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0회>
최고 실력자의 지시에 따라 정적 겨냥해 전쟁 치르듯 전개된 정치운동
세계는 이미 전(全) 지구적 네트워크로 촘촘히 얽히고설켜 반대편 작은 나라 외딴 지방 하나도 따로 떼놓을 수 없는 유기체적 시스템을 이루고 돌아간다. 주체의 기치 아래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쇄국의 동토(凍土) 북한조차도 틈만 나면 벼랑 끝에서 핵실험을 감행하며 존재를 과시한다. 하물며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으로 무역 입국에 성공하여 세계 10대 부국이 된 대한민국임에랴.
2021년 현재 전 세계 193개국에 732만여 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한반도에 국한된 반도국이 아니라 전 세계와 연결된 최첨단의 네트워크 국가다. 한국의 문화와 토양만 따지는 협소하고 고루한 “민족주의”의 관점으론 한국의 역사 현실을 파악할 수조차 없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 한국이 세계이고, 세계가 한국이다.
우리가 한국 정치판을 관찰하고 분석할 때, 중국 정치판을 동시적으로 늘 살펴야 할 이유도 자명하다. 이미 중국을 떼놓고 한국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 없는 중국도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문재인 전 정권의 “적폐 청산” 캠페인과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운동이 우리의 뇌리에서 교차(交叉)될 수밖에 없다. 양자 모두 최고 실력자의 특별 지시에 따라 정적을 겨냥해서 전국적으로 전쟁 치르듯 일사불란하게 전개됐던 초법적 정치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단히 무례한 짓” 감사원 조사 거부... ‘촛불 군중’ 향해 SOS 친 셈
며칠 전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청을 거부하면서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 했다. 민주당은 정치보복이라며 “국민이 촛불 들길 원하냐?”고 했다. 전직 대통령이 조여오는 법망을 벗어나려 “촛불 군중”을 향해 SOS를 친 셈이다. 여론을 제 편으로 끌어당겨서 법망을 피해 가려는 대중 동원의 전술인데, 정치도의나 법리상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이미 헌정사 거의 모든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법의 심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확률상 불리함에도 적어도 일곱 가지 이유에서 문 전 대통령으로선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다. 1) 퇴임 직전까지 그가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했다는 점, 2) 현재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저조하다는 점, 3) 한국 정치에선 여론이 법치를 허문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점, 4) 국내 언론 환경이 불리하지 않다는 점, 5) “촛불 군중”은 대통령 탄핵에도 성공한 강력한 세력이라는 점, 6) “진보 진영”은 조직력, 기획력, 행동력을 갖춘 프로 운동가들이 이끌고 있다는 점, 7) 2년 후 총선, 5년 후 대선을 앞두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자칫 야권의 집결을 부르는 여권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미 “무례한 짓”이라는 한 마디로 지지층을 향해 총궐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듯하다. 전임 대통령의 부정·비리에 관한 형사사법의 문제를 자기편을 공격하는 상대편의 진영 전쟁으로 뒤바꾸는 정치적 마술이다. 그러한 정치적 마술은 한 명의 머리가 아니라 대개 진영 수뇌부 전체의 치열한 토론에서 나온다.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그들은 “촛불 군중”을 불러 모으는 기민한 대중 노선으로 법치를 가로막고 허물어 왔다. 지지층을 규합하는 그들의 정치술은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 일찍이 마오쩌둥은 말했다. “물고기가 바다에서 헤엄치듯 게릴라는 인민 속을 파고들어야 한다.”
과연 “촛불 군중”을 파고드는 문 전 대통령의 게릴라 전술은 성공할 수 있을까? 어제의 “촛불 군중”은 과연 마오쩌둥을 보위하는 홍위병처럼 “우리 이니”의 구속을 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연출할 수 있을까? 군중을 파고드는 게릴라 전술이 성공한다면, 그는 모든 의혹을 모두 불식하고, 다음 두 선거에 승리하여 정권을 재탈환하는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꿀 수도 있으리라. 실패한다면, 그는 앞선 두 명의 전직 대통령처럼 철창 안에 갇히는 신세를 면할 수 없으리라. 현재로선 작금의 진영 대립이 어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권력 투쟁이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부른다면, 출구는 단 하나, 법의 정신을 등불 삼아 엄정한 수사, 공정한 재판, 명석한 판결로 법치를 완성하는 길밖에 없다. 머리 맞대고 꼼수를 짜내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일 뿐, 권력 투쟁의 출구전략으로 사법 정의의 확립보다 더 좋은 묘수는 있을 수 없다.
정부 기관 동원해 먼지털이식 조사...친정부 매체가 대대적 선전·선동
일전에 한국의 한 정치학자가 물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이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운동을 모방한 혐의는 없는가? 정적 제거를 위해 국가 권력을 총동원한 점에서 매우 유사해 보인다.”
시진핑 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부패 청산의 기치 아래 정적을 제거하고, 관행적 부패를 도려내고, 산업계 거물 및 금융계 큰손을 압박해서 길들이고, 정치적 반대 여론을 탄압하고, 미국에 맞서는 공격적 대외전략을 펼치는 한편, 최첨단 디지털 장비를 동원해서 대민 지배력을 강화했다.
문 정권의 적폐 청산은 지난 정권 대통령. 재벌 총수, 청와대 핵심 인물들을 구속해서 중형에 처했다는 점에서 분명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과 유사해 보인다. 정부 기관을 총동원해서 표적이 된 인물들에 대한 먼지털이 조사를 벌였다는 점, 친정부 매체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선전·선동에 나섰다는 점, 정적의 제거를 지지 세력을 규합하는 여론전으로 이끌고 가는 마오쩌둥식 게릴라 전술도 꼭 빼닮았다.
다만 양자 사이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시 정권의 반부패 운동은 과거 1950-60년대 마오쩌둥 시대의 반부패 투쟁과 달리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집회로 전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중앙정부에 지휘에 따르는 관계의 자정(自淨) 운동처럼 전개되었다. 중앙기율검사위를 통해 위로부터 추진된 중국공산당 내부의 숙정이었다는 의미다.
반면 문재인 정권의 “적폐 청산”은 탄핵 정국 이후 “촛불 군중”의 강력한 지지 기반 위에서 전개되었다. 그 점에서 문 정권의 “적폐 청산”은 그 방법과 동력이 문혁 시절 마오쩌둥의 대중 노선과 유사해 보인다. 다만 한국의 정치 상황은 중국과는 비할 바 없이 다원화, 다각화, 다양화되어 있다. 중국과 달리 한국 정치는 좌·우파 양대 세력 사이의 진영 대결로 전개된다. 탄핵 정국 이후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된 국민이 몇 달 동안 맞불집회를 이어가지 않았나.
정권 재창출, 문 정권은 실패하고 시 정권은 성공한 이유는?
그 정치학자가 또 물었다.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을 모방했다면, 문재인 정권은 왜 시진핑 정권과는 달리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고 보는가?”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중국에서는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운동에 대한 공고한 반대 여론이 형성될 수가 없다. 불만 세력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불만을 정부 비판을 넘어 정치 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반대 세력이 형성될 수 없다. 반면 한국은 다양한 언론매체가 공존하며 날마다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그 때문에 정부는 늘 감시 상태에 놓여 있다. 중국에서는 정치 엘리트 사이의 파벌싸움과 권력 투쟁이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권력 교체, 나아가 정권 교체의 방법은 근원적으로 차단돼 있다.
중국과는 달리 한국은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문 정권이 적폐의 칼날을 제아무리 휘둘러도 국민 다수의 민심을 잃는 순간 권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문 정권이 시 정권과 달리 권력 강화에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거듭되는 실정으로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산당 영도 체제를 절대화한 일당독재의 레닌주의 국가이다. 시진핑 정권은 정적과의 투쟁에서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권력 독점을 이룰 수 있었다. 헌법 위에 당이 있고, 당의 구심점은 다름 아닌 시진핑 일인이다. 반면 한국은 이미 권력자가 법을 넘어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법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문 정권이 적폐 청산의 구호를 외치다가 스스로 적폐의 주체가 되었을 때, 검찰총장이 맨 앞에 서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며 정권에 맞섰고, 바로 그 경력을 발판 삼아 대권을 잡을 수 있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선 ‘팬덤 정치’ 극심해도 권력 독점 어려워
문 정권은 적폐 청산의 깃발을 들고 “보수 궤멸”과 “30년 집권”까지 운운하는 반민주적 교만을 떨었음에도 권력 기반을 독점할 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법적·제도적 시스템이 이미 중국식 일당독재나 인민민주독재를 용납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정 정치인을 옹위하는 팬덤 정치의 광신이 아무리 극심해도 일부 세력에 국한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들불처럼 거세게 일었던 지난 정권의 “적폐 청산”은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법의 공정성을 허물고 “내로남불”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 5년 만에 스스로 적폐의 온상이 된 꼴이다. “적폐 청산”의 기세가 날카로웠지만, 문 정권은 시 정권처럼 권력의 공고화도 이룰 수 없었다. 여론이 바뀌면 권력이 교체되는 선거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기본 제도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 정권은 시 정권의 반부패 투쟁을 답습해서 권력을 독점하려 했지만, 한국 헌정사의 전통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적폐 청산”은 정적 숙청의 정치쇼로 그쳤을 뿐, 법치 확립의 새로운 전기가 되지 못했다. 지난 정권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현 정권은 비리를 파헤치는 현 정권의 권력 기구가 위헌적, 탈법적, 관행적, 자의적 권력의 오·남용을 범하지 않는지 투명하게 감시하고 철저하게 통제해야만 한다. 정부의 자기반성적 규율과 기강이 확립되지 않으면, 적폐 청산의 시도는 적폐의 중첩 구조를 낳고 실패한다.
거짓 선동가는 제 편의 갖은 부패는 죄다 덮어둔 채 정적들만 잡기 위해 법의 칼날을 망나니 칼춤 추듯 휘둘러 댄다. 참된 개혁가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노련한 집도의처럼 신중하고 정밀하게 곪고 썩은 권력의 환부에 법의 메스를 가한다.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현 정권의 권력자들은 비스마르크의 냉소를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 누구도 역사에서 배우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