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뉴욕 2022′가 지난주 6일 발표됐다. 코로나로 중단됐다 2년 만에 재개된 이번 미쉐린 가이드 뉴욕판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식당은 ‘일레븐 매디슨 파크(Eleven Madison Park·이하 EMP)’였다. EMP는 미쉐린 가이드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았다. EMP는 2011년 별 3개를 획득한 이래 11년간 유지해왔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요리사·식당 주인·음식평론가 등 외식업계 관계자 투표로 선정하는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1위를 여러번 차지했다.

새 식당이 혜성처럼 나타난 것도 아니고, 뉴욕을 넘어 세계 최고 중 하나로 꼽히는 레스토랑이 3스타를 유지한 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 EMP가 유독 화제가 된 건, 이 식당이 지난해 비건(vegan·채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EMP는 세계 최초의 미쉐린 3스타 비건 레스토랑이 됐다.

EMP 오너셰프(총주방장 겸 주인) 대니얼 흄(Humm)은 코로나로 16개월간 식당을 닫았다가 지난해 6월 다시 열면서 “동물성 식재료는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새끼 돼지 훈제 구이, 라벤더 꿀을 발라 구운 오리, 부드럽게 찐 랍스터, 메이플 시럽에 재운 푸아그라(거위간) 등 대표 요리까지 버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식당에 남은 동물성 식재료는 식후 제공되는 커피에 딸려 나오는 우유와 꿀밖에 없다”고 썼다.

흄 총주방장은 토마토, 아보카도, 두부, 옥수수, 쌀, 버섯, 호박 등 식물성 재료만으로 개발한 새 요리들로 메뉴를 짰다. 고기 한 점 없이 ‘풀때기’로만 구성된 11코스 테이스팅 메뉴의 가격은 365달러(약 52만원). 육류가 포함된 과거 EMP의 테이스팅 메뉴보다 비싸다.

EMP의 비건 메뉴에 분노에 가까운 불만과 비난이 쏟아졌다. 손님들은 “이걸 먹느니 맛있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50달러에 레어로 구워 먹겠다”고 불평했고, 뉴욕타임스는 “흄 총주방장이 채소로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며 혹평했다. 영국 런던 클래리지 호텔은 “흄 총주방장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비건은)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아니다”라며 그동안 그에게 맡겨왔던 호텔 레스토랑 운영 계약을 종료했다.

고기는 세계 어떤 나라나 문화에서건 식문화의 최상위층을 차지해왔다. 서양·유럽 문화권에서는 특히 그렇다. 14세기 프랑스 왕실 요리사 기욤 티렐(Tirel)이 쓴 유명한 요리책이 있다. 이 요리책은 제목이 ‘비앙디에(Le Viandier)’이다. 프랑스어로 고기를 뜻하는 비앙드(viande)에서 유래했다고 추측된다. 이처럼 서양에서 고기는 미식 자체를 의미하는 대명사였다.

미쉐린 스타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고기를 메뉴에서 뺀다는 건 요리사로서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요리사들은 “미쉐린 스타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영광”이라 말한다. 최고 영예인 별 셋은 따기도 어렵지만 유지는 더 힘들다. 프랑스 천재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는 자신의 식당이 별 3개에서 2개로 강등될 거란 소문에 괴로워하다 자살했다. 금전적 위험 부담도 크다. 한때 32개의 별을 획득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별을 움켜쥔 요리사’로 유명했던 프랑스 요리사 고(故) 조엘 로뷔숑(Robuchon)은 “미쉐린 스타 1개를 받으면 매출이 20% 상승하고, 2개면 40%, 3개면 100% 늘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흄 총주방장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기존 동물성 메뉴를 포기해도 괜찮을까’ 걱정했다”고 고백했을 만큼 고민했지만 결국 비건을 선택한 이유는 지구 환경에 대한 요리사로서의 책임 의식이다. 소고기를 중심으로 한 육류 생산을 늘리기 위해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열대우림이 소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되고, 이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미국·호주 목장 지대가 급속히 사막화되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다행히 비건 변신 이후로도 EMP는 예약이 가득 찼고, 이번에 미쉐린 3스타 유지에 성공하며 미식 업계로부터도 인정받은 셈이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 그웬달 풀레넥은 “EMP의 3스타 유지는 젊은 요리사들에게 지속 가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미식 업계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올 촉매가 될 것”이라 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이 오늘(13일) 발표된다. 서울에서는 어떤 식당이 어떤 음식으로 주목받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