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 단풍들것네”

장관에 골붉은 감닢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들것네”

-김영랑(1903~1950)


참 깜직하고 귀엽고 아련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이런 시 못 쓴다. 보통의 서정시는 이미지에서 심상을 전개하는데 “오-매 단풍들것네”는 정겨운 사투리 한 문장으로 시작해 시 한편을 이루었다. 같은 말이 세 번 반복되었는데도 지루하지 않다. ‘장광’은 ‘장독대’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이다. 5행의 ‘기둘리리’는 ‘기다리리’를 뜻한다. ‘오-매’를 표준어인 ‘어머’라고 바꾸면 재미가 없어진다.

장독대에 날라온 ‘골붉은’(잎사귀의 골짜기가 붉게 물든) 감나무 잎을 보고 놀란 누이. 감잎을 보고 놀라는 순수한 마음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아파트와 빌라로 이사하며 장독대를 잃어버리고, ‘감닢’을 잃어버리고, 장독대에 어른거리는 가을의 정취를 잃어버리고, 형제 자매의 정을 잃어버렸다. “장독대에 가서 된장 한 국자 퍼 와라. (된장 푼 뒤에) 꼭꼭 눌러놔야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을 잃고 처음 맞는 추석. 돌아갈 고향이 있는 모든 이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