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양김(兩金)이 있었다면 도사계에는 양박(兩朴)이 있었다. 박재완(1903~1992)과 박제현(1935~2001)이다. 테니스에 비유한다면 박재완은 정석 플레이를 하는 페더러 스타일이었고, 박제현은 많이 뛰어다니면서 드라이브를 잘 거는 나달 캐릭터였다. 12.12 사태가 나고 이틀이나 지났을까. 신군부는 대전에 살고 있었던 박재완을 헬기를 태워서 서울로 이송하였다. 이유는 자신들의 팔자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 거사가 성공할 것인가?’였다.

사주를 보려면 만세력이 필요하였다. 급하게 헬기를 타고 오느라고 미처 만세력을 챙겨오지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이른 아침에 서울 비원 앞에 살고 있던 제자 유충엽(역문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 만세력 좀 준비해 놓게나!’ 조금 있다가 짚차를 탄 군인들이 와서 유충엽이 들고 있던 만세력을 낚아채 갔다. 12.12라는 총격전 직후에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주체들도 자신들의 앞날이 과연 어떻게 될지 근심걱정을 했던 것이다. 80년대 초반 대전의 변두리였던 둔산 지역이 개발되던 시점이었다. 박재완의 제자가 권유하였다. “선생님. 둔산의 땅을 좀 사놓으시죠? 돈이 됩니다” “아니네. 내 팔자는 돈이 없는 팔자라서 갑자기 돈이 생기면 화근이 될 뿐이야”. 아무리 본인이 무재팔자라고 해도 눈 앞에 큰 돈이 어른거리는데 이를 포기하기는 어렵다. 박재완의 명리학적 내공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었다.

함양군 서상면 출신의 박제현. 서상(西上)은 함양의 서쪽 위에 위치해서 서상면이다. 서상 위에는 육십령 고개가 있고, 육십령을 넘으면 전북 장수가 나온다. 육십령을 오고 가던 수많은 과객, 즉 풍수와 사주팔자 전문가들이 박도사 집을 들렀다. 도사가 나올 환경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전성기때 실력으로 삼성 이병철을 상대하면서 신입사원 면접을 보았고, 절정기를 약간 지날 무렵에 포철 박태준을 만나 헬기 타고 광양제철 터를 보러 다녔다. 김이 빠진 상태에서 한보 정태수의 자문을 해줬다.

90년대 중반 서상면의 덕운정사에서 필자는 박제현과 문답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 운세나 한번 봐 주십시오?” 뜬금 없이 이런 답변을 하였다. “벌이 창호지를 뚫고 방안에 들어와 나갈 구멍을 모르고 윙윙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구만.” 단순한 역술가인줄 알았더니만 당나라 신찬(神贊) 선사의 ‘空門不肯出(공문불긍출)’ 화두를 던지는게 아닌가! 박제현은 죽고 없지만 그가 던진 화두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