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1회>
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권력의 사유화와 인격 지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권력 사유화(privatization of power)에 있다. 권력 사유화란 법체제와 정치 제도를 허물고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권력자의 전횡과 농단을 의미한다. 권력 사유화가 극단화되면 인격적 지배(personalist rule)가 나타난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 구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북한의 김일성, 김정은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단순한 독재자에 머물지 않고 인격신이 되어 날마다 전 인민의 눈동자에 강림했다. 전체주의 정권의 인격신은 과연 어떻게 다수 인민을 그토록 철저하게 길들이고 지배할 수 있을까? 노예근성은 어두운 인간 본성의 발현인가? 아니라면, 폭력이 인간 본성을 뒤틀어서 정신적 불구로 만든 탓일까?
1990년대 구소련이 해체되고 동구의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전체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가 역사의 필연적 과정처럼 확실해 보였다. 1990년대 초 구소련의 노동자들이 마르크스와 레닌의 동상을 깨부수고 흙발로 그의 두부(頭部)를 짓밟는 사진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제도적 진화 과정으로서의 역사는 이미 종언을 고했다는 섣부른 예측이 세계 정치학계에서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데 어쩐 일인가.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우리는 다시금 전 세계 권위주의 정권에서 강력한 독재자에 의한 인격적 지배가 나타나는 음울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이 앞에서 인격 지배의 쌍두마차를 몰고 달린다. 그 뒤를 터키, 방글라데시, 폴란드, 헝가리, 에콰도르의 권력자들이 따라가고 있다. 미국 정치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1988년 모든 독재 정권의 23%만이 인격적 지배를 보였는데, 2016년엔 40%의 독재 정권이 강력한 일인 지배로 전락했다(“The New Dictators,” Foreign Affairs Sept. 26th, 2016).
집권 이후 권력의 공고화를 위해 정치의 제도화를 후퇴시킨 중국의 시진핑 정권은 종신 집권의 길을 열고 권력 사유화에 이미 성공한 형국이다. 아직 인격신의 반열에 오르진 않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시진핑의 권력은 후진타오, 장쩌민이 누렸던 권력보다 훨씬 강력해 보인다. 그는 진정 제2의 마오쩌둥이 되려 하는가?
제20차 중공 당 대회,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며칠 전 학부 시절 광활한 만주 벌판의 한 도시에서 만나 30년 가까이 오랜 친분을 쌓아온 한 중국인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30대 초반 중공에 입당한 그 친구는 현재 손꼽는 명문 대학 공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친구는 지난 2년 10여 개월 중국의 국경이 닫혀 서로 만날 수 없었지만, 아마도 내년쯤이면 예전처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전했다. 캐나다는 실질적으로 규제를 전면 풀고 90% 이상 생활이 정상화됐다고 하자 그는 “중국도 점차 느슨해질 텐데, 지금은 20대를 앞둔 시점이라서”라는 묘한 말을 했다.
여기서 “20대”란 바로 내일부터 (2022년 10월 16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되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 대표대회(줄여서 중공 당 대회)를 의미한다. “제로 코비드” 정책이 연임을 위한 시진핑 총서기의 정치 방역이라는 뜻인 듯했다. 내가 “알겠어, 하하(明白, 哈哈)”하고 문자를 치자 그는 “넌 중국을 좀 아는구나(你是懂中國的)”하고 날 치켜세워줬다. 중국 안팎의 이목이 온통 제2차 중공 당 대회에 쏠려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에피소드다.
중공 당 대회는 중앙위원회가 소집해서 5년마다 치러지는 중국공산당 최고 의결 회의이다. 제1차 당 대회는 1921년 7월 23일부터 8월 3일까지 비밀리에 개최되었다. 개회식은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거행됐지만, 7월 30일 회의를 염탐하는 수상한 사내를 발견하곤 급히 장소를 옮겨서 8월 3일 저장(浙江)성의 자싱(嘉興) 호숫가 선상(船上)에서 회의를 종료했다. 당시 전국의 당원 수는 고작 50명이었다. 그중 13명만 대표 자격으로 대회에 참석했다. 그 13명 대표 중 7인은 1949년 이전에 절명했고, 천궁보(陳公博, 1892-1946)와 장궈타오(張國燾, 1897-1979) 등은 이후 공산당을 버리고 국민당에 입당했다. 실로 미약한 출발이었으나 소련에서 파견한 코민테른 요원 두 명이 배석했고, 후난성 창사의 대표로 28세의 마오쩌둥이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그 후 1928년까지 6차례의 당 대회가 열렸지만, 제7차 당 대회는 1945년 4월에야 개최될 수 있었다. 국민당의 토벌 작전이 거세지면서 내전 상태에 돌입한 까닭이었다. 그 후 1956년, 1969년, 1973년 중공 중앙위는 필요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대회를 소집했다. 마오쩌둥이 별세한 이듬해 1977년 제11차 당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 후로 45년에 걸쳐 지금까지도 5년 주기로 당 대회가 열리고 있다.
1977년 이래 중공 당 대회는 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를 추대하고 옹립하는 중대한 절차이다. 101년 전 불과 50명으로 출범한 중국공산당은 현재 9천7백만 명(전체 인구의 6.9%)의 당원을 자랑한다. 명실공히 세계 최대규모의 정치조직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중국공산당의 우두머리가 중앙위원회 총서기다. 총서기는 통상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이 되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인민해방군”의 최고 통수권을 갖는다. 게다가 총서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 정치상협회의,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 등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위에 군림하면서 국가의 중대사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실로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다.
세계 최대 인구와 세계 제2위 경제 규모의 거대한 대륙 국가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결정되는 대회이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현재 제20차 당 대회에 쏠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러한 중국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의심과 우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캐나다,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세계 중심 국가들의 일반 여론이 이미 반중을 넘어 억중(抑中), 승중(勝中)으로 나아가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다음 주부터 열리는 제20차 당 대회는 과연 중국 안팎에서 과연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까?
중국 내부의 단속을 위한 국제적 도발
2018년 3월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3장 79조에 명기돼 있던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중앙위원회가 발의한 이 개정안 표결 결과는 99.8%의 찬성률을 보였다. 2,603명 중 2,598명이 찬성하고, 2명이 반대하고, 3명은 기권했다. 이로써 시진핑 총서기는 연임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종신 지배의 길을 텄다.
이후 전 세계 인터넷 매체들엔 시진핑 총서기를 시 황제라 조롱하는 패러디가 홍수를 이뤘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와 대만을 위협하는 중국은 현재 인류의 건전한 상식과 보편가치에 도전하는 깡패 국가(rogue state)로 전락하고 있다. 21세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독재자 일인 지배를 연출하는 상황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마오쩌둥을 닮으려는 시진핑의 퇴행적 행태를 질타하는 전 세계 지식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능력 본위의 중국식 집단 지도체제가 미국식 선거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이라 극구 칭송하던 중국 밖의 친중 지식인들도 이제는 입을 닫고 있다. 중국이 거대한 싱가포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섣부른 예측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일당독재의 중국 정치가 어느새 최고 영도자 1인의 인격적 지배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강 대 강”으로 치닫던 미·중 무역 갈등은 중국발 팬데믹과 맞물리면서 지금까지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외부의 비판엔 아랑곳없이 중공 중앙은 덩샤오핑이 약속한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원칙을 저버리고 홍콩의 자유를 짓밟는 극단적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진핑 정권은 “제로 코비드” 정책에 따라 전국 인민의 사생활을 통제하고 상하이, 충칭 등 인구가 거의 3천 만에 달하는 대도시를 수개월 간 봉쇄하는 극단적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대만을 향한 중국의 노골적인 군사 위협이 고조되자 지난 8월 중순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작전에 독일의 전투기 13대가 참여했다. 독일서 이륙한 전투기 13대는 호주, 싱가포르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한 후 보란 듯이 일본, 한국을 거쳐서 돌아가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방어망이 새로이 견고하게 직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국내외적 비상 상황을 뚫고서 시진핑 정권 제3기가 출범한다면, 정권 연장을 위해 대내외적 강경책을 구사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정치적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미 국가들과의 긴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구소련의 억압에 맞서 싸운 공로로 1975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카로프(Andrei Sakharov, 1921-1989)는 “자국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정권은 이웃 나라의 권리도 존경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독재국가의 대내적 정치 탄압이 국제적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푸틴은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냉전 시대의 이분법으로 서방 세계를 악으로 몰고 가고 있다. 푸틴은 자국 내 권력 강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진핑 정권의 국내적 인권유린과 정치범죄가 국제사회에 직접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세계는 잘 알고 있다. 과연 시진핑 정권 제3기는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까?
“시진핑 사상,” 과연 중국공산당 장전에 올라갈까?
일부 비판적인 인사들은 제20차 당 대회에서 이변이 일어나 시진핑이 실각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예측을 하기도 하지만, 현재로선 중국 안팎 대다수 언론은 시진핑의 연임이 성공하리라 전망하고 있다. 다수의 전망대로 시진핑 정권 제3기가 열린다면 과연 그는 어떤 논리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어떤 분위기에서 정권을 연장할까? 과연 “시진핑 사상”이 <<중국공산당 장전(章典)>> 총강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함께 나란히 등재될 수 있을까?
현재 <<중공 장전>> 둘째 문단은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세 가지 대표’ 중요한 사상, 과학발전관,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사상을 행동 지침으로 삼는다”로 되어 있다. 여기서 ‘세 가지 대표’ 중요한 사상이란 장쩌민이 천명한 기본원칙을, 과학발전관은 후진타오가 역설한 발전 전략을 의미하는데, 두 사람의 실명은 삽입되지 않았다.
“시진핑 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사상”은 시진핑의 이름자와 함께 사상이란 단어가 붙는다. 다만 이는 시진핑 개인의 사상이라기보다는 2012년에서 2022년까지 시진핑 집권기의 국정 의제에 가깝다. 만약 다음 주 제20차 당 대회에서 논의될 중공 장전 수정안에서 “시진핑 사상”이란 명시적 표현이 총강에 삽입된다면, 이는 시진핑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방증하는 증거가 된다. 런던 대학(SOAS)의 스티브 창(Steve Tsang) 교수는 “시진핑 사상”이 <<중공 장전>> 총강에 등재되는 순간, 그가 진정한 독재자로 등극하게 된다고 전망한다.
문제는 시진핑 사상이 과연 무엇이냐는 점이다. 모름지기 한 정치지도자의 사상이란 그의 모든 언행, 정책, 저술, 세계관과 가치관의 집약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지금껏 드러난 시진핑 사상의 구체적 내용을 열거하자면,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추구하는 중국 특유의 민족주의, 과거 중화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복고적 제국주의, 국내의 비판 여론을 탄압하고 공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동아시아 맹주를 넘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패권주의, 2차 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형성된 자유민주주의적 세계질서에 맞서는 반자유적 인민독재, 인류의 보편가치와 인권을 부정하는 반인류적 전제주의,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무시하는 집단주의 등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세계 최대의 국가의 이념으로 삼기엔 그다지 참신하지도, 독창적이지도 않아 보인다. 고작 민족주의, 복고주의, 제국주의, 권위주의, 패권주의, 인민독재, 전제주의, 집단주의에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버무려 놓았는데, 그조차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도 않는다. 과연 시진핑 사상은 마오쩌둥 사상에 이어 14억 5천만 전 중국 인민의 의식을 옭아매는 21세기 신중국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철학의 빈곤”이 심해 보인다. <계속>