 도로라든가 차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앞치마를 두른 사장은 한참 그런 얼굴로 서 있었다.
도시락 가게에서도 어느 젊은 여성이 망설이다 주방 앞으로 걸어가 물었다. 저기, 302번 아직 멀었나요?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이번에도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역시 잠시 한국어를 잊은 듯했다. 딩동, 배달의 민족, 주문~. 사장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 그거… 금방 나옵니다. 죄송합니다. 딩동, 배달의 민족, 주문~.
그날 포장한 도시락을 들고 집에 돌아가며 나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채플린이 연기한 이름 없는 주인공은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춰 쉼 없이 나사를 죈다. 그러다 재채기를 한 번 했을 뿐인데 그 속도를 놓치고 만다. 주인공은 결국 나사를 죄며 기계 장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모던 타임스’가 나온 지 80년이 넘었는데 어떤 일터의 풍경이 그대로라는 사실이 섬뜩했다. 도시락을 든 채 생각했다. 이게 한계라고, 사람이 이보다 더 바빠질 수는 없다고. 이대로 가다간 사람이 쓰러지거나 사고가 난다고. 사람이 너무 바빠지면 현재를 살피지도 미래를 대비하지도 못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 전체가 그 단계에 이른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