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47회>
여론조사는 가치 중립적인 과학인가...여론조작은 독재의 수법
2022년 3월 10일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을 멀리 벗어났다. 그 차이가 크게는 7~8%로 오차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역대 대선 막판 여론조사가 이토록 엇나간 전례가 없다. 막판 일주일 “깜깜이 기간” 조사에 따른 대형 기관의 예측도 완전히 빗나갔다.
우리는 과연 여론조사를 신뢰할 수 있나? 여론조사가 과연 가치중립적인 과학인가? 여론조사가 혹시 여론조작의 매체는 아닌가?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그러한 질문을 아니 할 수 없다. 일부의 생각을 다수 여론으로, 전체 “국민의 의지(the people’s will)”로 바꿔치는 여론조작의 야바위 놀음은 판에 박힌 독재의 수법이기 때문이다.
여론만 조작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합법을 가장한 권력집단의 다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가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폭민주의(mobocracy)로 전락한다. 대권 후보 단일화, 장관후보 임면(任免), 대통령 탄핵, 심지어는 외교안보, 에너지 등 백년대계의 국가 정책까지 여론조사를 내세운 선정적 여론몰이가 판치는 나라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자연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 국가의 여론조사, 과연 믿을 수 있나?”
중국민의 정부 신뢰도 91% 세계 최고...프랑스보다 2배 이상 높아
중국공산당에 대한 중국 인민의 지지도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은 올바른 대(對)중국 정책을 세울 수가 있다. 중국의 여론조사가 세계적 관심을 끄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언론의 자유도, 지식인의 비판도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 일당독재의 중국에서 여론조사가 과연 정확할 수 있냐는 점이다. 민주 국가의 여론조사도 의심을 받는데, 공산국가의 여론조사를 신뢰할 근거는 없다.
일례로 최근 스태티스타(Statista) 연구단에서 발표한 조사를 보면, 2021년 중국 인민의 정부 신뢰도는 91%로 단연 세계 최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신뢰도가 높은 스위스보다 7-8% 높은 수준이다. 호주, 캐나다, 독일보다는 30% 이상 높고, 40%대에 머무는 이스라엘, 한국, 프랑스, 터키 보다는 2배 이상이나 높다.
물론 이러한 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신뢰하는 지식인은 없다. 독재정권의 여론조사는 언제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왜곡되고 과장되고 조작되기 때문이다. 독재 치하의 인민들은 “응답 편향(response bias)”을 보일 수밖에 없다. 과거 공산권의 독재정권은 국가주도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조사 결과를 이용해서 독재 강화의 선전전을 펼쳤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일반 민중의 여론을 가늠하기 위해선 다양한 기법의 특수한 방법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하버드대 애쉬 센터 조사 “중국공산당, 높은 체제 유지 능력 보여”
하버드 대학 애쉬 센터(Harvard’s Ash Center for Democratic Innovation)에서는 2003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중국 각층의 인민 3만1000명과 심층적인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조사는 중앙, 성(省), 현(縣), 향촌 네 단계 정부에 대한 인민의 만족도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중앙 정부에 대한 인민의 만족도는 최저 80.5%(2005년)에서 최고 95.9%(2009)를 보였다. 성급 정부에 대한 만족도는 최저 75%(2003년)에서 최대 89.2%(2009년)의 분포였다. 현급 정부에 대한 만족도는 최저 52%(2003년)에서 최고 74.8%(2007년)였다. 향촌 단위 정부에 대한 긍정평가는 최저 43.6% (2003년)에서 최고 70.2% (2016년)였다. 2003년에서 2016년까지 13년에 걸쳐 중앙에서 향촌까지 네 단계 정부에 대한 중국 인민의 만족도가 모두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가 보인다.
지방 공무원의 태도에 대한 평가 여론 추이를 보면, “냉담하고 거만하다(aloof and conceited)”고 생각하는 여론은 꾸준히 40%대를 보인 반면, “친절하다(kind)”는 대답이 39.1%(2003년)에서 74.1%(2016년)로 급증했고, “자신들의 이득만 챙긴다”는 대답은 49.8%(2003)에서 37.5%(2016년)로 확연히 줄었다. 정부 기관을 통해서 “민원을 해결했다”고 대답한 비율도 19.3%에서 55.9%까지 치솟았고, “결과에 만족한다”는 비율도 31.7(2003년)에서 75,1%(2016년)로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이 조사 결과에 근거해서 애쉬 센터는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높은 탄력성(resilience)을 보인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여기서 탄력성이란 수많은 인권유린과 정치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중국공산당이 발휘하는 체제 유지의 능력을 이른다. 인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소수민족을 탄압함에도 중국정부에 대한 인민의 신뢰도가 상승세를 보인다면, 여하튼 중국공산당은 통치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조사만으로는 중국의 여론 지형과 추이를 제대로 파악할 순 없다. 미국의 학계에는 판이하게 다른 조사도 발표되어 있다.
떠오르는 중국의 중산층, 비판적 여론 이끌어
2012년 이래 최근까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판(Jennifer Pan) 교수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이칭 쉬(Yiqing Xu) 교수는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새로운 분석 방법으로 중국의 실제 여론 동향을 질적으로 탐구해 왔다. 이들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의 공식 노선에 찬동하지 않는 비판 여론의 기류가 감지된다. 어쩌면 중국에 “자유 성향의 침묵하는 다수(a liberal silent majority)”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특히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높은 계층일수록 정치적으로 자유적(liberal) 성향이며, 시장 친화적이고, 개방적이다. 시진핑 정부는 과격한 비자유적, 국가주의적, 민족지상주의의 입장을 표명해 왔다. 개방적 중산층이 권위적 정부와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언젠가 중국에 모종의 큰 정치적 변화가 닥친다면, 바로 그 개방적 중산층이 변화의 물꼬를 틀 주체라 예측된다.
권위주의 국가의 여론을 파악하기 위해선 새로운 방법이 요구된다. 정부에 대한 승인 여부를 묻는 일반적 지지율 조사로는 인민의 의식 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 판과 쉬는 “현 정권을 지지하느냐?”와 같은 번연한 질문 대신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인민의 선호도를 분석하는 방법을 쓴다. 2018년과 2019년 조사에서 다수의 응답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안보, 외교 등 각 방면에서 중국공산당의 기본 정책에 반대를 표명했다.
구체적으로 1) “정부가 자녀 출산에 간섭할 수 없으며, 산아 수 제한은 부당하다”는 견해에 대해서 응답자의 46.9-48%가 동의했고, 22.5-22.9%만 반대했다. 2) “정부 정책에 대해서 인민의 찬반 의사 표현을 정부가 허락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58.1%가 찬성한 반면 반대는 불과 13% 정도였다. 3) “민간 자본에 의한 사립 병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47.3-53.3%가 찬성을 표명했고, 반대자는 18.5-24.2%에 불과했다. 4) “군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정부는 외교적·경제적 수단으로 주권과 영토를 보전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73.5-76.5%가 찬성한 반면, 반대자는 5-6%의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상 네 가지 조사 결과만 보아도 현재 중국에는 이미 상당히 리버럴한 중산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정치적 자유를 옹호하고, 경제적 시장주의를 선호하며, 중공중앙의 민족주의 외교노선에 반대한다. 다수 중국인들은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있지만, 그 애국심이 표출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산이 많고 교육 수준이 높은 계층일수록 정부의 호전적 외교 정책에 반대한다. 엘리트일수록 정부 시책에 대한 맹종을 거부한다는 얘기다.
2012, 2014, 2018, 2019년 발표된 판과 쉬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리버럴한 견해를 갖는 사람들은 자유 시장을 선호하고, 중공중앙의 외교적 쇼비니즘과 군사주의에 반대한다. 반면 권위주의적 정치 제도를 선호하는 부류는 경제적 간섭주의와 중국공산당의 군사·외교적 강경책을 지지한다. 기존의 많은 연구자들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강력한 사상 통제와 이념 교육 때문에 인민 스스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일관된 반대여론을 형성하기 어렵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반해 판과 쉬의 연구는 중국의 중산층이 이미 국가 정책에 관한 조직적이고도 일관된 독자적 여론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 여론 동향의 파악, 올바른 대(對)중국 정책의 핵심
그 어느 시대, 그 어떤 나라, 그 어떤 체제든 가변적인 다수 여론만으로 국가의 대계를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국정의 성공은 다수 여론이 아니라 최고의 전문 지식과 효율적 행정력이 결합될 때에만 이뤄질 있다. 국민 여론이 반드시 좋은 정책을 지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다수 견해가 합리적이고 정당하다는 보장도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좋은 통치가 실현되기 위해선, 좋은 정책을 개발하는 만큼 그 정책의 당위를 국민 앞에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버드 대학 애쉬 센터의 주장처럼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탄력적이라면, 중공 중앙은 과연 어떤 통치술로 그 탄력성을 유지하는가? 중국공산당 정부는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신뢰도를 자랑할 수 있는가? 중국공산당이 주장하듯 중국 정부가 좋은 정책으로 인민의 복리를 증진했기 때문인가? 강력한 이념 교육과 인민의 의식을 정치적으로 지배하기 때문인가? 중앙선전부의 교묘한 선전선동 기법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왜곡하기 때문일까? 무관용의 공포 정치로 반대 여론을 짓밟아온 덕분인가?
구미 학자들의 고전적인 “정권 교체(regime change)” 이론에 따르면, 국가 폭력, 권력 집중, 인(人)의 지배 등 권력 집단의 부패와 전횡이 만연하는 권위주의 체제는 불안정하다. 정권의 불안정은 통치의 정당성을 훼손하며, 급기야 정부의 정통성마저 파괴한다. 정당성을 상실한 정권, 정통성을 상실한 정부는 다수 인민의 저항에 부딪혀 결국 붕괴될 수밖에 없다. 구소련의 붕괴, 동구 공산정권의 해체, 한국, 대만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시민혁명 등의 사례가 고전적인 “정권 교체” 이론을 뒷받침한다.
중국은 “정권 교체”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최대 규모의 예외적 국가이다. 중국은 대약진 운동으로 최대 4천 5백만의 인명을 굶겨 죽이고, 문화대혁명으로 1억 명 이상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톈안먼 대학살을 자행했음에도 여전히 90% 이상의 국민적 신뢰도를 자랑하고 있다. 만약 진정 그러한 조사가 정확하다면, 중국공산당의 선전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 체제는 그 어떤 체제보다 건강하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럴 수는 없을 듯하다. 중국 인민의 90% 이상이 정부를 신뢰한다면, 왜 중국공산당 정부는 공민의 기본권을 그토록 제약해야만 하는가? 공민의 기본권이 제약당하고 있음에도 중국 인민의 90%가 중국공산당을 신뢰할 수 있는가? 판엔 쉬의 조사는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와는 달리 중국 내부에 생겨난 두터운 중산층이 비판적 여론집단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모든 나라가 대(對)중국 정책을 세울 때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